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과정이었든 어떤 결과였든 그것이 우리에게 교훈이 되지 않는 것은 없다. 이번 5.31 지방자치 단체 선거 과정이나 결과 역시 마찬 가지다.
‘집권 여당의 완패’ ‘한나라 당의 싹쓸이’ 로 표현되는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수많은 분석과 해석이 뒤따르고 있다. 주로 현 정권 구성원의 독선과 오만, 저급한 통치 스타일이나 세계사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아마추얼리즘, 경제경시 정책 등 국민정서에 역행하는 정치 행태에 대한 지적이 많다. 맞는 말이다. 여권에서도 이점을 처음으로 반성하는 기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가 그동안 점진적으로 발전시켜 온 한국의 민주적 선거문화에 새로운 경험과 반성을 더해 주고 있음도 살펴야 한다.
지난 반세기동안 선거 판은 혼탁하고 부정과 부패의 온상이었다. 어느 선진 민주국가이든 초기 민주주의 단계에서 겪었던 과정을 우리도 겪었을 뿐이다.
지금 한국에 그런 후진국적 선거문화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나름대로의 선거법 개정이나 높아가는 민도가 후진 문화를 추방해 온 셈이다.
대신 정치권은 야비함과 교활함, 흑색선전에 편 가르기, 저질적 발언 등으로 새로운 진흙탕을 만들었고,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선동 정치에 맛들이기 시작 했다.
집권여당이 석권했던 2004년 총선은 ‘탄핵’이라는 야당의 극단 대응을 역이용, 국민정서를 자극하여 얻어낸 결과였다. 국민정서가 정치권에 의해 한번 크게 흔들린 것이다.
한때 정치인들이 ‘국민정서가 가장 무섭다.’고 한 적이 있다. 정서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치적 판단에는 정서보다 냉정한 이성이 더 필요하다.
극단은 극단을 불러온다. 지난 총선과 이번 지자체 총선의 쏠림현상은 그런 의미에서 같은 리듬,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지그재그로 운전하는 버스 승객의 좌우 쏠림과 비교해 보라.
한나라당의 압승은 절대적인 국민적 지지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선거에서 ‘압승’이라는 것도 바람직한 결과가 아니다. ‘놀랍고 두렵다.’는 한나라당의 압승 반응은 오히려 당연하다.
그런 의미에서 21세기 초 우리는 극단이나 선동의 결과에 대한 큰 경험과 여기에 대한 얼마간의 항체를 키웠을 것이다. 한편 극단을 경계하는 ‘중도’라는 부처님 가르침을 한번 되새겨 보게 된다.
정치인들이나 국민이 극단을 버리거나 극단에 휩쓸리지 않고 중도를 찾는다면 사회적 혼란이 일어 날 리도 없다.
민주화는 세계적인 흐름이고, 민주화의 질을 높여 가는 것이 국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오래전부터 여기에 주목하고 있다. 민주화의 질은 정치권이나 국민의 정신적 차원이 만들어 낸다.
오랜 역사 속에 우리가 간직해온 ‘중도’나 ‘팔정도’ 는 정신적 차원을 고양시키는 소중한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분열과 증오 등 이 시대 고질적 증상을 화합으로 치유하는 약제로도 이만한 것이 없다.
중도란 극단과 극단 사이에 자리한 고요하고 깨어있는 마음 상태로 만약 이러한 마음 상태를 가질 수만 있다면 여기서 확장된 통찰력으로 당면 문제들의 본질을 냉정하게 짚어 보고 그 해결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도의 마음가짐이 그렇게 쉬운 경지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적어도 정치인이나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정신적 차원을 높이기 위해 ‘중도’를 정치의 이상적 목표로 삼을 수는 있을 것이다.
오늘의 진흙탕 속에서 그런 연꽃을 키워가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