“깃발을 보면 수레에 누가 타고 있는지 알 수 있고, 남편을 보면 그 아내를 알 수 있다”는 <잡아함경>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가르침은 <옥야경>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일곱 종류의 아내가 그저 아내에게만 강요되는 덕목일 수 없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남편과 가족들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일곱 종류의 아내는 일곱 종류의 부부관계라고 바꾸어 생각해도 그리 심한 억지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첫 번째 부부 관계는 배우자에게 전적인 신뢰를 기울이는 사이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대할 때는 어머니가 아들을 대하는 것과 같고, 남편이 아내를 대할 때는 아버지가 딸을 대하듯 하는 것입니다.
항상 옆을 떠나지 않고 보살피고 아껴주며 자기 배우자가 집 밖에서 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도록 노심초사하면서도 이런 극진한 애정에 지치지 않는 부부 사이입니다.
두 번째 부부 관계는 오누이 같은 부부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오빠동생 하자’라는 말은 곧 ‘서로 연인이 되자’라는 뜻이라고 하지요. 실제로 오랜 세월을 살아온 부부를 볼 때 얼굴이 닮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찌 보면 성적인 욕망과 정신적인 신뢰가 가장 아름답게 조화되는 부부 관계가 바로 이 오누이 같은 부부가 아닐까 합니다.
세 번째 부부 관계는 오래도록 사귀어온 좋은 친구 같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흉허물을 드러내놓고 비난하지 않으면서도 좋은 말로 지적하여 고치게 하고 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속 깊은 친구처럼 배려하고 아껴주는 사이입니다.
“현명한 길 안내자가 객지에서의 좋은 벗이요, 정숙하고 어진 아내는 집안에서의 좋은 벗이다”라고 하거나, “어진 아내가 으뜸가는 좋은 짝이다”라는 <잡아함경>의 가르침은 세상을 살아갈 때 끝까지 마음을 터놓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는 자기 배우자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줍니다.
그 밖의 부부 관계는 좀 특수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며느리나 하인 같은 아내의 경우는 아내에게 매우 엄격한 예법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집안의 대소사를 책임지고 챙길 수 있도록 남편은 아내를 신뢰하고 전적으로 권한을 주라는 의미도 함께 담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예의범절이 깍듯하고 스스로를 엄히 단속하면서도 집안을 깔끔하게 챙기는 안주인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40대 남성들의 심리적 방황을 정신분석학적으로 다룬 흥미로운 내용의 기사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기사 속에서 정신과 전문의는 “가장 바람직한 부부의 모습은 한창 연애시절엔 러브(Love) 파트너였다가 결혼 후 시간이 흐르면서 퍼밀리어(Familiar:익숙한, 친밀한) 파트너였다가 소울(Soul) 파트너로 진화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부가 사랑해 결혼했어도 퍼밀리어 파트너로 발전하지 못한다. 가족이 됐으나 남편과 아내가 직장 일이나 가사 노동 등으로 대화가 줄어들고 아이 양육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서로 정서적인 고립감을 갖게 된다. 이로써 정서적 이혼상태가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뉴스메이커>682호).
사람은 달라지고 변하게 마련인데 사랑으로 맺은 남녀 관계가 처음 마음 그대로 백년해로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부부 간에 그 관계의 빛깔이 달라지는 것이 오히려 정상이라는 것도 위의 전문가의 견해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중에 ‘소울 파트너’는 불교에서 자주 이야기하는 길동무, 도반의 의미와 다르지 않습니다. 단순히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겪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좀 더 가치 있는 삶을 함께 추구해가는 부부관계입니다.
암제차라는 여인이 남편과 잠시 친정에 들렀는데 마침 부처님께서 그 집에 공양하러 오셨습니다. 온가족들이 공양을 마친 부처님의 설법을 듣기 위해 나아갔지만 암제차만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외출 중이었던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부부가 늦게나마 나란히 법석에 참여하자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인이야말로 도리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사자후요의경)
옥야의 급선무는 당장 제 자신의 마음속에서 아집과 교만을 덜어내는 일이었기에 하인 같은 아내가 되겠다고 맹세하였지만 암제차는 법을 듣는 자리에 배우자와 함께 나아갔습니다. 21세기의 옥야들은 이렇게 부부관계를 키워가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