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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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소동파(하)/원철 스님(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늘 절제된 생활하며 수식관 수행에 몰두
누이동생 소소매의 ‘관음예문’ 유명

소동파가 대각회련(1009~1090)선사의 비문을 지을 일이 생겼다. 비문을 쓰려면 그 사람의 행장을 잘 알아야 한다. 드러난 공식적인 행적 말고도 비하인드 스토리를 수집할 수만 있으면 내용이 훨씬 짬지게 된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남의 입을 통해야만 알 수 있다. 더구나 회련 선사는 입이 매우 무거웠다. 영종임금이 선사에게 손수 조서를 내 어떤 절이건 골라서 마음대로 주지를 하라고 했으나 사양하고서 작은 절에서 살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참요(參蓼 ?~1106)라고 하는 운문종 승려가 그 일을 동파에게 귀띔해 주었다. 하지만 남의 말만 믿고 함부로 비문에다가 올릴 수는 없는 일이다. 직접 찾아가서 “정말 그런 일이 있으면 비문에 한 구절 넣고 싶다”고 확인을 요구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그런 사실이 없다” 였다.
선사 입적후 유품을 정리하던 중 편지함 속에서 그 조서가 나왔다. 동파는 이렇게 탄식했다. “도를 얻은 사람이 아니면 어떻게 이런 덕을 간직할 수가 있겠는가?”
동파 역시 늘 수행인으로서 절제된 삶을 살았다. 배가 고파야만 밥을 먹었고 배 부르기 전에 숟가락을 놓았다. 더불어 수식관(數息觀)수행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산보를 한 후 속이 어느 정도 비게 되면 방에 들어가 단정히 앉아 생각을 고요하게 하였다. 그리고 나서 내쉬고 들이쉬는 숨을 셌다. 하나에서 열까지, 열에서 백까지를 세 수백에 이르게 되면 이 몸은 우뚝해지고 이 마음은 고요해서 허공과 같아져 번거롭게 금기하고 다스릴 일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이렇게 오래오래 하다가보면 한 숨이 스스로 머물러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않을 때가 나타난다고 기술했다. 이때 이 숨이 팔만사천 털구멍을 통해 구름이 뭉치듯 안개가 일 듯하는 경지가 나타나면 무시이래 모든 병이 저절로 없어지고 모든 업장이 소멸된다고 했다. 마치 눈 먼 사람이 홀연히 눈을 뜨듯 저절로 밝게 깨달아, 이때가 되면 남에게 물을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고 있다. 그는 늘 일과 수행을 함께 한 재가의 선지식이었던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금강산을 그렇게도 애타게 그리워했다고 한다.
“원컨대 고려국에 태어나 한번이라도 금강산을 보았으면…”하는 발원을 했다고 하니 지금쯤은 금강산 관광단에 끼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이미 다녀갔을까?

그의 남동생인 소철(蘇轍)과 여동생인 소소매(蘇小妹)의 한 마디도 귀담아 들을 것이 있다. 불인선사가 금산사에 살면서 두 형제와 서로 자주 왕래하였는데 동생 소철이 선사에게 이런 시를 보내왔다.
굵은 모래를 시주해도 부처님은 기꺼이 받으시고/ 돌멩이를 공양해도 스님은 싫어하지 않는구나.
빈손으로 멀리서 오니 무엇을 요구하시겠는가/ 아무 것도 더하거나 보탤 것이 없구나.
철저한 무소유의 공(空)의 정신을 표현한 이 시를 받고서 불인선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일단 공부경지에 대해선 높은 점수를 주었을 것 같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씁쓸함을 숨기지 못했을 것이다. 재가자가 미리 알아서 무소유를 외치니 장맛비에 금산사의 기왓장이 무너져 혹여 큰 시주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이 집에 가서 화주하겠다는 마음은 싹 사라졌을 것 같다.
난형난제인 반면 누이동생 소소매는 가슴이 아릴 정도로 아름답고 신심있는 글인 <관음예문>의 저자로 익히 알려져 있다. 그녀는 관세음보살을 이렇게 찬탄했다.
헤매는 고해중생 건져주시려
연붉은 옷자락 무지개로 주옵시고
애욕으로 두 눈 어둔 중생 건져주시려
하늘여인 몸으로 바람처럼 오시는….
2006-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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