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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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자신의 참 성품을 오염시키지 말라/원순 스님(송광사 인월암)
마음에 무명 생기면 참 성품 못봐
시비와 분별 버려야 부처님 세상

중생이 쓰는 마음에는 오염된 마음과 청정한 마음이 함께 있다. 오염된 마음은 시비 분별하는 마음이요 청정한 마음은 시비 분별이 떨어진 마음이다.
시비 분별하는 마음은 ‘나’라는 헛된 생각이 개입되어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고, 청정한 마음은 ‘나’라는 헛된 생각이 사라져 객관적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하는 마음이다. 시비 분별로 ‘자신의 참 성품’을 오염시키지 말라고 <선가귀감> 30장에서는 말한다.
不用捨衆生心 但莫染汚自性 求正法是邪
중생이 쓰는 마음을 버리려 하지 말고 / 다만 자신의 참 성품을 오염시키지 말지니 / ‘정법을 구한다는 것’ 그 자체가 ‘삿된 짓’이니라.

본문의 중생심(衆生心)은 ‘중생이 쓰는 마음’을 말한다. <기신론>에서 “중생이 쓰는 마음에 세간과 출세간의 법이 모두 거두어져 있다[是心則攝一切世間法出世間法]”라고 했으니, ‘중생이 쓰는 마음’에는 ‘중생의 마음’과 ‘부처님의 마음’이 아울러 있다. 중생의 마음으로 나타나는 것은 ‘세간법’이니 생멸하는 인연법이 되고, 부처님의 마음은 ‘출세간법’이니 변치 않는 진여(眞如)의 모습이 된다.
이 마음은 ‘깨끗한 거울’에 비유되기도 한다. 깨끗한 거울에 먼지가 끼면 사물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나타날 수 없다.
왜냐하면 마음에 시비 분별이 있으면 ‘사물을 본디 모습대로 볼 수 있는 맑고 깨끗한 부처님의 마음’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부처님 마음이 ‘자신의 참 성품’이니 자성(自性)이라 한다. 그런데 거울에 먼지가 끼듯 이 마음에 홀연 무명(無明)이 생기면서 존재하지도 않는 ‘나’라는 헛것이 만들어진다. 이 ‘나’가 온갖 시비 분별로 ‘자신의 참 성품’을 오염시키기 때문에, 마치 먹장구름이 태양을 가리듯 ‘자신의 참 성품’을 보지 못하게 한다. 그러니 먼저 참 성품을 오염시키는 온갖 시비 분별에서 벗어나야 ‘자신의 참 성품’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서산 스님은 말한다.
捨者求者 皆是染汚也
삿된 법 버리는 것과 바른 법을 찾는 것
이 모두는 참 성품을 더럽히는 일.

삿된 법을 버리는 것과 바른 법을 찾는 것이 왜 참 성품을 더럽히는 일인가? 삿된 법을 버리는 것과 바른 법을 찾는 것 역시 상대적 견해로서, 시비 분별로 이루어진 한쪽에 치우친 견해이기 때문이다.
불교사상사에서 참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신심명>에서는 글 전체가 모두 양변(兩邊)을 여읜 중도(中道)를 역설하고 있다. 양변이란 미움과 사랑[憎愛], 거역과 순종[違順], 옳음과 그름[是非] 같은 일상 생활에서 쓰는 상대적 개념으로써, 시비 분별로 이루어진 한 쪽에 치우친 견해를 말한다. 양변을 떠난 중도가 불교의 근본사상임을 일관된 논리로 설파하는 <신심명> 첫 부분을 인용해 보자.
至道無難 唯嫌揀擇 但莫憎愛 洞然明白
지극한 도 얻는 것은 어렵지 않아 / 오로지 분별만을 꺼릴 뿐이니 / 좋다거나 싫어하는 마음 없애면 / 막힌 눈이 확 트여서 명백하리라

毫釐有差 天地懸隔 欲得現前 莫存順逆
아주 작은 차이라도 어긋난다면 / 하늘과 땅 차이만큼 멀어지나니 / 참다운 도 이 자리서 얻고자 하면 / 옳다거나 틀렸다는 마음 없애라

보통 우리는 ‘도(道)’ 닦는 일을 어렵고 힘든 일이라고 짐작하여 ‘도’를 멀리 있는 어떤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신심명> 첫 구절에서는 “지극한 도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라고 하여, 이 고정관념을 단숨에 깨뜨려 버린다. 오로지 중생에게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쓸 뿐, 분별하지 말라고 한다.
좋다거나 싫어하는 마음만 없으면 그 자리에서 안목이 확 트여 모든 것을 분명히 볼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이 ‘참된 도’요 ‘참 성품’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분별하는 마음을 내고 시비하는 마음을 내므로 ‘도(道)’가 천리만리 떨어져 있는 것이지, 그런 시비와 분별만 버리면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이 확 트여 부처님 세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시비 분별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면 ‘도(道)’와는 하늘과 땅만큼 멀어져 ‘도’를 이룰 기약이 없다는 것이다. 참다운 도를 바로 얻고자 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소리에만 ‘옳다’하고 자신이 싫어하는 소리에 ‘틀렸다’고 하는 그런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한다.
시비 분별에서 벗어나면 시비 분별을 일으켰던 ‘나’가 없어지고, 헛된 ‘나’가 사라지면 시비 분별로써 먹장구름 같던 무명이 점차 엷어진다. 그러다 무명이 사라지면 ‘자신의 참 성품’이 태양처럼 빛나며 오롯하게 드러난다. 이것이 ‘도’로서 ‘깨달음’이요 ‘부처님의 세상’이며 바른 법인 ‘정법(正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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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18 오전 11: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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