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숙한 노년의 지혜와 저돌적인 청년의 기상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건강한 사회 아닐까요
관리실 앞에 옆집 할아버지가 앉아 계셨습니다.
평소 정정하고 꼿꼿하셔서 80을 넘기셨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는데 오늘 밝은 거리에서 할아버지를 보았을 때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깊이 팬 주름살, 지팡이를 짚은 채 달달 떠는 손, 자꾸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 내느라 그만 벌겋게 짓물러버린 눈가….
왜 밖에 나와 계시냐고 인사를 드리는 나를 아득하게 바라보다 가까스로 누구인지 기억해내시더니 “이젠 늙어서 자꾸만 잊어버리는구먼. 집 열쇠도 잊어버렸고 아이들 휴대폰 번호도 기억이 안 나네.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라고 답하셨습니다. 불과 1년 전에 내게서 <채근담>을 빌려 가셔서는 “좋은 책 빌려주어 아주 잘 읽었소이다”라며 정중한 인사와 함께 책을 돌려주신 신사분이셨습니다. 쩌렁쩌렁 울리던 음성도 시간의 길목에서 도둑맞으셨는지 목소리마저 힘이 없어서 떨렸습니다. 그늘에 앉아 가족 중 누구 한 사람이 돌아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할아버지를 뒤로 하고 그곳을 떠날 때 자꾸만 마음 한 켠이 내려앉았습니다.
늙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닙니다.
아난존자도 늙어버린 부처님의 발을 어루만지다 발등에 입을 맞추며 눈물을 흘린 적이 있고(증일아함경), “사람이 늙으면 괴로워지니 머리가 희어지고 이가 빠지며 눈은 흐릿해서 침침해지고 귀는 또렷하게 들리지 않으며, 왕성했던 기운은 쇠약해지고 피부는 늘어지고 얼굴은 쭈글쭈글해지며 온몸의 마디가 쑤시고 아프며, 앉았다 일어날 때는 힘이 들어 신음하니 근심과 슬픔으로 괴로워한다. 정신이 차츰 쇠약해져 오줌을 싸고도 잊어 버리고 목숨이 다할 날이 차츰 다가오니, 이를 한탄하면서 눈물을 흘린다.”(불설팔사경)라고 하여 부처님도 인생의 덧없음을 일깨워주는 반면교사로서 ‘늙음’을 말씀하고 계실 정도입니다.
세월이라고 하는 보이지 않는 손에 할퀸 노인의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 노인이 바로 어제의 그 싱싱한 청춘들이었음을 인식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들은 영원히 청장년일 줄만 아는지 노인들과 어울리기를 꺼리고 노년의 충고를 간단히 무시하고 경멸합니다.
고대 로마의 현인인 키케로는 “인생의 주로(走路)는 정해져 있네. 자연의 길은 하나뿐이며, 그 길은 한번만 가게 되어 있네. 그리고 인생의 매 단계에는 고유한 특징이 있네. 소년은 허약하고 청년은 저돌적이고 장년은 위엄이 있으며 노년은 원숙한데 이런 자질들은 제철이 되어야만 거두어들일 수 있는 자연의 결실과도 같은 것이라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숲, p.44). 그렇게 다양한 성향의 신구세대가 어우러져 살고 있으니 청년은 노년에게서 원숙함을 빌리고 노년은 청년에게서 저돌적인 기상을 빌려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가는 것이 세상살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솔직히 요즘 시대를 돌아보면 저돌적인 청년과 원숙한 노년은 서로 잘난 체하면서 나이든 이는 제 나이를 믿고서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것을 너희는 몰라. 너희가 안다는 것은 마치 저 반딧불이 와도 같다”고 젊은이를 조롱하고, 젊은이는 자신의 총명과 지혜를 믿어 “늙고 고집불통인데다 완고하고 정신도 흐릿한 노인네가 뭘 안다고 저리 나서는가?”(출요경)라며 업신여기기만 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지하철에서 노약자 우대석에 앉아 있던 한 노인과 청년의 실랑이가 아직도 기억에 선합니다. 통로 출입문을 열고는 닫지 않고 그냥 지나던 청년에게 노인이 크게 호통을 쳤습니다.
“야, 인마! 문 닫고 가!”
그러자 청년이 홱 돌아서 더 큰 목소리로 “에이, XX! 뭐라고 그랬어!”라고 소리치더니 그 노인이 앉아 있는 자리로 성큼성큼 걸어가 멱살이라도 쥘 기세로 바싹 다가섰습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주위 사람들이 너무 놀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젊은이는 분한 기색을 참을 수 없다는 듯 몇 번 씩씩거리다가 그냥 지나가 버렸고, 예절도 모르는 젊은이를 크게 호통 치며 따끔하게 가르치려던 노인은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모멸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노인은 애써 태연한 얼굴로 민망함을 감추며 그가 열어젖힌 문을 닫았습니다.
그날 젊은이의 무례한 태도는 백 번 비난 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 노인이 조금만 노기를 누그러뜨리고 원숙한 노년의 지혜로 젊은이를 불러 세웠더라면…, ‘야, 인마’라는 말 말고도 젊은이를 부를 호칭은 얼마든지 있었는데…하는 아쉬움은 지하철을 내리고도 오래도록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