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으로 살지 말고 진짜로 실행하며 살아야
사월초파일을 앞두고 있는 지금, 우리 모두 잘 생각해서 다시 한 번 분발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좁게 써서는 아니 됩니다. 항상 넓은 마음을 가지고, 일체 만물만생과 더불어 같이 아픔을 나눌 수 있는 대심(大心)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말하자면 ‘아픔을 전부 건져서 편안하게 할 수만 있다면….’ 하는 그 대심을 항상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 우리의 본분입니다. 또 한 가지는, 우리가 공부를 하면서 ‘기필코 나의 뿌리를 발견하리라.’ 하고 생명을 걸고 원을 세우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깨달아야 일체 만물이 둘이 아님을 알아서, 일체 만물이 다 내 스승 아님이 없으며, 내 몸 아님이 없으며 내 아픔 아님이 없고, 내 형제 내 부모 내 자식 아님이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게 될 것입니다. 간접적으로 말만 듣고 ‘그냥 그렇다더라’ 하고 가면 실감이 나질 않아요.
가면으로 살지 말고 진짜로 실행을 하면서 살아야, 진짜 사람으로서 우주의 근본 자체가 우리 마음에 직결이 돼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세상만사가 찰나찰나 돌아가는 그 자체가 바로 우리 마음에 가설이 됐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겁니다. 그럼으로써 스스로 일체 만물이 스승인 줄 알고, 이렇게 돼야 돌 하나를 봐도 은혜를 갚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여러분이 정법으로, 정의로 바탕을 삼아서 행해 나간다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뿐만 아니라 우리 조상들과 곤충에 이르기까지 만물에게도 은혜를 갚는 게 됩니다. 이것이 여러 소리 할 게 없이 극치적인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꼭 해야 할 본분입니다.
그러니 우리 하나하나가 혼자 산다고 하지 마세요. 안으로도 혼자 사는 게 없고 밖으로도 혼자 사는 게 없어요. 안 그런가요? 곤충에 이르기까지 직접적으로 주고받는 것은 없더라도 간접적으로도 연결 연결 돼서 주고받고, 서로 돕고 서로 먹으면서 이렇게 살고 있는 겁니다. 어지럽고 귀찮게 이 말 저 말 거기다가 넣어서 말할 게 뭐 있습니까? 여러분이 들어서, 벽을 치면 봇장이 울리듯이 마음의 지혜가 생기고 물리가 터져서 잘해 나갈 수 있도록, 그러한 진실과 행이 꼭 성취돼야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어느 것 하나 은혜로운 모습이 아닌 게 없습니다. 한마디로 비유한다면, 농사를 짓는 사람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먹고 삽니까? 쌀만 농사가 아닙니다. 옷감을 만드는 노동자가 아니라면 우리가 어떻게 옷을 입습니까? 우리가 주고 우리가 받고, 곤충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지·수·화·풍도 빼놓지 않습니다. 물도 생명이 있고, 불도 생명이 있고, 흙도 생명이 있고, 바람도 생명이 있고 마음이 있으니까요.
우리가 조그마한 것 하나를 보면 열 일을 안다고 그랬습니다. ‘이거는 조그만 거니까 이렇게 해도 괜찮겠지.’ 하고 욕심스럽게 한다면 큰 것도 역시 마찬가지로 돌아가게 됩니다. 나는 그렇습니다. 이건 내 자랑이 아닙니다. 신조입니다. 예를 들어서 물건이 이만큼 있는데 몇 명에게 똑같이 주기 위해서 나는 똑같이 맛있는 거를 못 먹을 수도 있습니다. 못 먹는 게 아니라 그 상대방에게 똑같이 맛있는 거를 먼저 주게 되니까, 나중에 없으면 그만이고 있으면 먹고 이런 거지, 욕심스럽게 하는 게 아닙니다. 조그마한 거지만, 그 조그만 거를 방편으로 세웠지만 큰 거나 작은 거나 똑같습니다. 그것이 내 마음 가운데서 스스로 나와야지 억지로는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먼저 맛있는 거를 먹으려고 제껴 놓는다면, 제껴 놓고 아무거나 나눠 준다면, 그것은 내 스스로 정말 ‘전자(前者)’와 ‘현자(現者)’가 한데 합쳐져서 만물을 나 아님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그러한 지혜로운 자가 되지 못한다고 봅니다.
