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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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어른들의 거울/법현(열린선원 원장)
어린이날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뜻은 무엇인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법화경의 가르침을 빌어서 알아보면 ‘여래께서 알고 계신 것을 제시(開)하고 가르쳐서(示) 제대로 알게(悟)하고 여래처럼 되게(入)’하기 위해서이다. 멋있게 나타내면 중생을 구제해서 부처님처럼 맑고 향기로운 삶을 살게 하는 것이요, 조금 진솔하게 표현한다면 나를 알아주는 이들을 많이 만들어서 남이 아닌 우리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이 맘처럼 쉽지 않아서 인류가 지속적으로 고민해 왔다. 그래서 2천 년 전 동굴인 알타미라 동굴벽화에 새겨진 글의 내용을 알아보니 ‘요즘 것들은 버릇이 없다’는 내용이라고 한 것 일게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많은 이들이 ‘그래, 그래’하며 마치 여래의 법문을 들은 제자들이 ‘사두! 사두!’하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벽화를 그린 이가 어른이라서 그렇지 만일 아이들이 그렸다면 ‘요즘 어른들은 도무지 이해하려들지 않아’ 꽉 막힌 답답한 존재라고 할지도 모른다.
교육학에서도 말하듯이 교육의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가 바로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학생들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청소년들은 너무 시간이 없어서 어른들의 가치관과 고민을 이해하거나 이어 받을 수가 없다. 학교수업 외에도 학원에 나가 몇 시간씩 보내야 하고, 그 나머지 시간에는 컴퓨터 게임하느라 뭐 다른 것을 고민하거나 문화, 예술 프로그램을 통해 여가를 선용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눈이 빨개지도록 밤늦게까지 공부하거나 손바닥 안쪽 끝에 굳은살이 배이도록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다가 잠이 든 아이들이 자신에게 여유가 있다는 사실조차도 알지 못하고 아무 생각 없이 세월을 흘리고 있다. 그런 청소년들이 여유를 가지고 자신을 세밀하게 살피거나, 자신의 몸과 마음 앞에 펼쳐지는 경계를 부드럽게 넘어갈 수가 있겠는가? 그러다보니 담배나 술 심지어 본드 등 환각제나 이성과의 육체적 탐닉 등에 쉽게 빠져들고 처음 만난 날부터 100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밤을 새며 노닥거리다가 자신의 본디 일인 공부나 활동에 장애가 생겨도 아랑곳하지 않는 일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되어 버렸다. 심지어는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청소년들도 꽤 된다는 보고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누구에게나 물어보아도 정부의 잘못된 교육정책이, 의식 없는 의원들이, 지각없는 교사들이 그렇게 만들었다고들 한다. 내 책임은 하나도 없다는 투다. 하지만 학교에서 가르치는 이도, 정부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이도, 자녀들의 일로 심각하게 고민하는 이도 바로 다른 이가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온누리가 고통스러워하고 있으니 내 마땅히 평화롭게 하리다’는 부처님의 탄생게는 문제해결의 책임과 권한이 다른 이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 있다는 적극적 의지의 표현이다.
여론 형성층에 있는 이들은 청소년들에게 여가를 더 많이 주어서 문화 예술적 감각을 가지고 내 몸과 마음도 살필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개발하여야 한다. 우리 종교단체 특히 불교계에서도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며 청소년들의 재미까지도 충족시키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야 한다.
이 분야의 노력에 대해 3대종교를 비교하면 불교는 제일 처진다는 평가이다. 입만 열면 2천만 불자와 1700년의 역사만을 내세워서는 아무런 영험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처님께서 다양한 수준의 사람들에게 꼭 알맞은 ‘눈높이 교육(對機說法)’을 하셨듯이 부처님의 후예인 한국불교 내의 종단과 범불교기구 및 청소년 교화단체, 불교관련학회와 연구소 등에서 효율적인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실천하여야 한다.
200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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