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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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해서 고정된 게 없으니 그냥 놓고 가세요
차원이 높든지 낮든지 자기 차원서 벗어나야

여러분께서 마음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노력하시는 것을 볼 때 너무나 감사하고 뜻 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나오셔서 마음공부를 하시는 분들은, 생활이 재료니까 그대로 그걸로 마음공부를 하시겠죠. 그러나 각 사찰을 봐도 그렇고 각 종교를 봐도, 너무도 이 마음공부에는 생각이 없고, 모두 타의에서 구하지 자의에서 구하려고 생각들을 안 합니다. 물론 말들은 ‘나 자신부터 알아라. 너 자신부터 알아라.’ 이럽니다. 그러나 행동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너무 슬픈 것은, 우리 인간들이든 저 동물에 가까운 사람이든, 또는 그 천차만별로 돼 있는 생명들을 생각해 볼 때에, 50%는 멸하고 50%는 생하면서 수레와 같이 만날 이렇게 돌아갑니다. 그러면서 수레에 굴려서 제 차원대로 다 나누어집니다. 예를 들어, 토마토든지 뭐든지 기계에다 쏟아 넣으면 크기에 따라 분리되어 떨어져서 큰 건 큰 것대로, 작은 건 작은 것대로 모이는 것과 같은 겁니다. 어떠한 물건이든지 무엇이든지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영령들의 마음들도 보이지 않는 데서 차원에 따라서 수레에 넣어진다면 그렇게 분리가 된단 말입니다. 자동적으로 분리가 돼서 자동적으로 하천세계에 떨어지고, 중천세계에 떨어지고, 상천세계에 떨어진단 얘깁니다. 그거는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할 것도 없이 말입니다.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는 거죠. 하천세계로 떨어진 그런 생명들을 텔레비전에서도 보시고 뭐, 많이 보시죠? 먹고 살기 위해서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요. 먹고 먹히고 하는 그 삶의 굴레를 볼 때에 기가 막히고도 남음이 있죠.
그리고 우리 중천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의 생활은 어떨까요? 역시 기가 막힙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너무도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옵니다. 말을 어떻게 해야 옳을지도 모르는 그런 입장에 놓여 있어서, 얼굴은 하늘에다 쳐들고 입을 딱 벌리고 그냥 있을 때가 많습니다. 모두들 여러분이 ‘내가 이만하면 됐고, 이만하면 앞으로도 괜찮을 거다.’ 하고 사시지만 그게 아닙니다. 인간은 인간대로 차원에 따라서 살아가는데, 차원이 높든지 얕든지 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차원에서 벗어나야 된다는 것이죠. 이것은 ‘마음’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억겁을 거쳐 오면서 겪어 왔고, 또 앞으로도 억겁을 지나가면서 겪을 그 집착 또는 관습, 이런 문제로 인해서 이 마음이 누더기가 되는 사실을 모르고 그냥 사는 것이죠. 우리가 대치를 못하기 때문에 누더기가 되는 겁니다.
내가 항상 그런 말씀을 드리죠. ‘본래 사람은 발자국 떼어 놓는 거와 같아서 한 발자국 떼어 놓으면 한 발자국 없어지고, 한 발자국 떼어 놓으면 한 발자국 없어지는 것이 바로 공해서 그렇다. 고정된 게 없어서 그렇다. 고정된 게 없으니까 그냥 놓고 가는 거다. 그냥 놓고 가니까 그냥 여여한 거다. 그냥 여여한 거니까 아무것도 붙을 게 없다.’ 이래도 그걸 곧이 안 듣는 거예요. 그걸 아예 곧이 안 듣는 겁니다. 그 관습에 의해서 말입니다. 살아나온 그 누더기가 붙어서 말입니다. ‘그냥 그렇게 여여하고 그렇게 좋은 세상이 없다. 우리가 고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해서, 하나도 거칠 게 없고 걸릴 게 하나도 없이 그냥 돌아간다. 그러니 그냥 돌아가는 대로 그냥 그냥 따라서 기쁘게 살라.’ 이래도 하여튼, 기쁘기는커녕 요만한 거 하나라도 오히려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어 가지고 근심 걱정을 하면서 야단법석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저 하천세계의 생명들은 어떻게 하고 사는지 한번 객관적으로 모든 거를 보세요. 인간이 짐승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고, 짐승이 사람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그렇게 수레에 굴려서 제 차원대로 다 나누어지니까 우리는 꼼짝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공부를 해서 벗어나서 자유자재할 수 있다면, 그거야 뭐 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보배죠.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일체 만물 중에 인간이 고차원적이므로 99% 부처님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겁니다.