어떠한 문제로 붙들려 가서 법으로 처형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렇고, 처벌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렇고, 경찰서에 갇혀 있다 하더라도 그렇고 너무도 극치적으로 불쌍한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 그렇게 만든 게 아닙니다. 자기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그 영혼의 업식이 자기를 그렇게 만드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미워하지 말라 하는 겁니다.
그리고 한마디 한다면, 사람은 물질로서 모든 역할을 하고, 물질을 주고받고, 잘잘못을 따지고 이러죠. 그러면 어떠한 문제가 생겨도 그건 형식이지 진짜가 못 됩니다. 그렇게 따진다면 진짜 할 수 있는 거를 못합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선 그렇게 하라고 하신 게 아니죠. 전자 ‘부(父)’와 현자 ‘자(子)’가 둘이 아니게 상봉을 한다면 일차적으로 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바로 그것이 견성입니다. 왜, 이런 말이 있죠? 오고 감이 없이 오고 가고, 남의 마음을 아는 게 없이 알고, 또는 어디서 왔는지를 아는 게 없이 알고, 보는 게 없이 볼 수 있고, 듣는 게 없이 들을 수 있어야 법의 철퇴를 친다 하더라도 누가 이렇게 쳤다 이런 게 없이, 모두 하나로 구성된 자리에서 법으로서 내리는 철퇴입니다. 이것이 바로, 평등한 그 자리가 부처님이기 때문에 한 발 내려딛고 법신으로서 법을 내리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내가 여러 말 하기 싫어서 그렇게 얘기했죠. 여러분이 가정에서 살면서 지금 아무리 급한 게 있다 하더라도 싸우지 말고 주인공에다가 모든 걸 맡기라고요. 자식이나 부부지간, 부모지간에 잘못된 게 있다 하더라도, 친척지간에 잘못된 게 있다 해도 그것을 바깥으로 내놓고 정색을 해서 잘못했느니 잘했느니 왈가왈부하지 말라고요. ‘둘이 아닌 까닭에 너만이 그렇지 않게 할 수 있어.’ 하고 안에다 맡겨 놓고, 부드러운 말을 해 주고 부드러운 행동을 해 주고 따뜻하게 해 주라고요. 여름이면 시원하게 해 주고 겨울이면 따뜻하게 해 주면서 내 탓으로 돌린다면…, 내 탓으로 그냥 돌리라는 게 아니에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까 내 탓이지 내가 없었다면 왈가왈부할 것도 없죠. 안 그렇습니까? 그러니까 잘했든 못했든 모두 내 탓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해 나간다면 가정과 부부와 자식 사이에 모두 화목을 가져올 수 있고, 질서를 지킬 수 있고, 즉 말하자면 도의, 의리를 지켜서 우리가 화목하고 자유스럽게 웃고 살 수 있고 자비를 베풀 수 있는 거죠. 남을 이익하게 해 주고 고통 속에서 건져 주는 바로 그것이 자비입니다.
여러분한테 여러 말 안 해도 주인공이라는 것을 잘 아시겠죠. 주인공이라는 것은 개별적인 나 하나가 아닙니다. 안에도 포함됐고, 바깥에도 포함됐고, 쉴 사이 없이 끊기지 않고 시공을 초월해서 돌아가는, 이 자체의 삼라만상 대천세계를 그대로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홀히 보지도 말고 높이 보지도 말라 이겁니다. 높이 보면 어그러지니까, 내려봐도 어그러지고, 그러니 나와 똑같이만 봐라 이겁니다. 법당에 들어와서도 형상적인 부처라고 보지 마시고 ‘내 형상과 둘이 아니다.’ 이렇게 봐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데서 50%가 확산되니까 말입니다.
