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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의 잣대 기부문화/김홍근(성천문화재단 연구실장)
모든 일은 사람이 한다. 그리고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그 사람의 마음이 한다. 좋은 말로 ‘주식투자가’라고 부르지만, 사정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악명 높은 ‘투기자본가’로 알려진 미국의 워런 버핏이 총 재산의 85%인 370억 달러(36조원)를 자선기금으로 내놓는다는 소식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75세의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이 하루아침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그 돈은 유네스코 1년 예산의 61배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며, 왠만한 나라의 한해 국내 총생산에 해당되는 규모다. 기부금으로는 지금까지 사상 최대 규모다. 과연 이런 일을 가능케 한 그의 속마음은 무엇일까?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욕심이다. 이번 깜짝 발표 전까지는, 세계 2위 갑부인 워런 버핏 역시 그의 욕심에 충실한 삶을 살아온 것으로 보였다. 전설적인 주식투자의 달인으로, 1956년 단돈 100달러로 투자를 시작해 50년 동안 440억 달러의 재산을 모은 그가 아닌가? 그는 잘 아는 기업에만 투자한다는 철저한 원칙주의자다. 그렇게 고집 세고 욕심 많은 사람이 어떻게 거의 전 재산을 사회에 내놓게 된 것일까?
그를 움직인 것은, 한 사람에 대한 감동 때문이라고 한다. 비록 그보다 24살 아래지만, 오랫동안 우정을 나눠온 빌 게이츠의 철학과 행동을 옆에서 지켜보다가 마침내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IT 왕국인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회장이자 세계 1위 갑부인 빌게이츠는 오래 전 ‘세계의 불평등 해소와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하고, 주로 제3세계의 보건과 교육 분야에 힘써 왔다.
이들 부부는 앞으로도 남은 500억 달러 재산 중 가족 몫으로 1000만 달러만 남기고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특히 게이츠 회장은 2년 뒤인 2008년 7월에 그가 창립하여 이끌어온 회사에서 손을 떼고, 여생을 재단 사업에만 주력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소식을 들은 버핏은 자선사업가로서의 게이츠 부부의 열정과 헌신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버핏이 부인과 자녀 등 가족의 이름으로 된 재단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게이츠 재단에 기부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라는 판단을 내린 일이다. 기왕 자선사업을 위해 돈을 내놓는다면, 그 돈을 보다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바로 게이츠야말로 거액을 믿고 맡길 사람이라는 신뢰가 결정적으로 버핏의 결심을 굳혔다. 버핏은 돈을 제대로 쓰는 것이 돈을 버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마침내 그 어려운 일을 해낸 것이다.
한편 이 소식을 들은 다른 억만장자들도 기부를 준비하고 있다는 외신이 들어온다. 애플컴퓨터의 CEO인 스티브 잡스와 바이아콤 회장인 섬너 레드스톤도 버핏의 자선행위에 자극 받아 많은 재산을 자선단체에 위탁하리라고 한다. 미국에서 기업가의 기부금은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증가하면서 지난해 33조 달러를 넘어섰다.
사람의 마음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천하의 구두쇠들이 만년에 자비의 보살로 변신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 대목에 인간의 청정한 본심에 대한 긍정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문제는 시궁창 속에서 살면서도, 끝내 그 연꽃을 피워내느냐 아니면 쭉정이로 스러지느냐 하는 것이다. 젊었을 때는 피도 눈물도 없이 악착같이 돈을 긁어모으는 사람이 이런 아름다운 노년을 맞이하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참 흐뭇한 일이다.
보살행은 전염성이 강하다. 버핏의 선행 소식을 들은 홍콩의 액션 영화배우 성룡도 수천억 재산의 반을 자선기금으로 내놓겠다고 미리 공개한 유언장에서 밝혔다. 아름다운 기부문화의 강력한 자극이 이 땅에서도 꽃피기를 바란다.
2006-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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