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5 (음)
> 종합 > 기사보기
<68>‘분별심’은 어떻게 분별하지?(1)/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분별심을 일으키지 말라’는 참뜻은?
부처님, 세밀하고 냉정하게 따져 본 후
제자들에 깊이 생각해 판단할 것 주문

가까운 사람 중에 언론계에서 일하고 있는 이가 있습니다. 어느 날 이 사람이 참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아니, 불교에서는 분별심을 일으키지 말라고 그런다면서요?”
“예.”
“분별심을 일으키지 말라면 그건 분별하지 말라는 말 아닙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지요.”
“그게 말이 됩니까? 어떻게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지 않고 세상을 살아갑니까? 그럼 범죄를 저지른 사람과 남을 위해 희생한 사람을 똑같이 대하여야 한다는 말입니까?”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솔직히 나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왜냐하면 예전에 <반야심경>을 함께 읽어가는 자리에서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한 것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사기꾼이나 도둑도 이 세상에는 다 필요한 사람이란 말이군요. 그들이 있으니 경찰이며 판검사 같은 사람이 먹고 사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사기꾼을 두고 나쁘다거나 경찰을 두고 옳다고 분별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바로 부처님 말씀인 것이지요.”
나는 이때도 말문이 막혔습니다.
‘분별심을 일으키지 말라’라는 말은 불자들에게는 너무나도 쉽게 부담없이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그래서 ‘왜 분별심을 일으키지 말라고 합니까’라는 질문조차도 분별심에 사로잡힌 수준 낮은 사람들이나 하는 질문이라 생각해서 궁금해 하지도, 궁금해 할 수도 없었던 것이 불교계의 현실이었습니다.
과연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아야 하는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생각 때문에 생사 윤회하는 것이니 이런 생각조차 일으키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요? 그러면 생각을 할 수 없는 나무나 돌은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으니 지금의 나보다 한 단계 더 깊은 경지에 놓여 있는 것일까요?
분별심을 일으키지 말라는 말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옳다 그르다, 밉다 곱다 착하다 못됐다… 이런 상대적인 생각을 내지 말라는 말이라는 대답도 합니다.
하지만 나의 감각기관인 눈, 귀, 코, 혀, 몸은 이미 내 나름대로의 판단을 가지고 바깥세상을 받아들이는데 그럼 내 감각기관의 기능 자체를 부정해야 한단 말일까요?
그리고 내 옆 사람이 아주 끔찍한 일을 저질러서 주변 사람이 매우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합시다. 그럼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 잘 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 판단도 하지 말고, 그런 시비를 가리는 사람들을 향해 ‘네 발 밑이나 잘 살펴봐라’라고 일침을 주고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게 해야 할까요?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른 사람을 앞에 두고 ‘너의 행동에 대해 옳으니 그르니 분별심을 내지 말라’고 말해야 할까요? 자식이 못된 친구들과 어울리는데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도 분별심인 걸까요?
사람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이가 나왔을 때 ‘당신은 지금 잘못하고 있다’라고 말한다면 이 또한 분별심을 일으킨 것이 될까요? 왜냐면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 옳거나 그르다는 판단이 내려졌다는 말이니까요.
부처님 자신도 막 출가한 뒤에 당시 이름 높은 수행자들을 찾아가 그들의 가장 완전한 경지까지 도달한 뒤에는 “이것은 궁극의 경지가 아니다”라는 판단을 내리고 그들과 헤어졌습니다. 이런 행동은 역시 뭐가 옳고 그른지를 세밀하고 냉정하게 따져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초기 경전인 <아함경>을 보아도 의외로 부처님은 항상 모든 일을 심사숙고하여 선한 일, 선하지 않는 일, 올바른 일 그릇된 일을 판단하고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내가 이제부터 설명할 터이니 그것을 고요한 곳에 앉아서 골똘하게 깊이 생각하라”는 주문을 항상 넣습니다. 나아가 당시 다른 종교나 사상의 오류를 예리하게 짚어내어 그들이 왜 착하지 않고 그릇되었는지를 제자들에게 일러주신 예도 꽤 많습니다.
게다가 과거 일곱 부처님의 그 유명한 게송을 보아도 “그 어떤 악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힘써 행하여 그 마음 스스로 깨끗하게 하라”고 당부하고 계십니다. 이런 당부를 실천하려면 가장 먼저 선악과 시비를 따져야만 하는 것은 기본 중에서도 기본입니다.
어떤 경계와 맞닥뜨려서도 일체의 분별심을 일으키지 말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런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분별심을 일으키지 말라는 말을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받아들이는 불자들은 이런 의문들을 다 해결하였을까요?
2006-06-07
 
 
   
   
2024. 5.22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