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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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구룡토수(九龍吐水)/원철 스님(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천지와 백록담은 한반도 전체를 가리킬 때 흔히 사용하는 상투적 표현이다.
중국에서도 천하를 가리키는 말로 강호(江湖) 내지는 사해(四海)라고 하는 걸로 봐서 물은 또다른 영토를 의미하는 말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어쩌다가 합토식(合土式)하는 장면을 만나게 되는데 그 자리에 참석한 모두를 비장하게 만들기도 한다.
합수식(合水式)도 마찬가지다. 백두산 물과 한라산 물을 합하는 의식은 ‘남북이 하나’임을 동참자에게 주지시킬 수 있는 상징적인 의례이기도 하다. 청계천 입구에는 팔석담(八石潭)이라는 표식이 붙어있다. 조선팔도에서 가지고 온 돌들을 바닥에 깔아 현대식 조형미를 더하고서 동서남북 모두가 물이 물에 섞이듯 화합하길 기원하는 마음의 또다른 반영이라고 하겠다.
싯달타 태자가 룸비니동산 무우수 나무 밑에서 탄생하자마자 제석천왕과 사천왕들이 모두 와서 예를 올리고, 하늘에서 아홉마리의 용이 날아와 모여들어 입으로 물을 뿜어 태자의 몸을 씻었다는 일화에서 나온 말이 구룡토수(九龍吐水)다.
‘구룡토수’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구룡이 가지고 온 물은 인도 전역의 강에서 떠온 것일 것이다. 카필라라는 소국의 왕자로 태어났지만 인도전역을 통일시키는 대업을 달성해달라는 선왕이 가진 기대의 또다른 표출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시대에는 왕자가 왕위에 오를 때도 관정식(灌頂式)을 했다. 즉 왕자의 신분에서 왕으로 태어나는 또 다른 탄생을 알리는 의식이었던 것이다. 이는 글자 그대로 물을 머리에 부어준다. 그 물은 예삿물이 아니였을 것이다.
자기 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인근 나라의 물까지도 비밀리에 가지고 와서 섞었을지도 모르겠다. 영토에 대한 욕심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왕위를 관정위(灌頂位)라고도 불렀다.
그 관정위는 법왕에게도 해당된다. 깨달음을 얻어 법왕의 위치에 오른 부처님은 ‘천하를 진리라는 법으로’ 다스리는 전륜성왕이라고 불렀던 것도 마찬가지이다.
종교적 관정은 정치적 관정과는 그 의미를 달리한다. 백 명의 외부에 있는 적보다도 나라고 하는 단 하나의 내부 적을 무찌르기가 더 어렵다.
천하를 다스리는 것 못지않게 내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를 주름잡고 호령하던 정복자들도 교만에 빠져 자기를 다스리는 일에 실패하면 그 말로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래서 자기를 이겨내는 마음 다스리기가 중요한 것이다.

약산유엄(745~
828) 선사의 문하에서 준포납(遵布納)스님이 의식을 담당하는 노전소임을 보고 있었다. 마침 초파일을 맞이하여 부처님의 이마에 물을 붓는 관욕식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자 대뜸 약산 선사가 물었다.
“그대는 ‘이것’만 목욕시킬 뿐이구나. ‘저것’도 목욕시킬 수 있겠느냐?”
이에 준포납이 바로 대꾸했다.
“그렇다면 ‘저것’을 가지고 와 보십시오.”
초파일날 관욕의식을 치루면서 목욕의 본래의미를 서로 묻고 있다. 물론 여기에서 ‘이것’은 목욕시키는 탄생불상을 의미하며 ‘저것’은 모양없는 법신을 말한다. 불상은 형체가 있어서 씻을 수 있지만 법신은 형상이 없는데 무엇으로 어떻게 씻을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진짜 목욕이란 관욕의식을 하면서 나의 마음까지도 함께 씻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2006-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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