부처님은 보이지 않는 데서 모든 행을 하셔서, 즉 말하자면 천백억화신이라고 했지만 그건 수효가 없는 숫자를 말하는 겁니다. 여러분도 여러분 몸속에 있는 그 자생중생들이 화(化)하게 되면 시쳇말로, 원자에서 입자로 나가서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다는 얘기죠. 그러니까 이 원자로 인해서 입자가 되고, 입자로 인해서 소립자도 되고 또 원자도 되고, 이렇게 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발전하고 개발하려고 해도, 그러한 지수화풍의 근본 자체가 없다면 아무것도 없으니 안되는 거죠. 그게 있기 때문에 전체가 있는 거죠. 그러니 보이지 않는 데서 보이는 데로 나오는 것입니다. 생산이 돼서 나오는 거죠. 생산이 돼서 나왔다가 또 꺼지면서, 또 보이지 않는 데 원자로서 또 다시 화해서 진화돼 가지고 또 생산이 돼서 나오고 하죠. 우리 인간뿐만 아니라 곤충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바다의 물도 그렇고 말입니다.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뒤집어지고 제껴지느냐? 파도가 일고 소용돌이가 치고 그러느냐? 모두 살기 위해서입니다. 모두 같이 살기 위해서….
이렇게 말씀드리면 아시겠죠? 모두 같이 살기 위해서라고요. 하나하나 이렇게 끄집어 내서 말하기가 싫어서 이럽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그저 조그마한 세숫대야의 물을 놓고 요거밖에 없다는 생각은 마세요. 이 마음이 보이지도 않고 잡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광대한 겁니다. 그러니 그쯤 아시고 오늘은 바로 질문으로 들어가죠.
▲질문자1(남): 스님, 오늘 저에게 이와 같은 복된 자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한마음선원 대전지원 신도입니다.
▲스님: 읽기 전에 다리 좀 편안하게 앉아서 해요. 이따가 다리 저리면 누구한테 호소할 수도 없어.
▲질문자1(남): 예, 감사합니다. 스님께 궁금해서 여쭙고 싶은 질문이 수없이 많습니다만 오늘은 그동안 제가 공부한 것을 점검받고자 합니다. 허락하여 주십시오. 저는 2년 전부터 주인공 공부를 해 오고 있습니다만 참말로 신비스럽고 오묘한 것이 주인공이었습니다. 우리 몸 세포 하나하나에 다 들어앉아 있다는 주인공, 아주 쉬운 말 같으면서도 너무나 큰 진리가 담긴 주인공, (울먹이면서) 죄송합니다.
▲스님: 괜찮아요.
▲질문자1(남): 눈에 보이는 물건이라면 한번 보았으면 좋겠고, 손에 잡히는 물건이라면 한번 잡아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마는,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고 그러면서도….
▲스님: 천천히요. 차근차근히 천천히 하세요. 뭐 숨 넘어갑니까? 누가 쫓아옵니까? 그러니까 그냥 차근차근히 하세요. 중간중간에 쉬면서 이렇게 하세요.
▲질문자1(남):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늘 여여하게 있다는 주인공, 그 주인공을 스님께서 늘상 하시는 말씀대로, 그냥 있다고 철석같이 믿어 버리면 될 터인데 어리석은 것이 중생이고 따지는 버릇이 성성한 것이 또한 중생인지라 주인공을 믿는 척하면서도, 이해하는 척하면서도, 그래도 그냥 몰락 믿고 맡기지 못하고 수시로 의정을 내고, 그래서 그 의정 때문에 저는 주인공 공부를 하면서도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엉거주춤하게 됐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는 국민학교부터 대학원까지 23년간의 교육을 받았습니다만 마음은 단지 뇌가 하는 기능이라고만 배웠을 뿐이지, 우리의 육체 속에 마음이 따로 존재한다고는 배운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잠시 울먹임) 스님, 죄송합니다.
▲스님: 괜찮아요.
