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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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공부는 너무 느슨하거나 팽팽하지 않게/원순 스님(송광사 인월암)
오늘 이야기할 단락을 보니 지난해 번역 출판한 <거드름 피우는 우마왕>이란 제목의 어린이 동화책 내용이 생각난다. 이 동화의 주인공은 <서유기>에 나오는 ‘우마왕’인데 어느 날 그는 검술을 배우려고 무아(無我) 선사를 찾아간다. 검술의 달인이었던 무아 선사가 제자로 받아들이자 우마왕은 크게 기뻐하며 예를 올린 뒤에 물었다.
“스님, 검법을 다 배우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아침 저녁으로 부지런히 공부하면 십 년은 걸린다.”
“앗! 십 년이나요? 다른 일도 하면서 배우면 몇 년이나 걸리겠습니까?”
“게으름을 피우면서 공부하면 이십 년은 걸릴 거야.”
“밤낮으로 쉬지 않고 부지런히 연습하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그러면 아마 삼십 년도 더 걸릴 거야.”
“왜 그렇습니까? 저는 이해가 잘 안 갑니다.”
“검술 연습이나 스님들의 수행이란 급하지도 않고 더디지도 않아야 제대로 공부하는 게야. 밤낮으로 쉬지 않고 연습하면 반드시 몸과 마음이 망가질 테고, 결국 지팡이에 기대어 연습해야 될 걸.”

화두 공부를 할 때 작고 연약한 모기가 무쇠 소의 몸을 뚫듯 공부하라 하니, 요즈음 선방에서 그대로 따라 하는 사람들도 많다. 한때 유행처럼 번지던 백일 용맹정진이니 천일 용맹정진이니 하는 것들이 그런 예이다. 열흘이나 백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눈을 부릅뜨며 공부에 집중하는 수행자들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를 감동시킨다. 그러나 화두공부란 선지식의 올바른 가르침 속에서 ‘믿음’과 ‘원력’과 ‘의심덩어리’를 하나로 모으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야 간절하게 공부할 마음이 생긴다.
간절한 마음이 생기면 들떠서 흐트러지지도, 머리가 무거워져 몽롱해지지도 않는다. 선(善)도 뛰어넘고 악(惡)도 뛰어넘으며 무기(無記)에도 떨어지지 않는다.
간절한 마음만 있다면 생사를 깨치지 못할까 근심할 일도 없다. 간절한 마음 이것이 바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가장 친근하게 여겨야 할 말이다. 간절한 마음 이것을 가지고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까? <선가귀감> 18장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工夫如調絃之法 緊緩得其中
勤則近執着 忘則落無明 惺惺歷歷 密密綿綿
공부는 마치 현악기의 줄을 고르듯 너무 느슨하거나 팽팽하지 않게 해야 한다. 공부에 너무 애를 쓰면 집착에 가깝고 공부를 잊어버리면 어두운 세상에 떨어진다. 마음이 깨어있는 또렷한 의식으로 끊임없이 차근차근 공부를 챙겨가야 한다.

부처님 제자 가운데 소오나라는 비구가 있었다. 그는 밤에도 잠을 자지 않고 언제나 열심히 공부를 했지만 공부에 진전이 없고 깨치지 못하자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게 되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는 그의 마음을 알고 불러 물으셨다.
“네가 출가하기 전에 거문고를 타본 일이 있느냐?” “예, 타본 적이 있습니다.” “거문고 줄을 너무 조이면 어떤 소리가 나오더냐?” “날카롭게 끊어지는 소리가 납니다.” “너무 느슨하게 해 놓으면 어떤 소리가 나오더냐?” “소리가 아예 나오지를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소리가 잘 나올 수 있느냐?” “줄을 너무 느슨하거나 팽팽하지 않게 해 놓아야 소리가 제대로 나옵니다.” “그렇다. 공부도 그와 같다. 공부를 너무 서두르면 들떠서 병이 나기 쉽고, 너무 늦추면 게을러져서 공부에 진전이 없다. 그러니 공부에 너무 집착해서도 안 되고 너무 게을러서도 안 된다. 평소에 꾸준히 정진해야만 한다.”
소오나는 부처님의 이런 가르침을 듣고, 그 날부터 거문고의 줄을 고르듯이 공부를 꾸준히 해 마침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잡아함경> 9권 <이십억이경(二十億耳經)>에 나온다.

서산 스님은 말한다.
“거문고 타는 사람은 거문고 줄이 너무 느슨하거나 팽팽하지 않아야 맑고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고 하였다. 화두 공부도 이와 같다. 공부에 마음이 너무 조급하면 병이 생기고 공부를 잊어버리면 깜깜한 귀신 굴에 들어가게 된다. 공부를 너무 늦추거나 서둘지 않는 가운데 오묘한 깨달음이 있다.”

화두 공부를 할 때에는 먼저 공안을 점검하고 의심이 생기면 너무 급하지도 너무 느슨하지도 않게 화두를 챙겨가야 한다. 공부하는 마음이 너무 급하면 몸에 흐르는 기운이 고르지 못하여 병이 생기기 쉽다.
억지로 힘을 써서 화두를 챙기는 것은 공부에 힘을 쓰는 것이 아니다. 일어나 움직이든 가만히 앉아 있든 의심하는 공안이 흩어지지 않게 하여, 너무 급하지도 너무 느슨하지도 않게 꾸준히 공부해 나아간다면, 그 가운데 공부의 참 힘을 얻게 될 것이다.
2006-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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