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어(金魚) 만봉(萬奉) 스님이 입적했다. 세수 96세. 평생을 붓 하나로 붓다의 모음(母音)을 세상에 전하더니, 이제 먼 길을 떠났다. 우리 불모(佛母)의 역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보는 것 같다. 스님은 10대부터 금어 예운 스님의 문하에서 붓을 들었다. 1926년 봉원사로 출가한 이래 금어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독보적인 길, 그러나 외롭고도 어려운 길이었다.
식민지, 분단, 전쟁, 독재, 민주화의 길을 겪으면서 그리고 서구문화 팽창시대를 겪으면서 전통불화를 지킨 그의 일생은 새삼 경이로워 보인다. 아무리 정부에서 스님에게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 예능보유자로 지정(1971년)하여 기린다 해도 스님의 빛나는 행적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으랴.
나는 지난해 6월, 인사동 모란갤러리에서 연 스님의 개인전을 관람했다. 그러고 보니 스님의 마지막 개인전 자리였다. 95세의 화가답지 않게 전시장은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도저히 95세 현역화가의 작품 발표전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거기서 나는 상단탱화, 감로탱화, 팔상도, 나한도, 관음보살도 등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을 보았다. 전통성을 지키면서 새로운 시도도 사양하지 않았다. 정말 개인전의 제목처럼 ‘현세에 꽃 피우는 극락’이 따로 없었다. 붓으로 보여준 극락, 스님은 노구를 이끌면서 이를 성취한 것이다.
나는 지난 1980년대에 스님과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 후 스님의 작품들을 접하면서 우리 전통 불화의 위상에 대하여 남다른 관심과 고민을 기억에 담기도 했다. 스님의 마지막 전시장에서 나는 하나의 결론을 얻은 것 같다. 세태가 어떻든 우리의 전통은 우리가 지켜야 하고, 더불어 법고창신(法古創新)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금어 만봉 스님은 우리들의 곁을 떠났다. 하나의 전통이 무너진 것이다. 하나의 전환점을 돌고 있다는 느낌이다. 예전에 어떤 미대생이 만봉 스님의 문하에서 전통 불화를 수학하고 작가로 성장하는 사례를 본 적이 있다. 이제 불화의 전통성 담보와 더불어 우리 시대에 걸맞는 대한민국 시대의 불화가 풍성하게 열매맺기를 기대해 본다. 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