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 종합 > 기사보기
<51>데카르트/서울대 전기공학부
물리적 세계인 기하학·영적세계인 해석학 결합
기독교 속박서 벗어나 자연과학 발전 물꼬 터

근대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의 명언은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서양의 과학사에서 데카르트가 왜 그렇게 많이 회자될까. 데카르트의 출현을 이해하려면 먼저 서양에서 17세기가 갖고 있는 의미를 알 필요가 있다. 당시 서양은 오랜 중세의 암흑에서 벗어나 찬란한 전환의 시대를 맞고 있었다.
중세 암흑시대는 고대 문명인 로마의 멸망과 게르만 민족에 의해 비롯됐다. 글자·제도가 없는 게르만 민족은 로마의 전통과 찬란한 제도·문명·그리고 철학을 파괴했다. 그나마 이러한 중세의 암흑 와중에도 카톨릭 수도원에 의해서 글자와 문명은 유지됐다. 불교의 사원과는 다르게, 기독교는 포교를 위한 교회와 수도를 위한 수도원으로 나누어져 있다. 사회와 분리된 수도원에 의해서 오히려 문화가 유지된 것이다.
스콜라 철학의 끝자락에서 ‘영혼과 물질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나온다. 데카르트는 이러한 시점에서 해석기하학을 세운 사람이다. 기하학과 해석학의 결합, 이것이 데카르트의 업적이다. 역사적으로 기하학은 현실에 대한 학문이다. 토목, 건설 등 공사에서 인류는 기하학을 이용했다. 특히 삼각함수를 이용함으로써, 토목공사에서 높이 측량의 정확성을 제고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서 전통적으로 해석학은 다분히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학문이다. 물리적 세계의 기하학과 영적인 세계의 해석학이 한가지로 결합되는 길을 연 사람이 바로 데카르트다.
몇 가지 수학적 원리로 자연의 원리를 설명할 수 있듯이, 진리 또한 가장 기본적인 원리를 발견하면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가장 명료한 진리를 찾고자 한 바탕에 바로 데카르트의 ‘나’가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나서 남는 제일 원칙으로 ‘cogito’라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진리의 바탕을 세우려고 하였다. 우리의 주위에서 인식되는 사물의 존재를 아무리 의심해도, 마지막으로 남은 그 의심하는 나를 가장 기초가 되는 원리로 인식한 것이다. 그리고 이 cogito를 영적인 세계와 물질의 세계의 연결통로로 보았다고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사고의 틀 내에서 수학으로 자연의 진리를 설명하고 체계화하고자 하는 전통이 생겼다. 수학에 의해서 당시 ‘연금술’과 같았던 기술을 합리화 시키고 산업혁명의 기틀을 마련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영적인 원리에 대해서는 따로 그 길을 열어주고, 자연의 원리는 자연의 원리대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기독교의 속박에서 벗어나서, 자연과학이 발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전통, 즉 과학적인 방법론이 계속 인류의 방향을 결정할지는 확실하지 않다. 현대의 과학이 가져다 준 환경재해, 인간성의 피폐화를 보면서, 의심할 수 없는 ‘나’을 더 근저까지 추가해 간 동양의 선이 궁극적인 해답을 주지 않을까, 또 해답을 얻기 위해서 불자들의 대승적인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2006-06-07
 
 
   
   
2024. 11.23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