▲질문자1(남): 더더욱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의문은 주인공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는 거짓말 탐지기를 갖다 대도 탐지기가 작동을 하지 않는다는 스님 말씀과, 스님께서 마음을 내시면 어떤 이치로 해서 우리 몸에 있는 암덩어리가 없어져서 결국 병이 낫게 되는가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도대체 주인공의 정체가 무엇이며, 마음의 근본을 이루는 알갱이는 무엇이며, 물질의 근본을 이루는 알갱이는 무엇인가를 혼자서 책을 통해서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근본 알갱이와 물질의 근본 알갱이가 무엇인가를 알면 자연히 이러한 의문들이 풀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스님: 한꺼번에 그렇게 말씀을 다 해 놓으시면 내가 어떻게 하리까?
▲질문자1(남): 제가 물질의 근본 알갱이에 관해서 양자물리학 서적을 통해서 공부한 바에 의하면 육체든 물질이든 쪼개고 쪼개면 마지막 단계는 분자이고 분자는 다시 원자로, 원자는 다시 원자핵과 전자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원자핵은 중성자와 양성자로 나누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대 양자물리학자들은 중성자며 양성자며 전자가 모두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의 성질을 갖는, 즉 입자로서 제자리에 있는가 하면 금방 파동이 되어 빛처럼 어디론가 퍼져 나가는 매우 괴상한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그래서 과학적으로는 도저히 그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고 하였으며, 결국 이 입자인 동시에 파동의 성질을 갖는 양성자, 중성자 및 전자 등은 마음을 갖고 있지 않으면 설명이 안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국의 유명한 물리학자 토마스 영(Thomas Young)이나 미국의 유명한 물리학자 헨리 스탭(Henry Stapp)이나 이반 워커(Evan Walker) 그리고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과 원자물리학을 공동 연구하였으며, 현재 런던대학의 원자물리학 교수인 데이빗드 봄(David Bohm) 등은 양성자, 중성자 및 전자가 마음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주도 마음을 갖고 있다고 했으며, 그래서 우주의 마음이 결국 양성자, 중성자 및 전자의 마음을 구성하는 기본 알갱이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음은 제가 마음의 근본 알갱이에 대해서 뇌신경학 및 정신의학의 서적을 통해서 공부한 바에 의하면, 캐나다의 유명한 신경외과 의사인 펜필드(Penfield)는 마음을 뇌조직에서 찾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을 뇌조직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고 하였으며, 결국 마음은 뇌와는 전연 별개의 것으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영혼도 불멸하는 것이라고 했으며, 따라서 앞으로 마음을 더 연구하면 죽은 사람의 영혼과도 교신할 수 있는 어떤 과학적인 방법의 개발이 가능한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하였습니다. 유명한 뇌 생리학자이며 노벨 의학상 수상자인 죤 엑클스(John Eccles)는 우주의 삼라만상은 물질, 마음 그리고 정보 등 세 가지로 돼 있다고 말하면서 물질과 마음은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엘 에스 디(LSD)라는 환각제를 사용하여 마음을 연구하여 노벨 수상자로 거론될 정도로 유명한 정신분석학자인 미국의 스타니슬라브 그로프(Stanislav Grof)는, 마음은 사람의 몸에 별도로 존재하는 하나의 실체이며, 그 마음을 구성하는 근본 알갱이는 물질을 구성하는 근본 알갱이와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미국 신과학 운동의 선구자이면서 양자물리학자이기도 한 프리쵸프 카프라(Fritjof Capra)는, 인간의 마음은 물론 실존하는 것이며 마음의 근본 알갱이와 물질의 근본 알갱이는 동일한 것이며, 우주의 본질 자체가 마음 알갱이이기 때문에 결국 우주는 마음 알갱이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돌·바람·세균·식물·짐승 그리고 사람은 모두 그 근본이 동일한 마음 알갱이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한 형제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허망된 망상을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눈이 사물을 보기는 하되 눈이 눈을 볼 수 없고, 귀가 듣기는 하되 귀가 귀를 들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이 마음을 볼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다만 체험할 뿐’이라고 했습니다. 