그거 한 찰나 요렇게 돌리면 될 것을 그렇게 누더기가 붙어서 돌리지를 못합니다. ‘그냥 공(空)해서, 색(色)이 공이요, 공이 색이니 그대로 놓고 가는 거다. 그대로 공해서 고정되게 보는 것도 없고, 듣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고, 먹는 것도 없이 모든 게 공했다. 그러니까 그냥 하루살이로, 하루살이가 뭡니까, 일초살이지. 허허허…. 그냥 딛고 가면서 그저 오는 대로, 닥치는 대로, 안에서 일어나는 대로, 바깥에서 닥치는 대로, 그대로 받아넘기면서 그대로 굴려라.’ 이거죠. 그러면 그렇게 싱그럽고 좋은 삶을 살 수 있는데, 어지럽고 괴롭게 사는 원인이 어디 있느냐. 자기가 지어서 그렇게 하고 자기 마음이 그렇게 만들어 놓고 그렇게 하는 것이니 어떤 때는 너무나 딱해서 볼 수가 없습니다. 자나 깨나 여러분한테 이 심부름을 하기 위해서 나는 일분일초도 내 사사로운 생각을 해 본 예가 없습니다. 이건 거짓이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가 벗어날 수 있다면 어떠한 결과가 생기느냐. ‘다 먹어야 다 줄 수 있다.’ 이런 데서 미생물 하나 버림이 없이 전부 나 아님이 없다 하는 결과가 나옵니다. 그러니 요거 하나에 착을 둔다면, 그 습을 가지고선 습성에서 떠나지 못하고 내가 살아온 습성이 그냥 앙금처럼 앉아 있어서, 아무리 떼려고 애를 써도 떼어지지 않는 거죠. 그걸 떼려고 해서 떼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그렇게 해서는 떼어지지 않으니까 그냥 제자리에다 되놓는 방법밖엔 없습니다. 진짜로 믿는다면 죽으나 사나 당장 하늘이 무너져서 쪼개진다 하더라도, 제 생명이 그냥 죽는다 하더라도 껄껄 웃고 거기다 놓을 수 있어야만 벗어나는 겁니다.
나도 얼마나 많은 실험을 했는지 모릅니다. 닥치면 실험하고 또 닥치면 또 실험을 하고, 진짜로 자기가 자기에게 닥치게 해서 또 실험을 하고, 네 마음은 어떤 것이냐, 네 마음은 진짜로 그렇게 됐느냐 안됐느냐 하고 실험을 해 본 지가 근 10년이 넘어갔습니다. 그거를 몽땅 다 떼려면 깨달아 가지고도 그만큼 걸린다는 거죠. 떼는 게 아니고 그냥 놓는 건데…. 우리가 세상살이 살림을 할 때 가만히 보세요. 요것만 아시면 돼요. ‘우리가 몸뚱이 하나를 가지고도 더불어 같이 사는 거다. 그러니까 높고 낮음도 없다. 내 몸속에 들어 있는 생명들이 같이 작용을 하고, 같이 더불어 먹고, 같이 더불어 보고, 같이 더불어 듣고, 같이 더불어 살고 있으니까 높다고 할 수도 없고 얕다고 할 수도 없고 평등한 나 자신이다.’ 이겁니다.
