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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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분별심’은 어떻게 분별하지?(2)/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자기 생각 강요할 땐 명예욕 깔려
일의 정확한 원인·인연 파악해야
분별심은 ‘욕심’ 바탕으로한 잣대

어느 날 왕이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한 사람 수십 명을 불러 모았습니다. 왕은 그들 앞에 커다란 코끼리 한 마리를 끌고 와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코끼리라는 동물이다. 자, 너희는 각자 이 동물을 만져보고 나에게 코끼리에 대해서 설명해보아라.”
그들은 한참 코끼리를 더듬고 어루만진 뒤에 한 사람씩 자기가 생각하고 머릿속에 그려본 코끼리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폐하, 코끼리는 쟁기처럼 생겼습니다.”
이렇게 대답한 사람은 코끼리의 코를 만져본 자였습니다. 그는 아주 예전에 쟁기라는 연장을 꼼꼼하게 만져본 적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자 그 옆의 사람이 그를 꾸짖었습니다.
“무슨 소리 하는 것이요? 폐하, 코끼리는 기둥처럼 생겼습니다.”
그는 코끼리의 다리를 만진 사람이었습니다.
그 옆의 사람은 코끼리의 귀를 만지고서 “코끼리는 쌀을 까부르는 키처럼 생겼습니다”라고 답하였습니다.
그 밖의 사람들도 모두 자기가 만진 부분만을 가지고 자기가 알고 있거나 들어두었던 사물에 비유하여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기의 생각이 옳고 다른 이의 생각은 틀렸다고 고집하며 끝없는 말다툼을 벌였습니다(<경면왕경>).
아마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판단하고 결정짓는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코끼리의 전체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자기가 더듬은 부분만을 가지고 자기가 아는 범위 안에서만 ‘이게 바로 코끼리이다’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자신의 그런 주장이 틀릴 수도 있고 부분적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내 말이 옳고 내 생각이 맞다’고 고집부리기까지 합니다.
게다가 그것이 가장 정확한 생각이라고 섣불리 판단을 내린 뒤에는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이라고 성화를 부립니다. 그런데 자기가 이렇게 판단하고 행동으로 옮기거나 남에게 자기 생각을 강요할 때 그 바탕에는 대체로 자기의 이익이나 명예욕이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남이 자기를 따라주면 기뻐하고 우쭐대지만 자기를 따라주지 않으면 원한을 품거나 서운해 하거나 불같이 화를 냅니다.
자기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욕심을 덜어내지 못하고, 사물이나 사건에 흐르는 인과의 법칙과 인연의 법칙을 모르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이 자기 잣대로 세상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헤아리고 판단하고 그에 다투는 것을 ‘사량분별’, ‘분별심’, ‘망상’이라 부릅니다. 우리가 버려야 할 ‘분별심’은 바로 이런 ‘어리석음’과 ‘욕심’을 바탕으로 한 잣대입니다.
그러니 ‘분별심을 일으키지 말라’는 말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해 가장 먼저 그 일을 대하는 자기 마음속에 사리사욕이 없고, 그 일을 단편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바라보며, 그 일이 일어나게 된 가장 정확한 원인과 그 일을 둘러싼 인연들을 동시에 파악하라는 뜻인 것입니다. 아무런 생각이나 판단도 내리지 말라거나, 더구나 사기꾼의 행동과 경찰의 존재를 똑같다고 보라는 뜻은 절대로 아닙니다.
세상을 대하는 자신에게 그와 같은 분별심이 사라진다면 그는 가장 자유롭고 위풍당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본 것이나 들은 것 속에서 자기에게 유익한 것이 있다고 보면서 그것에만 집착한 나머지 다른 것은 하천한 것이라 보는 어리석은 사람이 있다. 착하고 건전한 사람들은 그것을 속박이라고 말한다. 본 것이나 들은 것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를 남과 비교해 동등하다거나 열등하다거나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집착하지 않고 당파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피안으로 건너간다”는 <숫타니파타>의 노래처럼, 속박에서 풀려났기 때문입니다. 속박에서 풀려난 사람은 이제 분별심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가치기준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그들의 칭찬이나 비방에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이미 자기 마음속에서 욕심과 성냄을 벗어버렸고 자기와 자기를 둘러싼 모든 일들의 원인과 과정과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되고 싶어 하는 참자유인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200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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