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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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더위를 사라지게 하는 이야기/원철 스님(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이제 본격적으로 더위가 시작된다. 장마가 당분간 불볕더위는 막아주겠지만 이미 동서남해 바닷가 곳곳에서 해수욕장을 개장했다는 소식이다. ‘더위를 물리치려면 더위를 피하지 말고 더위 속으로 들어가라’는 선사들의 대갈일성은 더위 역시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선어록 속에도 시원한 이야기가 없을 리 없다. 형악곡천(衡嶽谷川) 선사는 더운 여름에 어울릴 것 같은 일화를 몇 건 남기고 있다. 그는 분양선소의 법을 받았으며 기행을 즐긴 탓에 기인(奇人)으로도 불렸다. 그가 그답게 형악(衡嶽)에서 가장 험준한 곳에 위치한 보진암에 살 때 일이다.
여름밤이 얼마나 더운지 토굴 밖으로 나가 시원한 큰바위 위에 앉아 좌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옆에 큼직한 뱀이 또아리를 틀고 함께 앉아 있었다. 느낌이 이상해 눈을 떠 이를 발견한 선사는 가만히 허리띠를 풀었다. 단전에 땀띠가 나는것 같았는데 허리띠를 풀어헤치니 온몸이 시원했다. 푼 허리띠로 장난삼아 뱀의 허리를 묶어 놓았다. 그런데 얼마 후 다시 선정에서 깨어보니 뱀이 없어졌다. 단단히 묶어놓았는데 한밤중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선사에게 뱀이 사라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허리띠가 없어진 것이 사실은 더 큰일이었다.
이튿날 아침 한 손에 지팡이를 잡고 다른 한 손은 승복의 허리춤을 쥐고서 온 산을 헤맸다. 그 광경을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애쓴 끝에 드디어 발견. 허리띠는 마른 소나무에 걸려있었다.
짐작컨대 그 뱀은 소나무 정령(精靈)이었던 모양이다. 뱀 이야기와 귀신이야기가 합쳐진 것이긴 하지만 더위까지 물리치기엔 조금 썰렁(?)하다.
하지만 다음 건은 등골까지 오싹하게 만든다. 거의 식인상어 ‘죠스’와의 싸움을 연상케 한다. 선사가 도오산(道吾山)에 살고있는 자명초원(986~1040)선사를 만나러 갔다. 거기서 한판 멋지게 법거량을 마친 후 근처 커다란 연못 옆을 나란히 걸어가게 되었다. 마침 더위가 너무 심해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목욕을 하지 않으면 안 될 형편이 되었다. 그런데 그 못에는 독룡(毒龍)이 살고 있었다. 그놈은 얼마나 예민한지 수면에 나뭇잎이라도 떨어져 물에 닿기만 해도 뇌성을 치면서 계속 비가 내리도록 만들었다. 그러니 지나가는 사람마다 발굼치를 들고 입을 막고서 조용조용 그 곁을 지나가야만 했다. 숨소리조차 크게 낼 수가 없었다. 지역유지인지라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자명선사는 곡천선사의 입에 손가락을 대며 ‘쉿!’ 하고는 조용히 지나갈 것을 부탁했다. 그런데 곡천선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도리어 큰소리로 한 술 더 뜨며 말했다. “날도 더운데 이 연못에서 함께 목욕이나 하고 갑시다.”
자명선사가 놀라 팔꿈치를 뿌리치면서 먼저 가 버렸다. 겁쟁이 같으니라구. 그 자리에서 용감하게 곡천은 물에 첨벙 뛰어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천둥번개가 치고 비린내나는 바람이 불면서 비가 내리고 숲이 요동을 쳤다. 자명은 도망가다 말고 숲속에 숨어 쭈그리고 앉아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스타일 구기네). 틀림없이 곡천이 독룡에게 물려서 죽었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만약 시신이 물에 뜬다면 건져내 다비식이나 해주어야겠다고 마음먹고 끝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이윽고 조금 후 하늘이 개이기 시작하면서 바람이 그치고 수면 역시 고요해졌다.
바로 그때 “으라찻차” 하는 소리와 함께 곡천의 민머리가 물 밖으로 쑥 올라오더니 이내 연못가로 헤엄쳐 나왔다.
물속에서 독룡과 힘으로 싸워서 항복을 받았는지, 아니면 도력으로 감화를 주어 귀의시켰는지는 모르겠지만 독룡의 시체가 떠올랐다는 내용이 없는 걸로 봐서는 완력으로 죽인 것 같지는 않고 법력으로 교화시킨 것 같다. 이 사건만 두고 보더라도 그는 기인임에 틀림없다.
그렇더라도 도인의 기준을 과연 어디에 두어야할지 모르겠다. 각설하고 어쨌거나 더운 여름날 한번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서 쬐끔 시원해졌다면 좋고. 아니면 말고.
2006-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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