이럴 때 모든 것이 다 평등하게, 바깥에도 다 평등하게 돌아가는 게 뭐냐 하면, 고정된 게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 화(化)해서 바로 나투고 진화되고 이렇게 해서 모두 달라지고 달라지고 이러는 거죠. 물에서 노는 거나, 들에서 노는 거나, 어떤 짐승이라도 자기가 확 벗어나지 못하니까 조그만 거라도 환경에 맞게 진화시키는 거죠. 만약에 물속을 활보하는데 지느러미가 필요하다면 지느러미를 나오게 하고, 또 가파른 산길을 다니기 위해 앞발을 좀더 짧게 하고, 또 평지에서 많이 못 뛸 때는 좀더 길게 하고…, 이런 작업들은 합니다. 허나 그거를 좀더 높여서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더욱 좋겠죠. 그래서 이 하천세계에서 올라오기도 하고, 중천세계에서 떨어지거나 올라가기도 하고 이게 뭐 고정된 게 없죠.
우리가 그냥 이렇게 살다가 보면 “아이구, 이만하면 사는 건데 뭐, 그런 공부는 해서 뭘 해. 죽으면 그만인 걸.” 이러지만 허, 천만의 말씀이죠. 만약에 우리가 죽으면 그만이라면 이 세상에 생겨나는 것도 없을 거고 진리라고 할 수도 없을 겁니다, 아마.
옛날에 이런 얘기가 있죠. 요거 한마디만 하고요. 옛날에 쥐가 말입니다, 쥐 한 가족이 큰 가족이 됐더랍니다. 그렇게 사는데, 그 고을에서는 흉년이 들어서 도저히 먹을 걸 구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강을 건너가는데 말입니다, 어느 거사가 길을 지나가다가 쥐가 그렇게 건너가는 걸 봤는데, 꽁지에 꽁지를 물고 건너가고 꽁지에 꽁지를 물고 건너가거든요. 그런데 가다 보니까 말입니다, 벽에다가 붙여 놓기를 ‘옛날이야기를 아주 듣기 싫다 할 때까지 하는 사람을 내가 사위를 삼는다.’ 어느 정승이 그랬단 말입니다. 그렇게 방을 붙여 놨거든요.
그래서 이 거사가 그거를 보고 찾아간 거예요. 가서 그날 밤에는 이렇게 말을 했죠. “쥐 한 가족이 대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었습니다.” 하니까 “그래서?” “그 쥐가 사는 고을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고을인지도 모르고요. “흉년이 들어서 아, 지금 강을 건너갑니다.” “그래서?” “강을 건너가면 먹을 게 많을 테니까 그리로 찾아갑니다.” 그러니까 “그래서?” 그러니까 듣기 싫다 할 때까지 하랬는데, 그렇게 단순하게 끊어지는 거죠. 그 말 하고 난 뒤에는 “그래서 건너갑니다. 할아버지가 지금 건너갑니다.” 이렇게 해 놓고는 “할머니가 그 꼬리를 물고 또 건너갑니다. 연방, 아들이 건너갑니다, 자식이 건너갑니다. 그냥 연방연방 쥐가 꼬리를 물고 또 건너갑니다. 쥐가 꼬리를 물고 건너갑니다.” 마냥 이렇게 사흘을 해 대니까 말입니다. 어떻겠습니까? 듣기 싫어서 죽겠죠. 딸 내주기가 싫어서, 거지같은 놈한테 딸을 내주기가 싫어서 영 대답을 하지 않다가, 그래도 보름을 지탱했답니다. 하하하…. (대중 웃음) 보름을 지탱하다가 결국은 딸을 내주고 말았답니다.
그 얘길 왜 하느냐 하면, 그런 거와 마찬가지로 이 불교라는 자체가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렇게 돌아가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그런데 꼬리 끊어질 사이가 어딨고 꼬리 붙을 사이가 어딨습니까? 붙었다 떨어졌다 할 사이가 없는 겁니다, 그냥. 그러니 그렇게 붙었다 떨어졌다, 작다 크다, 높다 얕다 할 여지가 없죠. 여지가 없이 돌아가는데 거기 먼지 앉을 게 뭐 있겠느냐. 여러분은 “왜 먼지 앉을 게 없어? 병도 나고 먼지도 앉고 뭐, 별거 다 하지.” 이러지만 그 너머로 훌떡 넘어선다면 그 소리가 아예 없어집니다. 이 세상을 모두 한눈에 볼 수 있는가 하면, 상세계ㆍ중세계ㆍ하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사는 거를 볼 때에, 수레가 굴러가는 걸 볼 때에 붙을 데가 어디 있느냐는 소리밖에는 안 나올 겁니다, 아마.
