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비 분별은 모든 장애의 근원
심안 열고 화두 들면 병 사라져
참선하는 문중에서 믿음과 원력을 바탕으로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다면 깨달음은 절대 성취할 수 없다. 알고 보면 온갖 의심이 오직 하나의 의심일 따름이다. 화두 하나만 제대로 타파하면 온갖 의심이 한꺼번에 해결된다.
그러니 화두를 들 때 화두 하나에만 마음을 모아야지 자신이 갖고 있는 재주를 조금이라도 부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 다만 오고 가며 앉고 눕는 모든 삶 속에서 화두가 끊임없이 이어지도록 할 뿐이다.
어떤 경계가 오더라도 그 자리에서 제멋대로 이리저리 분별해서는 안 된다. 화두를 들고 끊임없이 공부를 챙겨가다, 이치로도 알 수 없고 뜻으로도 알 수 없으며 아무 재미도 없다는 것을 알아 마음이 뜨거워지고 답답해지는 경계가 올 때, 바로 그 자리가 사람의 목숨을 내던질 곳이요 화두 공부가 끝날 수 있는 자리이다. <선가귀감> 16장에서는 화두를 챙길 때 생기기 쉬운 병을 지적한다.
話頭 不得擧起處承當 不得思量卜度 又不得將迷待悟 就不可思量處 思量 心無所之 如老鼠入牛角 便見倒斷也 又 尋常 計較安排底 是識情 隨生死遷流底 是識情 怖 惶底 是識情 今人 不知是病 只管在裡許 頭出頭沒
화두를 드는 자리에서 무엇을 알아차리려고 해서도 안 되고, 뜻으로 헤아려 짐작해서도 안 되며, 어리석은 마음으로 어떤 깨달음을 기다려서도 안 된다.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곳에서 생각하면, 마음 갈 곳 없는 것이 마치 늙은 쥐가 구부러진 쇠뿔 속에 들어가다 더 나아갈 곳이 없어 낭패를 당하는 것과 같다. 또 늘 이리저리 따지는 일은 중생의 알음알이고 삶과 죽음에 끌려 다니는 것도 중생의 알음알이며 두렵고 무서워 갈팡질팡 하는 일들도 중생의 알음알이일 따름인데, 요즈음 사람들이 이 병을 잘 알지 못하므로 다만 그 속에서 부질없이 나고 죽고 할 뿐이다.
이에 대해 서산 스님은 간화선을 참구할 때 조심해야 할 열 가지 병폐를 구체적으로 거론하면서 오로지 화두만 참구하라고 말한다.
“화두 참구에 조심해야 할 열가지 병이 있다. 첫번째는 뜻으로 헤아려서 짐작하려는 병이다. 두번째는 일상생활의 경계에 집착, 이것이 진리라고 고집을 내세우는 병이다. 셋째는 말의 논리만 가지고 살 길을 찾는 병이다. 네번째는 글에서 어떤 내용을 끌어다 깨달음을 증명하려는 병이다. 다섯번째는 화두를 드는 자리에서 무엇을 알아차리려고 하는 병이다.
여섯번째는 화두를 챙기지 않고 아무 생각없이 그럴싸하게 앉아 있기만 하는 병이다. 일곱번째는 유(有)나 무(無)의 알음알이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병이다. 여덟번째는 정말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써 깨달음을 얻었다고 주장하는 병이다. 아홉번째는 어떤 도리로써 깨달음을 얻었다고 주장하는 병이다. 열번째는 어리석게 깨달음을 기다리는 병이다. 이 열가지 병을 떠난 사람은 화두를 들 때 오로지 정신을 차려 다만 ‘이것이 뭐꼬?’를 의심할 뿐이다.”
<선요>에서 본 선객의 열 가지 병폐
그래도 공부에 진전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화두 참구하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생각해보아야 할 점을 고봉 스님은 <선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첫째, 전생에 닦아놓은 지혜가 없었던 것은 아닌가. 둘째, 눈 밝은 스승을 만나지 못한 것은 아닌가. 셋째, 하루 공부하고 열흘 놀았던 것은 아닌가. 넷째, 근기가 시원찮아 의지가 약한 것은 아닌가. 다섯째, 번뇌 망상에 푹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여섯째, 고요한 경계에 걸려 꽉 막혀 있는 것은 아닌가. 일곱째, 쓸모없는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덟째, 시절인연이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은 아닌가. 아홉째, 화두를 의심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열째,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 하고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선가귀감>이든 <선요>이든 선객에게 일어나는 모든 장애의 근원은 시비 분별에 있다.
열심히 공부를 하면서도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은 ‘나’와 ‘경계’를 시비 분별하는 데에 있으니 알고 보면 중생의 생사도 시비 분별하는 마음에서 오는 자질구레한 것일 뿐이다.
생겨났다 사라지는 헛된 마음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한 생각으로 화두를 타파해야 한다. 화두만 잘 챙긴다면 위에서 말한 모든 병폐들을 다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두를 들 때 화두에 마음이 집중되어 심안(心眼)이 열려야 한다. 경을 볼 때에는 모든 마음이 집중되어 경의 근본 뜻을 볼 수 있는 경안(經眼)이 열려야 한다. 일을 할 때에는 그 일에 몰두해 일 자체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
오고 가며 앉고 눕는 모든 삶에 마음이 집중돼 하나가 될 때 그 모습 자체가 아름다운 수행으로서, 살아 있는 부처님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