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관음도량 모두 바닷가 위치 ‘이근원통’과 ‘반문문성’ 위한 것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다시한번 ‘불교는 무엇인가’하고 질문해 본다. 시간만 나면 자문자답해 보는 문제이다.
20대에는 ‘깨달음’이라고 생각하였다. 불교는 무엇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것을 중시하는 종교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30대가 되니까 약간 변하였다. ‘자유를 얻는 종교’라고 생각하였다. 약간 구체화된 것이다.
40대가 되니까 다시 변한다. ‘불교는 번뇌를 없애주는 종교’라는 생각이 든다. 살다보니까 번뇌가 자꾸 쌓인다.
40대 중반이 되니까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여 있던 번뇌가 삶을 짓누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번뇌의 무게를 실감하는 연령대가 40대인 모양이다.
어떻게 하면 번뇌를 없앨 수 있을 것인가? 부처님이 오신 이유는 중생의 번뇌를 없애주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다양한 방법이 있다. 그 방법 중의 하나가 ‘이근원통(耳根圓通)’이다.
차돌같이 단단한 경전이라고 알려져 있는 <능엄경(楞嚴經)>의 설명에 의하면 관음보살이 수행했던 방법이라고 되어 있다. 관음보살의 수행방법은 귀로 소리를 듣는다. 즉 이근(耳根)을 사용해야만 원통(圓通)이 된다는 것이다. 원통전(圓通殿)에 관음보살이 모셔진 이유는 이 때문이다.
6개의 감각기관 가운데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감각기관이 이근이다. 소리는 동서남북 사방과 위 아래에서도 귀에 들린다. 그래서 집중하기가 쉽다.
그렇다면 어떤 소리를 듣는가? 아무 소리나 들어도 되는가? 물론 아니다.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에 보면 4가지 소리를 이야기한다. 묘음(妙音), 관세음(觀世音), 범음(梵音), 해조음(海潮音)이 그것이다. <능엄경>에서도 역시 이 4가지 소리를 언급하고 있다. 이 4가지 소리 중에서 특별히 주목하는 소리는 바로 ‘해조음’이다. 해조음이란 바다의 조수(潮水) 소리 내지는 파도소리를 가리킨다.
간단히 말하면 이근원통이란 이 해조음 소리에 집중하는 수행법이다. 해조음 소리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그 입지조건이 중요하다. 도량이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조수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근원통을 강조하는 유명한 관음도량들은 공통적으로 바닷가에 자리잡고 있다.
중국 제일의 관음도량으로 알려진 보타도(普陀島)의 ‘불긍거관음원(不肯去觀音院)’이 파도치는 해안가에 자리잡고 있다. 이 불긍거관음원 입구의 석벽에는 붉은 글씨로 ‘조음동(潮音洞)’이라고 크게 새겨져 있음을 필자가 직접 확인한바 있다. 이 글씨는 강희황제의 친필로서, 1699년에 새겼다고 한다. 조음동이라는 암각글씨가 시사하는 바는 바로 해조음을 듣는 도량이라는 의미에서이다.
파도가 치면 U자 형태로 생긴 동굴로 ‘구르릉’ 소리를 내면서 파도가 들어오는 구조이다. 불긍거관음원에 앉아 있으면 항상 이 ‘구르릉’ 하면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마치 서라운드 스피커처럼 소리가 난다.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의 3대 관음도량도 모두 해안가에 자리잡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물론 파도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동해안의 유명한 관음도량이 바로 낙산사의 홍련암(紅蓮庵)이다.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진 홍련암은 동해바다가 보이고, 바닷가의 절벽 동굴위에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은 암자이다.
남해안의 관음도량은 남해 금산의 보리암(菩提庵)이다. 보리암 역시 바닷가이다.
서해는 어떤가. 서해안의 유명한 관음도량은 강화도에서 조금 더 들어간 석모도(釋母島)의 보문사(普門寺)이다. 보문사 역시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위치인 것이다. 한국의 동해안, 남해안, 서해안을 대표하는 관음도량이 모두 바닷가에 있다. 이 점이 우연이겠는가? 필자는 그 이유를 바로 <법화경>과 <능엄경>에서 이야기하는 이근원통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근원통은 첫 단계는 밤낮으로 해조음을 듣는 단계이다. 점차 집중이 되면 꿈속에서도 해조음을 듣는다. 모든 의식이 해조음에 집중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반문문성(反問聞性)’의 단계로 진입한다고 되어 있다. 반문문성은 ‘듣는 성품을 다시 돌이켜 보는 것’이다.
원통의 시작은 해조음이다. 전문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해조음은 인간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특수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일본대학의 호타겐지(堀田健治) 교수의 주장은 이렇다. 인간은 눈으로 보는 시각보다는 귀로 듣는 청각을 통하여 보다 많은 정보를 받아 들인다. 따라서 청각이야말로 인간의 삶에 있어서 기분 좋음과 불쾌함을 조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치는 감각기관이다. 자연에서 들리는 소리는 당연히 여기에 관계된다. 그 소리중에서 파도가 치면서 만들어지는 초음파가 사람 뇌 속의 α파를 활성화한다.
파도가 파도끼리, 또는 파도가 해안가에 부딪치면서 가청 영역에서 들을수 없는 초음파까지 여러 가지 음파를 만들어 내고, 그 중 초음파가 사람의 두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겐지 교수에 의하면 ‘해안가에 서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한다. 파도소리가 α파를 만들어 내어 긴장을 풀어주는 탓이다.
낙산사 홍련암에 가면 마루로 된 법당에 사각형의 구멍이 하나 뚫려 있는 것을 발견한다. 대략 가로 세로 10㎝ 정도 되는 크기이다. 옛날부터 이 구멍이 있었다고 한다. 60년대만 해도 이 구멍이 30㎝ 정도 크기였다고 하는데, 어린아이들이 오면 위험하다고 해서 법당을 신축하면서 크기가 줄었다.
그렇다면 홍렴암 법당의 이 구멍은 왜 만들어졌는가?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이유는 밝혀져 있지 않다. 필자는 그 이유를 이근원통의 해조음을 청취하기 위한 용도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홍련암은 관음도량이고, 바닷가에 있으므로 이근원통의 경전적 근거와 무관할 수 없다. 법당의 구멍은 해조음을 듣기 위해서 설치해 놓은 것이다.
부처님이 오신 이유는 중생들의 번뇌를 없애주기 위해 오신 것이고, 그 번뇌를 없애기 위해서는 <능엄경>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바닷가의 해조음을 많이 듣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