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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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따로 성인의 깨달음이란 없다/원순 스님(송광사 인월암)
건강한 몸이니 약이 필요 없는데도 아프다고 자꾸 약을 고집하면 그 사람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이리라. 마찬가지로 부처님께서 중생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깨달음이란 약을 들고 나왔는데, 중생이 깨달아서 이미 부처가 되었다면 따로 깨달음이나 열반 해탈을 공부할 필요가 없다. 성인의 깨달음은 중생의 알음알이 병을 고쳐 주는 방편으로 필요한 약이었지만, 중생의 병이 다 나았다면 그것은 더 이상 쓸 일이 없다. <선가귀감> 29장에서는 중생의 알음알이를 떠난 그 자리가 바로 성인의 깨달음이지, 그 자리를 떠나 따로 성인의 깨달음이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修行之要 但盡凡情 別無聖解.
수행의 요체는 다만 범부의 알음알이를 다 없앨 뿐이니, 따로 성인의 깨달음이란 없다.

여기서 범정(凡情)은 미혹한 중생인 ‘범부의 알음알이’를 말하고, 성해(聖解)는 ‘성인의 깨달음’을 말한다. 중생의 알음알이는 정식(情識)이나 번뇌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범부의 알음알이는 좋지 못한 것이고 성인의 깨달음은 좋은 것이라는 주장을 끝까지 고집한다면 결국 불을 피하려다가 물에 빠져 죽는 것과 같다. ‘범부의 알음알이’와 ‘성인의 깨달음’이란 서로 상대적인 것으로서 모두 변견(邊見)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변견이란 한쪽에 치우쳐 시비 분별로써 자기 주장만 하는 잘못된 견해를 말한다. 이 변견을 타파하기 위하여 범부의 알음알이에서 실체가 없다는 공성(空性)을 보고, 마찬가지로 성인의 깨달음에서도 공성을 보아, 범부와 성인 양쪽에 대한 집착을 다 벗어나야 한다. 이것이 중도(中道)이다.
중생들은 보통 범부라 하면 범부라는 생각에 빠지고 성인이라 하면 성인이란 생각에 빠지는 나쁜 버릇에 길들여져 있어 앉아 있어도 병이고 서 있어도 병이다. 중생의 이런 병을 고쳐 주려고 부처님께서는 몸소 유(有)와 무(無), 공(空)과 가(假)라는 알기 쉬운 방편을 활용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이런 방편조차 공성(空性)임을 알게하는 중도 법문을 설했다. 범부의 알음알이를 없애주려는 방편으로 성인의 깨달음을 내세우지만, 알음알이가 사라지면 이 알음알이의 상대적 개념인 성인의 깨달음도 저절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성인의 깨달음이라고 해서 거기에 집착한다면 이 또한 변견으로서 중도를 바로 보는 태도가 아니다. 그래서 이 대목을 <선가귀감> 언문주해에서는 “범부의 알음알이와 성인의 깨달음이란 모두 헛된 견해에서 생겨났으니, 이 두 가지 견해를 다 버려야 비로소 ‘하나 된 온전한 부처님의 성품’에 들어간다”고 풀이했고, <오등회원(五燈會元)>에서는 “오직 한가로운 삶 속에서 인연따라 살아가며 범부의 알음알이만 없앨 뿐이니 따로 성인의 깨달음이란 없다”고 말하였다. 서산 스님은 말한다.
病盡藥除 還是本人
병이 나아 약 쓸 일이 없다면
앓기 전의 그 사람이로다.

“병이 나아 약 쓸 일이 없다면[病盡藥除]”에서 병이란 중생의 알음알이나 번뇌를 말한다. 이 병에 내려진 약의 처방이 교가(敎家)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되고 간화선에서는 화두가 된다. 중생에게 병이 있을 때에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화두를 공부해야 되지만, 중생의 병이 다 나아 부처가 되었다면, 부처가 되기 위한 가르침이나 화두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된다.
“앓기 전의 그 사람[本人]”은 병이 나아 약 처방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사람이니, 그는 곧 부처임을 비유해 말한 것이다.
“병이 나아 약 쓸 일이 없다면”이란 이 구절은 원래 영명연수(904~975) 스님의 저서 <종경록(宗鏡錄)>에 있는 글인데, 대혜종고(1089~1163) 스님이 이 글을 보고 다시 <대혜보각선사어록>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오늘 잘못을 알았다면 환약(幻藥)으로 환병(幻病)을 치료한 것입니다. 병이 나아 약 쓸 일이 없다면 예전처럼 옛 사람 그대로일 뿐입니다. 모든 것이 헛된 것임을 알았는데도 달리 깨달을 사람이 있고 깨달을 법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마구니나 외도들의 견해입니다.”
‘환약’은 부처님 가르침이나 성인의 깨달음을 말하고, ‘환병’은 중생의 알음알이 병을 말하며, “예전처럼 옛 사람 그대로”란 “앓기 전의 그 사람[本人]”이니 이는 곧 부처를 말한다.
우리 범부는 보통 무명이 깃든 중생의 마음을 쓰고 살기에, 그 ‘잘못된 알음알이’ 속에서는 이 세상 온갖 삶 자체가 다 고통이다. 따라서 이 세상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범부의 알음알이’를 버리고 ‘성인의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의 마음을 쓰고 살아야한다. 중생의 처지에서 저 높은 성인의 깨달음에 들어가려면 ‘깨달음’을 목표로 삼아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이 깨달음이 성취되면 공부하는 사람이 ‘깨달음 그 자체’와 하나가 되어 깨달아야 할 대상도 같이 사라진다. 범부의 알음알이가 다 사라질 때 그 자리에 바로 성인의 깨달음이 있는 것이지, 범부의 알음알이를 떠나 따로 성인의 깨달음이란 없다. 이것이 병이 나아 약 쓸 일이 없는 예전 사람처럼 ‘옛 사람 그대로 곧 부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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