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았다고 안주하지 말고 그 경계마저 넘어야 참부처
古德 云 只貴子眼正 不貴汝行履處
옛 어른께서 이르시기를 “다만 자네의 안목이 바른 것만 귀할 뿐이지 자네의 행실을 보려고 하지 않네”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옛 어른’은 중국 당 시대 위산(771~853) 스님이다. 열다섯에 출가해 스물셋에 백장(720~814) 선사 밑에 가서 공부했다. 어느 추운 겨울날 방장실에서 밤늦도록 공부 이야기를 하다가, 백장 스님이 “화로에 불이 있느냐?”라고 묻기에, 대강 화로 속을 뒤지다가 “없다”고 했다. 이에 백장 스님이 직접 화로 속을 뒤져서 작은 불씨 하나를 꺼내 들고 “이게 불이 아니고 무엇이냐?” 하고 물으니 위산 스님이 여기서 크게 깨쳤다고 한다. 뒷날 위산 스님과 그의 법을 이은 앙산(803~887) 스님의 첫 머리 글자를 따와 위앙종이 만들어졌으니, 위산 스님은 중국 선종의 거대 산맥인 오가칠종(五家七宗)의 하나에 해당되는 위앙종의 창시자가 되었다. ‘안목이 바르다’는 것을 무엇을 말하는가. 보통 사람들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행실을 보고 평가하는데, 여기서는 왜 행실보다 안목이 바른 것을 귀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가.
이 말 뜻은 선림(禪林)에서 자주 언급하는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인다[殺佛殺祖]’라는 표현과도 연관이 있다.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인다’는 말뜻은 원래 부처님과 조사스님에 대한 집착을 떨치는 데 있다. 여기서 말하는 ‘부처’와 ‘조사’는 자신의 마음에서 나타나는 경계를 말하는데, 자신의 공부가 무르익어 부처님과 조사스님의 경지를 얻었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에 안주하지 말고 그 경계마저 뛰어넘으라는 것이다. 이는 깊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자신이 부처님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에 ‘나’와 ‘부처님’이란 무명과 탐욕심이 깃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무명과 탐욕으로 이루어진 자아의식이 없어져야 비로소 참 부처님이 될 수 있다.
무명과 탐욕이 깃든 ‘부처님이란 경계’까지도 죽일 수 있는 이런 근기야말로 참된 부처님이 될 수 있고, 이 경지에 들어가야 바른 안목이 열린다.
이 안목이 열리면 모든 경계가 부처님의 모습 아닌 것이 없다. 이 안목이 열리고 나서 하는 행동이야말로 중생의 시비 분별을 뛰어넘는 것이니, 멋모르고 행동하는 중생들의 거친 모습과는 차원이 다르다.
‘눈 푸른 납자’는 무심하게 모든 인연을 따라가며 그 속에서 조화롭게 아름다운 성자의 삶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런 안목이 터지지 않고 나오는 행실은 중생의 행실에 그칠 것이니, 중생의 행실을 따져본들 부처님 공부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화두를 챙겨 근본 마음자리를 바로 알고자 수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부처님의 세상을 바로보는 ‘바른 안목’이 우선이요 공부의 핵심이다.
‘행실’로 번역한 행리(行履)는 직접 몸으로 실천하고 살아온 과정을 말하니, 오가며 않고 눕는 모든 일상적 삶을 가리킨다. 우리는 보통 이 일상적인 생활을 통하여 그 사람의 공부를 가늠할 수 있다.
옛날 총림에서는 2월 9일, 8월 9일 매년 봄가을 두 번에 걸쳐 안거에 동참한 스님들의 숫자와 해제 뒤에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가를 조사하였는데, 이것을 ‘행리(行履)조사’ 라고 하였고, 그 결과를 기록한 것을 ‘행리장(行履帳)’이라고 하였다. 스님들의 행실이 올바른지 잘못 살고 있는지를 평상시 점검하여 수행 생활에 경각심을 일으키고 경책하려는 뜻이 아니었겠는가.
위산 스님도 당시 수행자들이 자꾸 나태해져 품위 없이 사는 것을 지켜보다 못해 <위산경책>을 저술하여 그들이 ‘도’에 대한 ‘바른 안목’을 갖도록 촉구했다. 이 책은 산문(散文)과 운문(韻文)으로 구성돼 있다. 처음 산문에서는 다섯 단락으로 나누어 경책하는 뜻을 상세하게 밝혔다. 첫째 단락에서는 중생의 몸 자체가 큰 우환덩어리라는 것을 보여주었고, 둘째 단락에서는 출가자들의 병폐를 크게 꾸짖었으며, 셋째 단락에서는 출가한 사람의 바른 안목을 밝혔고, 넷째 단락에서는 도에 들어가는 지름길을 보여 주었으며, 다섯째 단락에서는 간절하게 공부할 것을 권유하였다.
선종에서는 이 책과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과 <불유교경(佛遺敎經)>을 합하여 ‘불조삼경(佛祖三經)’이라 하는데 초학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우리나라 강원에서 초심자 교재로 쓰이는 치문(緇門)에도 이 책이 포함되어 있다.
서산 스님은 말한다.
“옛날 앙산 스님이 위산 스님의 물음에 대답하기를 ‘<열반경> 40권이 다 마군의 이야기들입니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앙산 스님의 바른 안목이다. 앙산 스님이 자신이 살아온 모습에 대하여 묻자 위산이 ‘다만 자네의 안목이 바른 것만 귀할 뿐이지 자네의 행실을 보려고 하지 않네’ 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바른 안목을 먼저 연 뒤에 행실을 말해야 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올바른 수행을 하고자 하면 근본자리를 먼저 단숨에 깨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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