그렇다고 부처님이 아프지 않고 돌아가신 게 아닙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보여 주셨느냐? 여러분도 그렇다는 거를 그대로 솔직하게 보여 드린 겁니다. 사람의 육신은 언제나 병도 들고 죽고 하지만, 그 육은 자기 시자일 뿐이지 주인이 떠나면 육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 지수화풍으로 돌아간단 말입니다. 지수화풍으로 돌아가고 거기서 나오고, 또 돌아가고 또 나오고 이러는 거죠. 우리가 물과 흙, 바람 이 세 가지가 한데 어울려서 돌아가기 때문에 불이 일어나고 온기가 생기고, 그래서 이렇게 생명체가 생겼고 우주 만물이 생긴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우리 모두가 그저 살았다 하면 죽었고 죽었다 하면 살았으니, 이거는 이름일 뿐이지 사실은 우리가 영원토록 그대로 굴러가면서 산다는 겁니다.
그러나 자기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작아지기도 하고 커지기도 하고 그러죠. 잘 못살기도 하고 잘살기도 하고요. 우리는 지금 영화배우들이 배역을 맡아서 그대로 지금, 배우 노릇을 하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누구의 탓으로 돌릴까요? 이 엄청난 일이 왜 생겼느냐, 내가 무슨 죄가 있어서 그러냐 그러지만 자기한테 다 감겨 있어서 그러는 겁니다. 오신통 중의 숙명통이 바로 여러분의 컴퓨터라고 볼 수 있어요. 자동적인 녹음기라고 할 수 있어요. 거기에 스스로 감겨 있으니까 그대로 나오는 거지 어떡합니까?
그래서 그것을 알면 바로, 수염이 나지 않았는데도 수염이 길어서 붉게 익었다는 얘기로 할 수 있죠. 그것을 알면 우리는 만 가지 천 가지 다 작용할 수 있는 거니까. 지금 내가 빨리 쉽게 알게 하기 위해서 요런 말을 했죠, 고정된 게 하나도 없다고. 부처님 경전에 찰나찰나 나툰다는 소리는 있어도, 공했다는 소리는 있어도, 고정된 게 없다고 하는 말은 없습니다. 고정된 게 없다! 보는 것도 고정된 게 하나도 없고, 우리 이 한 덩어리가, 일거수일투족이 다 그렇게 고정된 게 하나도 없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나를 세울 것도 없다, 나를 내놓을 것도 없다, 내가 했다고 할 것도 없다 그럴 때, 그게 정녕코 알아졌을 때 여기다가 그냥, 스스로 일을 하면서도 그냥 놓고 가고, 뭐 놓고 가려고 해서 놓고 가는 게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놔진단 얘기죠, 그냥 믿으니까.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그러니 얼마나 좋습니까?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일을 하고, 어떠한 일을 해도 일을 하고, 안에서도 일을 하고 바깥에서도 일을 하고, 그러니 이 세상에 하나도 부러운 게 없다 이런 말을 하게 돼요. 부러운 게 뭐 있겠습니까?
