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타파할때 생사문제 해결
깨친 후 선지식에 점검 받아야
23장에서는 말과 행동이 서로 어긋나서는 안 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學語之輩 說時似悟 對境還迷 所謂 言行相違者也
말만 배운 사람들은 말할 때는 깨친 듯이 보이지만 실제 경계를 만나면 어쩔 줄을 몰라 그만 아득해져 버리니, 말하자면 말과 행동이 서로 어긋나 있다.
이것은 서산 스님이 22장에서 “총명한 사람이라도 지어놓은 업을 뿌리칠 수는 없고, 알음알이 쓸모없는 지혜로는 쳇바퀴처럼 이어지는 고통을 면치 못하니, 모름지기 한 생각을 살피어서 스스로를 속이지 말지어다” 라고 말한 뜻을 매듭지어 한 말이다. 말과 행동이 서로 어긋나면 그 말에서 진실과 거짓을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은 <선가귀감>을 번역한 <깨달음의 거울>에서 이 부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덧붙여 자세히 설명한다.
“종교를 지혜와 자비의 길이라고 한다면, 그 길은 일상생활에까지 미쳐야 한다. 종교는 메마른 이론보다도 실제의 행동을 중요시한다. 이론은 행을 위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종교인의 위선도 바로 이 말과 행동이 같지 않은 데서 비롯한다. 절대적인 세계를 체험했다면, 그것이 보편적인 일상에까지 내려와야 한다. 그래야만 그 체험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24장에서는 화두를 참구하는 한 생각이 툭 터져야 말과 행동이 일치될 수 있다고 한다.
若欲敵生死 須得這一念子 爆地一破 方了得生死
중생의 생사를 해결하려면 화두를 챙기는 한 생각이 툭 터져야 비로소 생사의 실체를 알 것이다.
서산 스님은 이 대목을 풀이하여 “화두를 챙기는 한 생각이 툭 터진다는 것은 ‘칠통 같이 어두운 무명을 타파하는 소리’다. 이 어두운 무명을 타파한 뒤에서야 생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모든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고자 공부하는 과정’에서도 오직 이 일만이 있었을 뿐이다[爆地 打破漆桶聲 打破漆桶然後 生死可敵也 諸佛因地法行者 只此而已]”라고 말한다.
화두를 챙기는 한 생각이 툭 터졌다고 하는 ‘타파칠통(打破漆桶)’은 선림(禪林)에서 많이 쓰는 용어로서 철저하게 깨달은 상태를 말한다. 칠통은 새까만 옻을 담아 두는 통을 말하는데, 이 통을 오래 사용하다 보면 통 밖이나 안이 모두 새까매져 그 통 자체의 처음 색깔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아주 먼 과거부터 쌓여온 우리들의 무명 번뇌가 ‘본래 갖고 있는 부처님의 성품’을 먹장구름처럼 덮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이 본래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고 하여, 이것을 까만 칠통에 비유한다. 우리들이 어느 날 번뇌에서 해탈하면 모든 망상이 사라지고 큰 깨달음이 드러날 때, 이때를 칠통같은 무명을 타파했다고 하여 ‘타파칠통’이라고 한다. 따라서 선종에선 ‘깨달음 얻는 것’을 종종 이 말로 표현한다.
<벽암록> 97칙에서도 “아무리 살피고 살펴보아도 마음 댈 곳이 없으니 어느 곳을 향하여 밝은 구슬을 찾아볼 수 있겠는가? 칠통을 타파해야 볼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깨달음을 얻고자 공부하는 과정’이라고 번역한 ‘인지법행(因地法行)’은 <원각경>에서 많이 쓰고 있는 용어이다. 공부해서 깨달음을 완성한 경지를 ‘과지(果地)’라고 하면, 부처님의 씨앗을 길러 부처님의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인지(因地)’라고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법(法)이고 그것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행(行)이니, 부처님 세상으로 향하는 삶 속에서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실천하고 살아가는 것이 곧 ‘인지법행’이다. 화두 참구하는 사람들에게는 ‘화두를 깨치는 일만’이 그들의 ‘인지법행’이 될 것이다.
<선가귀감> 25장에서는 한 생각을 깨친 뒤에는 눈 밝은 스승을 찾아가 반드시 점검 받을 것을 당부한다.
然一念子 爆地一破然後 須訪明師 決擇正眼
생사의 실체를 알았더라도 한 생각을 깨친 뒤에 반드시 눈 밝은 스승을 찾아가 바르게 깨쳤는지를 점검받아야만 한다.
서산 스님은 이 대목을 풀이하여 “이 공부는 정말 쉽지가 않으니 뭘 알아도 부끄러운 마음을 내어야만 한다. ‘도’란 큰 바다와 같아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 깊어지는 법이니, 조금 공부하였다고 하여 거기에 만족하지 말아야 한다. 깨달은 뒤 눈 밝은 스승을 만나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경계라도 도리어 이것이 공부에 독약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눈 밝은 스승은 만나기 어렵다고 한다. 하늘에서 겨자씨를 던져 바늘 끝에 올려놓는 것이 선지식을 만나는 일보다 쉽다고 하니, 인도에서 96종의 육사외도(六師外道)들이 모두 생사 해탈을 구하려고 하였지만 삿된 스승을 만남으로써 생사에 침몰한 것을 보면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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