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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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마군의 경계에 흔들리지 않으면/원순 스님(송광사 인월암)
분별, 올곧은 삶 해치는 마군
화두 챙기면 부처님 삶 보장

사람들은 대개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자기에게 이익인지 손해인지를 잘 따져 제 몫을 챙겨야 똑똑한 사람이라고 한다. 요즈음 세상에서는 그렇게 가르치고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럴수록 행복하고 편안한 것이 아니라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사람들은 더 거칠어지고 있다. 시비가 시비를 낳고 득실이 득실을 따지게 하니, 개인적인 욕망이 한없이 커져 자신의 처지에 만족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행복해지려면 헛된 욕망을 키우지 말아야 한다. 잘못된 욕망을 키울 수밖에 없는 자기 중심의 이기적인 마음을 버려야만 한다. 이것은 올곧은 삶을 해치는 마군(魔軍)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온갖 분별 자체가 중생의 삶과 죽음을 되풀이하게 만드는 근본 마구니이다.
화두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오로지 화두 챙기는 일만이 마군의 경계에 흔들리지 않는 아름다운 부처님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 <선가귀감> 19장에서는 말한다.
工夫 到行不知行 坐不知坐 當此之時 八萬四千魔軍 在六根門頭伺候 隨心生起 心若不起 爭如之何
화두를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걸어도 걸어가는 줄 모르고 앉아도 앉아있는 줄 모르는 경계에 이르게 된다. 이때 팔만사천 마군들이 보는 곳, 듣는 곳, 냄새 맡는 곳, 맛보는 곳, 몸으로 느끼는 곳, 경계를 분별하는 곳 거기에서 조그마한 틈을 엿보고 있다가 마음 쓰는 곳을 따라 온갖 계책을 꾸밀 것이다. 그러나 그 경계에 흔들리지 않는다면 마군들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있겠느냐?
화두 공부는 선택이 아니다. 화두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챙겨야 할 화두가 전부이다. 화두 속에 들어가 화두와 하나가 되어 수미산과도 같이 어떤 경계에도 흔들림이 없이 화두를 챙겨가야 한다. 차를 마셔도 차를 마시는 줄 알지 못하고 밥을 먹어도 밥을 먹는 줄 알지 못하며, 걸어도 걸어가는 줄 모르고 앉아도 앉아 있는 줄을 몰라야 한다.
모든 알음알이가 단숨에 사라져서 숨만 남은 송장이나 진흙으로 만든 인형처럼 되어야 한다. 그래야 화두를 떠나 일어나는 생각은 모두 망상이요 마군(魔軍)이 된다.
서산 스님은 말한다.
“마군이란 생사(生死)를 좋아하는 귀신들의 이름이다. 팔만사천 마군이란 팔만사천 번뇌를 말한다. 마(魔)는 본디 근본이 없는 것인데 공부하는 사람들이 바른 생각을 잊는 데서 그 싹이 움트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을 따라 흘러가므로 별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을 거스르므로 마가 대든다. 그래서 ‘도가 높으면 마군이 치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에 들어 있는데 송장 메고 온 상주를 보고는 자신의 넓적다리를 도끼로 찍거나, 멧돼지가 나타나자 자신의 코를 잡아 비틀거나 한다면, 이는 자신의 마음 안에서 일어난 헛된 생각들을 바깥에서 저를 치는 마군으로 잘못 알고 그 경계에 반응했기 때문이다. 마음이 바깥 경계에 흔들리지 않는다면 마군이 부리는 온갖 재주도, 칼로 물을 베듯 빛에 바람을 일으키듯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생사(生死)는 범어 samsara, 혹 jati-marana를 말하는데 쳇바퀴처럼 돌고 도는 윤회(輪廻)라는 뜻이다. 중생이 이기적인 마음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업 때문에, 지옥 아귀 축생 등으로 나고 죽는 삶이 육도에서 되풀이 되어 끊임없이 이어지는 쳇바퀴처럼 그 괴로움이 끝이 없다는 것이다.
중생의 되풀이 되는 생사는 끝이 없어 그 양을 헤아릴 수 없으므로 바다에 비유하여 생사의 바다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생의 생사는 괴로움이 가득 찬 세상이므로 생사고해(生死苦海)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생사는 바깥 경계에 흔들리는 마음이요 이 마음이 바로 마군이다.
옛날에 참선하는 스님이 깊은 산중에서 좌선을 하고 있을 때였다. 선정(禪定) 속에서 어떤 젊은이가 여자 송장을 메고 찾아와 슬피 울면서 “네가 왜 내 어머니를 죽였느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스님은 이 광경을 마구니의 장난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을 쫓아내려고 도끼로 내려찍었다. 상주는 놀라서 달아났지만 스님의 넓적다리가 축축해지는 것이었다. 넓적다리를 보려다가 선정에서 깨어나니 넓적다리에 붉은 피가 흐르고 있고 손에는 도끼를 들고 있었다. 이것이 “선정 속에서 상주를 보고는 넓적다리를 도끼로 찍었다”는 내용이다.
또 어떤 스님이 선정 속에 들어 있는데. 갑자기 성난 멧돼지 한 마리가 나타나서 달려들었다. 스님은 공부를 방해하는 마구니라고 생각하고는 멧돼지의 코를 잡고 비틀면서 “멧돼지가 나타났다”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마침 바깥에서 일하고 있던 일꾼이 그 소리를 듣고 달려와 보니 스님이 자신의 코를 잡고 비틀면서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옛말에도 있다.
壁隙風動 心隙魔侵
벽에 틈이 있으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군이 침범한다.
200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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