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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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어리석은 마음으로 도를 닦는 것/원순 스님(송광사 인월암)
보통 선가에서 말하는 ‘어리석은 마음’이란 ‘가야 할 목적지를 모르고 공부하는 마음’을 말한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부산으로 가려면 남쪽으로 향해야 하는데 어리석게 북쪽 길로 가고 있다는 뜻이다. <선가귀감> 28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迷心修道 但助無明
어리석은 마음으로 공부하는 것은 오로지 무명만 더 키울 뿐이다.

앞서 말했듯이 어리석은 마음이란 가야 할 목적지도 모르고 공부하는 마음이다. 여기서 목적지는 ‘깨달음’이 비유하고 공부는 ‘화두를 챙기는 것’에 비유해서 한 말이다. 그렇다면 깨달음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깨달음이란 중생의 시비 분별에서 벗어난 부처님의 지혜요, 이 지혜로 보는 부처님의 세상을 말한다.
<원각경>에서는 이 깨달음을 ‘원각(圓覺)’이라 하고, <화엄경>에서는 ‘법성(法性)’이라고 표현한다. 신라의 화엄종조로서 유명한 의상(義湘)스님은 <법성게(法性偈)>에서 ‘법성’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法性圓融無二相 諸法不動本來寂
無名無相絶一切 證智所知非餘境
법성은 원융하여 두 모습 없어
모든 법은 부동이고 본래가 적정
이름이나 모양 없어 모든 길 끊겨
깨쳐야만 알 수 있지 다른 길 없네.

선종에서 불법(佛法)이란 ‘바로 깨쳐야 하는 어떤 것’을 말한다. ‘모든 법의 근본성품[法性]’을 깨쳐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언어문자의 이해로써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법성은 모든 말과 형상을 떠나 있기 때문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고 형상으로 그려낼 수 없는 것인데, 어떻게 말과 형상에 의지하여 깨달음을 알 수 있겠는가? 법성이란 깨달음은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어서 알 수 있는 모든 길이 끊어졌기 때문에, ‘깨친 지혜[證智]’ 곧 ‘부처님의 지혜’로써만 알 수 있지 다른 것으로써는 알 수 없다. 모든 부처님이나 조사스님들이 깨친 법성은 참으로 깊고 미묘하다.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사량 분별이 없어진 자리로서, 오직 깨쳐야만 알지 언어문자로써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도 언어문자로써 사량 분별하여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다. 이것은 중생의 무명만 더 키울 뿐이다.
불교(佛敎)란 마음을 깨치는 데 근본이 있다는 것을 선종에서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언어문자로 근본을 삼는 교가(敎家)의 으뜸인 화엄종에서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이같은 <법성게> 내용에서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바른 깨달음을 이룰 수 있을까?
서산 스님은 말한다.
悟若未徹 修豈稱眞哉 悟修之義 如膏明相賴 目足相資.
부처님의 세상을 확실하게 알지 못하고서 하는 공부를 어찌 참 공부라고 할 수 있겠는가? 부처님의 세상을 확실히 알고 공부한다는 뜻은, 기름과 불이 서로 의지해야 밝은 불빛이 있고 눈과 발이 서로 도와야 먼 길을 걸어 갈 수 있는 것과 같다.

함허득통 스님도 <원각경> 보현보살장을 해설한 대목에서 같은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기름과 불은 서로 의지하고 눈과 발은 서로 돕는다. 불이 기름을 얻지 못하면 밝은 불빛은 타오를 수 없고, 발이 눈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몇 발자국밖에 걸을 수가 없다. 불은 기름을 얻어서 더욱 밝아져야 그 불빛이 사라지지 않고, 발은 눈이 있음으로 더 먼 길을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원각[圓覺-깨달음, 부처님의 세상]을 알고 하는 수행은 불빛을 환하게 밝혀주는 기름과 같고, 수행을 하는 데 원각에 대한 이해는 먼 길을 가는 데 반드시 없어서는 안 될 눈의 역할과 같다. 원각을 알고서도 수행하지 않는다면 그 앎은 반드시 공허하고, 수행을 하면서도 원각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수행은 반드시 몇 걸음 나아가지를 못한다. 이 때문에 수행을 하고자 하면 모름지기 먼저 원각을 알아야 하고, 이미 원각을 알았다면 모름지기 수행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문수보살은 먼저 ‘맑고 깨끗한 원각’을 알게 하고, 보현보살은 이 깨달음에 의지하여 수행을 하게 하였다.” 함허 스님은 게송으로 이 뜻을 다시 말한다.
正解已成須起行 普賢所以問其方
離幻拂到無所離 不可離者是眞常
원각의 뜻 알고 난 뒤 실천수행 해야 할새
이 때문에 보현보살 수행방편 물어보니
幻을 떨쳐 떨칠 幻이 남김없이 사라지면
幻 사라진 이 자리가 영원한 생명터라.

깨달음에 대한 확실한 이해가 없이 무턱대고 공부하는 것은 동쪽으로 가야할 길을 서쪽으로 가는 것과 같아서, 깨달음과는 더욱 멀어지고 더 어리석어져 중생의 무명만 더 키워 나갈 뿐이다. 공부의 목적을 정확히 알고 난 뒤 방향을 잡아야 차근차근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가까워질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다. 깨달음이란 확실한 목적지를 알고 난 뒤에 화두를 챙겨야 참다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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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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