‘아주 착을 놔라’ 이러는 것도 이름일 뿐이고요, ‘번뇌를 끊어라’ 이러는 것도 이름일 뿐이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대로 우리가 더하고 덜함도 없이 그냥 여여해서 고정된 게 하나도 없고 그냥 굴러가는 수레와 같다. 그 수레에는 바로 심봉이, 주장자가 그 속에 꿰어져 있어서 굴러가는 거다. 그냥 굴러가는 거다. 그리고 그 대치를 하려면 심봉을 믿어서 거기다가 다 그냥 놓게 되면 스스로 굴러서 다 재생이 되고 또 일들이 타협적으로 된다는 거죠. 이거는 아주 심성과학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인간이라면 개개인의 원자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여기다가 모든 거를 놓으면 그 한마음에서, 한생각에 의해서, 여기서 바로 입자로 화해서 분자로 다 나누어져서 모두 각기 자기 역할을 하죠. 개가 왜, 집에 낯선 사람이 오면 짖죠? 그렇게 짖는 거와 같이 자기한테 결부된 사람 앞에서는 다 조절을 해요, 다. 그렇게 마음의 자기 주인이 신하다 주인이다 할 게 없이 평등한 마음에서 분자가 될 때는, 바로 거기에서 뭐가 되느냐 하면 아촉도 되고 아미타도 되고, 미륵도 되고 용신도 되고, 지신도 되고, 뭐 관세음도 되고 칠성도 되고, 지장도 되고 아니 되는 게 없이 그렇게 분배돼서 나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 사람의 원자에서 나가는 게 그렇단 말입니다. 그렇게 나가서 또 다시 들어오면은 그냥 원자일 뿐이죠. 그래서 꺼내도 줄지 않고 넣어도 두드러지지 않는다고 하는 건 마음의 법이기 때문이죠. 그러니 아니 되는 게 없어요. 여기 여러분이 그저 몸이 있을 때 공부 열심히 하세요. 그리고 넓게 생각을 하시고, 우리가 들어 있는 요 안에서만 생각하지 마시고, 요 안은 거기다가 맡기고 더불어 넓게 좀 보시고요, 이렇게 사세요. 그런다면 우리가 어느 땐가는 “아하, 이게 이런 거로구나. 마음은 항상 체가 없다고 하더니 이 마음 하나가 우주를 덮고도 남는구나. 이럴 수가, 이럴 수가!” 하고 하늘을 쳐다보고 그냥 주먹으로 치고, 땅을 내려다보고 주먹으로 치고 너무 기가 막혀서 울다가 웃다가 한다는 얘기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좀더 벗어나려면 마음공부 열심히 해야죠. 신도님들 이외에 딴 분들 가만히 보면 기복으로 젖어서 그냥, 노래하는 걸 봐도 그렇고, 기도드리는 걸 봐도 그렇고, 염불하는 걸 봐도 그렇고, 아주 그냥 다 그래요. 기가 막혀요. 그리고는 요만한 등잔을 쭈욱 절마다 놓고선 거기다 꼬리표 해서 붙이고요. 나는 참 너무 어리석다고 생각이 드는 게 뭐냐 하면 ‘세상에 저렇게 눈 떼어 놓고 코 떼 먹고, 하하하…,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부처님은 자비하기도 하시지.’ 뼈다귀를 요 발가락까지도 고아서 먹어도 그냥 아무 소리가 없어요. 하하하…. 그러니 아이구, 참 별의 별나게 해 먹어도, 껍데기를 벗겨 먹어도 가만있고, 뼈다귀를 고아 먹어도 가만있고, 뭐 살을 떼면 또 살이 붙고, 또 떼면 또 살이 붙고 이러니, 아니 영구히 떼어 먹어도 아마 다 못 떼어 먹을 겁니다. 그러니 별의별 짓을 다 하고 그러는데, 우리 불법을 지니고 살아나가는 사람이 어떻게 나가느냐에 따라서 부처님 법이 완전히 설 수도 있고, 어떻게 사람들이 하느냐에 따라서 미신이 될 수도 있고 귀신이 될 수도 있고 그렇단 말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의 마음이 제일 중요한데 어떻게 부처님 법을 올바로 알 수 있는가? 불교라 하면 그저 스님네들만 불교를 가진 줄 알지 마세요. 이 세상 천지가 다 불교예요, 생명 가진 거는 다. 지수화풍도 생명을 가졌으니까 다 불(佛)이고요. 그래서 불, 불, 불, 천체가 생명 가진 거는 불 아닌 것이 없죠. 그래서 불성 없는 게 없다 이런 말이죠. 불성은 누구에게나 다 있다. 그 불성이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의 영령이, 즉 말하자면 뜻으로 통하고, 말로 통하고, 마음과 마음으로 통해서 온 세계가, 아니 우주 삼라만상이, 우주 뿐만 아니라 과거·미래·현재 이것이 그냥 돌아가는 그 자체를 우주라고 한다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의 우주 천하’ 이렇게 할 수 있죠. 우주 천하! 그것이 한생각에 한 찰나에 돌아갈 수도 있는 거죠. 한 찰나입니다. 그래서 항상 빛보다 더 빨리 돌아간다고 그러죠. 또 빛은 가다가도 하차할 수가 있지만, 이 찰나의 마음이라는 것은 바로 땅속이나 천지 어디든 깊어서 못 간다, 넓어서 못 간다, 높아서 못 간다가 없어요. 과거로도 돌아갔다가 미래로도 갔다 현재로도 왔다가, 마음대로 자유자재니까요.