마치 주인공이 있으나 주인공이 주인공을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와 같이 물질의 근본을 연구하는 양자물리학의 세계적인 과학자나, 마음의 근본을 연구하는 세계적인 뇌 생리학자는 이구동성으로, 마음은 사람의 몸에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며, 그것은 물질의 근본 알갱이와 동일한 것이며, 또한 우주의 알갱이와도 동일한 것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스님께서 저희들에게 입이 닳도록 일러 주시는 주인공이 바로 그 근본 알갱이인 것입니다. 즉 우주의 근본 알갱이가 주인공이요, 마음의 근본 알갱이도 주인공이요, 육체의 근본 알갱이도 주인공이요, 물질의 근본 알갱이도 주인공인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을 내면 어찌 육체가 움직이지 않겠습니까?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퍼져나가듯이 마음을 내면 그 파문이 암덩어리가 아니라 육체의 어디까지라도, 아니 우주 법계의 어디까지라도 파문이 아니 미칠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책을 보고 이와 같이 공부한 것을, 한마음선원 대전지원에 새로 오셨으나 저와 같이 의정이 많아서 주인공 공부가 잘 안되는 도반들에게 전달하고자 저 나름대로 조그만 책자를 만들어 도반들에게 책 보시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제가 공부한 것이 스님의 가르침과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순 엉터리 지식을 도반들에게 전달해서는 큰일난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둘째는 비록 제가 공부한 것이 순 엉터리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스님께서 주인공 공부를 가르치실 때 한 절반만 가르치시고 나머지는 본인 스스로가 맛을 보도록 가르치시는 의도를 제가 눈치코치도 없이 까발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스님께 제가 만든 이 조그만 책자를 한번 점검을 해 주시든지 아니면 이런 쓰잘 데 없는 것을 만들었다고 야단을 치시든지 해 주십사고 이것을 들고 나왔습니다. 스님, 오늘 장시간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물러가겠습니다. 옥체 보존 하옵소서.
▲스님: 막 자기 말만 다 해 놓고는 ‘넌 듣거나 말거나 해라. 난 하겠다.’ 하고는 그냥…, (대중 웃음) 그 내리 읽는 폼을 보니, 허허허….
첫째에 우리가, 물질로서의 이 현자만을 가지고는 도저히 알 길이 없어, 현자만 가지고는. 그래서 전자 부(父)와…, 하는 소립니다. 부처님이 부라고 그랬으니까 그것을 지금 시쳇말로는 전자라고 해도 되는데 거기 사람이 끼여 있으니까 전자 부라고 합시다. 전자와 현자가 한데 합쳐지는 반면에 그 가운데에서 에너지가 나오는 것이 바로 마음이에요. 예? 그러니까 그 두 가지가 하나로 한데 합쳐져 가지고 용도에 따라서 방출이 되죠. 많이 방출이 됐다가 제자리에 올 수도 있고, 또 제자리에서 적게 배출될 수도 있고 많이 배출이 될 수도 있고, 그렇게 되죠. 그러니까 이거는 더한다 덜한다 말할 수도 없고 한계가 없어요. 상대가 되는 어떠한 물체가 작으면 작은 대로 바로 합쳐지고 크면 큰 대로 합쳐지니까. 그리고 크면 큰 대로 발산이 되고 작으면 작은 대로 발산이 되니까. 그것이 얼른 쉽게 말해서 생산이죠. 이건 발산이라고 할 수가 없죠. 생산이죠. 생산을 해서 이것이 앞으로 더 발전이 되고 능숙해지면, 앞서 거쳐 왔던 진화 과정은 그냥 한데 합쳐져서 없어지고 다시금 또 일어나죠. 이렇게 해서 일체 만물만생이 살고 있죠. 그것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도 말입니다.
그러니까 극치적인 문제는 지금 나를 어떻게 발견을 하느냐 하는 것이죠. 과학자들이 지금, 얼른 쉽게 말해서 이것은 어떻게 생기고, 요거는 몇 자고, 요건 둘레가 얼마고, 요거는 뭘 하고 있고 어디서 나오고, 요런 것만 가지고 그러는데 이거 가지고는 한계가 있는 거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오신통은 도가 아니니라.’ 이러셨어요. 오신통이 지금 과학자들이 하는 일들이거든요, 다. 보는 사이 없이 보고, 듣는 사이 없이 듣고, 아는 사이 없이 알고, 어디서 온 거를 아는 사이 없이 또 알고, 가고 오는 사이 없이 가고, 이 문제를 그렇게 잘 안다 하더라도, 그러니까 천안통을 알고 천이통을 알고, 타심통을 알고 숙명통을 알고, 신족통을 안다 하더라도 그건 도가 아니니라 이랬어요.
