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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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자신을 굽히지도 높이지도 말라/원순 스님(송광사 인월암)
참마음이 곧 부처님인줄 알고
물러남 없이 공부에 전념해야

<선가귀감> 27장에서는 화두를 참구하는 사람은 ‘본디 자신한테 갖추어져 있는 참마음’을 믿고 공부해 나가야만 한다고 이른다. 참마음을 살피지 않고 경전에만 집착하여 공부하는 사람처럼 ‘바로 부처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자신을 중생이라 낮추어 물러나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참선이 최고라고 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무턱대고 자신을 부처님이라고 높여서도 안 된다고 한다.

願諸道者 深信自心 不自屈不自高
바라건대 공부하는 사람이면 모두 자신의 참마음만 깊이 믿을 뿐, 스스로 자신을 굽히지도 말고 높이지도 말지어다.

서산 스님은 이 단락을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이 마음은 평등하여 본디 범부와 성인이 따로 없는 법이다. 이치가 그렇지만 사람 가운데에는 어리석은 범부도 있고 깨친 성인도 있다. 스승의 가르침에서 홀연 ‘참나’가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는 것을 깨치는 사람은 ‘단숨에 깨치는 사람[頓]’이니, 이것이 스스로 자신을 굽히지 말아야 할 까닭이다. 이는 마치 ‘본래 한 물건도 없다’라고 한 육조 스님의 말과 같은 뜻이다.
부처님의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뒤 나쁜 버릇을 없애가며 범부가 성인이 되는 것은 ‘차츰차츰 닦아 나아가는 법[漸]’이니, 이것이 스스로 자신을 높이지 말아야 할 까닭이다. 이는 ‘쉬지 말고 부지런히 번뇌를 없애라’고 한 신수 스님의 말과 같은 뜻이다. 자신을 굽힘은 경전을 보는 이들의 병통이고, 자신을 높임은 참선하는 사람들의 병통이다.
경전을 보는 이들은 선문(禪門)에 ‘부처님 세상을 깨달아서 들어가는 비결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방편에 깊이 빠져 ‘참 아니면 거짓’에 따로 집착하여 ‘자신의 마음을 바로 보는 수행’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보배만 헤아리고 있으므로 참 공부에서 스스로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것이다.
참선하는 사람들은 ‘경전 속에 나쁜 버릇을 끊어가는 바른 길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으니, 나쁜 짓을 저질러놓고도 부끄러운 마음을 내지 못한다. 공부한 정도가 유치해도 ‘법에 대하여 공부했다는 오만한 마음’이 많으므로 입 밖에 내뱉는 말이 터무니없이 교만하기만 하다. 이 때문에 올바른 뜻을 알고 마음을 닦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굽히지도 않고 높이지도 않는다.”
서산 스님은 다시 덧붙여 말한다.
“스스로를 굽히지도 않고 높이지도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공부를 시작하는 첫 마음에 바다처럼 넓고 큰 부처님의 세상이 들어있는 것’으로써 말하자면 모든 것이 ‘믿는 마음 한자리’이다. 그러나 ‘보살이 공부하여 성불(成佛)한 결과를 가져온 그 과정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살펴보는 것’으로써 폭넓게 말하자면 보살이 인(因)에서 과(果)로 가기까지 ‘55단계의 수행 과정’이 있다는 것이다.”
‘공부를 시작하는 첫 마음에 바다처럼 넓은 부처님의 세상이 들어있는 것’이라고 번역한 인해과해(因該果海)는 ‘인(因)에 과해(果海)가 갖추어져 있다’라고 직역할 수 있다. 인은 시작이고 과(果)는 결말인데, 처음 시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니, 작은 인속에는 드러날 많은 과가 이미 들어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복숭아씨를 심으면 나중에 씨앗이 커서 복숭아꽃이 피고 먹음직스러운 복숭아가 주렁주렁 달리는데, 시작은 작은 씨앗이었지만 이미 그 씨앗 속에는 해마다 많은 꽃을 피우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결과물이 들어있는 것과 같다. 이처럼 공부할 때도 자신의 참마음이 부처님인줄 알고 화두를 챙겨가다 보면, 이 공부 속에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부처님의 세상으로 들어갈 날이 있을 것이니, 굳이 자신을 중생이라고 낮추고 이 공부에서 물러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복숭아씨가 해마다 많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려면 오랜 시간에 걸쳐 적절한 양의 물과 태양의 빛이 필요하다. 꽃과 열매는 그 과를 가져오는 씨앗과 적절한 양의 물과 태양의 빛이란 인이 있어야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어떤 결과물이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알고 보면 그 결과물을 가져오게 하는 원인이 반드시 있었다는 것을 철저히 살펴보는 것, 이것이 과철인원(果徹因源)이다.
보살이 공부하여 성불한 결과를 가져온 그 과정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살펴본다면 수없이 많은 단계가 있겠지만, 이것을 대략 정리하여 <능엄경>에서는 십신(十信),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廻向), 사가행(四加行), 십지(十地) 55단계로 나누고 있다. 참선이 최고라고 하면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법답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를 턱없이 높이지 말고 공부의 인과를 분명히 알고 공부해야 할 것이다.
참마음을 알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설하고 실천할 수 사람만이 훌륭한 선사이면서 참다운 법사가 될 수 있다.
2006-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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