그러니까 우리가 깨닫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뜻을 들어서 알고 있으면, 그렇다더라 하고만 있어도, 요다음에 나올 때는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몸을 어떻게 가지고 나오느냐 하는 것도 자기가 자유자재할 수 있죠. 정말 몸을 어떻게 가지고 나오느냐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건 이차적이고, 일차적으로는 몸을 내가 어떻게 가지고 나와서 어떠한 소임을 맡느냐? 그리고 그 소임을 맡아서 얼마만큼 사람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고, 먹여 살릴 수 있고, 얼마만큼 사람을 만들 수 있겠느냐, 이런 것도 있죠. 그러니까 여러분이 될 수 있으면 모든 생명들을 다 살릴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시길 바라고, 또 만백성을 다 거느리고 살 수 있는 그런 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한 번 거쳐야…, 그렇게 해도 부처님이죠, 뭐. 꼭 머리만 깎아야 되는 게 아니니까요. 우리가 대통령이 된다 이러는 것도 과거로부터 지어 놓지 않았으면 안 됩니다. 그건 절대예요. 자기가 지어 놨기 때문에 나쁘든 좋든 그렇게 되는 거죠. 그런데 이 윗조상들이 그렇게 해서 자기가 대통령이 되었는데 자기는 그걸 몰라. 그러면 요다음에 또 이어지질 않아요. 자기를 아는 사람 같으면 잘 리드해서 둥글게 나갈 수 있죠. 그리고 그런 힘이 있다면 백성들에게 혼란을 가져오게 하지를 않죠, 그 힘이 있다면.
그러니까 여러분이 죽으나 사나, 못났든 잘났든 한생각을 그냥 잘 내세요. 이 공부한다고 해서 벼락부자가 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래도 자기 앞가림은 할 수가 있으니까요. 얼마나 좋아요? 앞가림도 하게 해 주지, 공부하게도 해 주지, 그저 마음 착하게 살도록 하고 세세생생에 이어지게 해 주지. 자기 원소 자체가 얼마나 좋아요? 질문하실 거 있으면 질문하세요.

▲질문자1(남): 큰스님께 이렇게 질문드릴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하고요. 또 이렇게 높은 법문을 설해 주셔서 정말 영광으로 생각하고 항상 열심히 매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게 된 것은요, 예불 끝나고 나서 가끔씩 천도재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경우에 옆에 남아서 같이 마음을 내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데 어떤 법우가 어제 저한테 그런 질문을 했습니다. 그렇게 천도재 지낼 때 옆에서 참여를 하고 있었는데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마음을 냈느냐, 그런 질문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그 질문을 받고 보니까 저도 뭐 아는 것도 없고 어떻게 대답을 하기가 참 난감했는데 제가 한 그대로만 얘기를 했습니다. “일체를 다 둘로 보지 않고, 영가도 나와 둘로 보지 않고, 또 천도라는 것도 내가 하는 것도 아니고 근본자리에서 하는 것이니까,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오로지 그 근본자리에서만이 진리의 세계로 올바르게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진실한 마음으로 관(觀)한다.” 그렇게 대답을 했거든요. 그런데 과연 그것이 올바른 대답이었는지 그것도 알 수도 없고, 또 제가 올바로 했는지 그것도 알 수 없어서 큰스님께 이렇게 질문드리게 됐습니다. 가르침 부탁드리겠습니다.