비교를 한다면, 과학자들이 오신통을 가지고 지금 하는 건데 오신통 안에서 하고 있거든요, 지금. 그러니 오신통을 자유스럽게 굴릴 수가 없고 나라는 존재를 알 길이 없죠. 이 오신통 바깥으로 벗어나야 오신통을 굴릴 수 있죠, 마음대로. 우주 세상 삼라만상, 즉 말하자면 과거·현재·미래심, 이 삼심(三心)을 다 알아서 처리할 수가 있는 그런 역할도 생기고 능력도 생기고, 모두 지혜롭게 어디 걸림이 없이 아주 여여할 텐데, 이 안에서 바깥으로 나오질 못해요. 왜냐하면 우리 마음이 지금, 내가 항상 이런 말을 하죠. 어항 속에서 고기가 나오지 못하는 격과 같다. 고기들이 바다에서 바깥으로 나오면 죽듯이 공기통 안에서 우리는 한 발짝도 떼어 놓을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 마음은 공기 바깥으로 벗어나도 아주 광대하고 여여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길러야 한다, 첫째는 마음을 찾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바깥에서 찾는 것도 아니고 바로 나 있는 자리에서 찾아야 합니다. 내가 움죽거리고 보고 듣고 행하는 전체를 바로 내 그 알맹이가 하는 거니까, 얼른 쉽게 말해서 영원한 뿌리가 하는 거니까. 그러니까 이런 말을 어디서부터 해야 하느냐 하면, 자기가 이 몸이라는 물질을 형성시켰거든요. 형성을 시킬 때에는 정자 난자를 빌려서 같이 해야만이 형성이 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정자 난자를 빌려서 자기가 형성을 시켜 놓고 자기가 이끌어 가는 거죠.
자기 안의 자생중생들은 전자에 살 때 악업 선업을 진 자체이기 때문에 오신통이 바로 즉, 컴퓨터라고 할 수 있어요. 자동적인 컴퓨터예요. 우리가 행하고 말하고 사는 것이 전부 거기에 입력이 돼 있으니까요. 그래서 전자에 살던 입력이 현실에 자꾸 나오는 거거든요. 나오니까 그 입력된 자리에다 내 형성된 것까지 일체 다 맡겨라. 몰락 맡겨라. 몰락 거기서 지금 운행을 하는 거니까, 행을 하게 하는 거니까, 말을 하게 하는 거니까, 보게 하는 거니까 모두를 거기다가 몰락 다 놓으라는 거죠. 놓지 않으면 어떡할 겁니까.
왜냐하면 안에도 자생중생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기 때문에 내가 혼자 먹은 것도 없고, 내가 혼자 한 것도 없는데, 뭘 가지고 내가 혼자 산다고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다 놔라 이거예요. 그런데 여러분은 “놓으려도 뭐가 있고 뭐가 걸리고, 조그만 일은 놓을 수 있는데 큰일이 생기니까 못 놓겠습니다.”라고 합니다. 못 놓긴 뭘 못 놓아요? 허허, 자기가 그대로 놓고 가는 건데, 네? 자기가 혼자 먹고 가는 겁니까, 혼자 다닙니까. 아니, 헤아릴 수가 없이 많은 덩어리가 지금 다니는데 혼자 다닙니까? 놓을 수 없느니 놓을 수 있느니 거론이 붙게? 진짜 놓을 수만 있고, 양자가 바로 전자라는 걸 안다면 진짜 그냥 그대로 여여한 겁니다.
(다음 호에 계속)
※위 법문은 1994년 5월 1일 법형제법회에서 설법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나 한마음선원)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