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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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긋난 부부’의 과보/맹난자(수필가)
며칠 전에 읽은 신문 기사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것은 나 역시 이 문제에서 한때 자유스러울 수 없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불교학개론> 어느 페이지에선가 남편의 외도는 곧바로 아내의 ‘단명보(短命報)’로 이어진다는 것을 읽고는 왠지 가슴이 두방망이 치던 때의 일을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을 믿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 때문인지 어머니는 오십도 못 다 채우고 어느 여름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얼마전 ‘조강지처 버린 죄로 뒤바뀐 인생’이란 제목의 기사는 그래서인지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죄 중에 가족을 져버리는 일만큼 가슴 아픈 일이 다시 있을까? 모든 가족사의 비극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신문 기사의 A씨는 한때 잘 나가던 사업가였다. 그는 조강지처와 자식을 버리고 새로 살림을 차렸다. 그 후 거듭된 사업 실패로 인하여 재산을 탕진하고 함께 살던 여자에게서조차 버림을 받았다.
20년 만에 그는 이혼한 아내와 다시 법정에서 만났다. 그의 아내는 위자료로 받은 땅을 가지고 부동산에 투자해서 수백억 원의 재산가가 되어 있었다. 아내가 혼자 힘으로 키운 두 자녀도 그날 방청석에 앉아 있었다.
노숙자를 방불케 하는 A씨는 이혼할 때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땅을 넘겨주었으니 그 땅을 돌려 달라는 소송을 냈던 것이다.
“20년 전 이혼할 때 땅을 넘겨준 것은 제 정신으로 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서 넘겨준 것이므로 무효입니다. 저 사람(부인)은 그 땅 가지고 많은 돈을 모았는데 이제 내가 굶어 죽게 생겼다는데 거들떠도 안 봅니다.”
이런 몰염치한 투정을 지켜본 아내와 자식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나는 피해자측의 방청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재판 결과는 뻔한 것이었으나 부장판사는 뻔한 결과를 그대로 선고하지 않았다.
“그래도 한때 인연을 맺었던 부부인데…. 무엇보다 싫든 좋든 방청석에 앉아 있는 두 자녀의 아버지가 아닙니까? 부인께서 4000만 원 정도 주면 어떨까요. 다만 한 번에 목돈을 주면 원고가 다시 바람을 피워 탕진할지 모르니까 2년 동안 네 번으로 나눠서 1000만 원씩 주는 건 어떻겠습니까.”
부장판사는 한참 동안 부인을 설득했고, 마침내 그녀도 그 부장판사의 조정안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녀는 조강지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게미와 쌀겨로 끼니를 때우며 함께 고생하던 아내는 예부터 특별한 죄가 없는 한 함부로 내치지 못하도록 하였다.
우리는 쉽게 만나서 너무 쉽게 헤어지는 것은 아닌가. 숙연(宿緣)이 어긋난 부부의 과보를 보며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또 한 사람이 있다.
후 팔십은 주나라 문왕의 왕사로서 보람 있는 생애를 보냈으나 전 팔십은 끼니를 때우기가 어려웠던 강태공. 남편을 버리고 개가한 그의 아내는 날품팔이로 취로 현장에서 일하다가 어느 날 왕사가 된 강태공의 마차와 마주쳤다.
그녀는 길을 막고 꿇어앉아서 남편에게 용서를 빌었다. 강태공은 옆에 있던 물병의 물을 쏟아 보인 뒤 ‘이와 같다’고 조용히 타일렀다. 그러나 몸에 지닌 쇠붙이를 떼어 그녀에게 모두 주고 가던 길을 유유히 떠났다고 한다.
좋고 나쁜 것은 모두 자기가 뿌린 대로 거두는 것. 누구도 인과(因果)에서 벗어날 수 없는 또 하나의 교훈을 나는 여기에서 읽는다.
2006-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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