▲큰스님: 내가 재사 지내거나 천도재를 하거나 이럴 때 왜 떡을 둥그렇게 몇 조각 해 놓으라고 그랬는가 하면요, 우리가 살아생전에 이렇게 반찬을 해서 놓고 먹고 이러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다가 도로 묶어 놓으려면 반찬들을 해 놓고 그렇게 뚱땅거리고 지내도 되고, 그렇지 않고 부처님하고 한자리를 하게끔 하려면 그냥 둥그렇게…, 그것도 안 해 놔도 되는 건데, 남이 볼 때도 그렇고 우리도 섭섭하고 그러니까 둥그런 떡을 하나 해 놓고 삼색 과일만 한 그릇에 그냥 놓고 초 향만 켜고 지내라고 하는 겁니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이 살면서 지어 놓은 그 먹고 살던 습이 죽어서도 떨어지지 않는다면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거죠.
그래서 죽어서도 자기가 먹고 살던 그 생각이 나서 자꾸 뭘 해 달라고 그러거든요. 먹지도 못하면서도 먹게 해 달라고 하고 성가시게 굴거든요. 그게 뭐냐 하면은 성가시게 군다 하더라도 잘되기만 하면 좋은데 잘못됐으니까 성가시게 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살아 있는 양 생각을 하고 그러는 거죠. 그러니까 ‘떡을 하나 해 놓고, 지내는 사람이 떡 안에 다 한마음으로 넣어야 된다. 그리고 지내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지낸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한마음’ 하면 벌써 떡 하나예요. 한마음 하면 떡 하나로 표현해도 돼요. 그래서 우리 모든 영령들을…, 이런 좁쌀 알갱이 하나에다가 일체제불의 마음을 다 넣어도 이게 두드러지지도 않으면서 똑 알맞고, 일체제불의 마음을 이 큰 그릇에다가 넣어도 또 크면 큰 대로 차고 작으면 작은 대로 차고, 아주 그렇게 여여하다 이 소립니다.
자손들이 부모에게 재사 지낼 때에 조상들이 살 때의 그 습기를 다 떼게끔 내 마음과 둘 아니게 만드세요. 내가 지금 공부하고 있잖아요? 그러면 조상의 마음도 주인공에다가 모든 걸 굴려서 놓으면 거기에서 굴려서 다 세척이 되듯이 깨끗하게 모두 나오죠. 왜, 세탁소에 들어가면 깨끗하게 빨래가 돼서 나오죠? 그런 거와 같이 된단 얘기예요. 그럼으로써 그 떡 하나도 족하다 이런 말이죠. 이 떡 하나를 가지고 이 세상을 다 먹이고도 떡 하나는 되남더라 이런 말이에요.
▲질문자1(남): 그런데 굳이 이렇게 천도재를 형식적으로 지내지 않더라도 저희들이 일상생활에서 밥을 먹을 때도, 항상 일체 중생들과 또 조상 영가와 다 함께 같이 한다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먹게 되면 그것도 그 작용을 한다고 이렇게 들었거든요.
▲큰스님: 그건 당신 마음이지. 그거는 당신 마음이고 죽은 영가들은 그렇지를 않아. 우리 여기 살아 계신 분들도 다 마음이 천차만별인데, 죽은 사람이라고 어떻게 똑같을 수가 있나. 이런 도리를 하나도 모르고 돌아가신 양반들은 절대 그게 아니야. 그렇기 때문에 그걸로라도 하면서, 이게 왜, 콱 해 놓으면 부러진단 말 있지. 너무 눅진눅진해도 안 되고, 너무 강해도 안 되고 그러니까 알맞게 하면서 서서히 맑게 청정하게 이끌어 드리는 거지.
▲질문자1(남):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 질문이 더 없는 것 같습니다. 이것으로써….
큰스님: 질문이 없어요? 그래요? 질문을요, 꼭 모르는 것만 질문을 하시라는 게 아니에요. 예를 들어서, 알면서도 떡 그릇에 그냥 엎어지는 수가 있죠. 알면서도 그냥 덮어놓고 들어가는 수가 있죠. 그런 거 말이에요. 그런 것에서 많이 얻을 수가 있죠. 참작할 수가 있죠. 그러니까 여기 분들은 모두 이제는 다 도인들이 되셔서, 하하하…, 이거 해도 아시고, 저거 해도 아시고, 그거 해도 아시니까 다 그저 열심히, (합장하시며) 여러분과 저와 도반이니까 열심히들 해 봅시다.

※위 법문은 1995년 6월 4일 법형제법회에서 설법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나 한마음선원)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06-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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