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해야 답이 찾아지고 길이 보이는 법
궁금한 게 뭔지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초심자를 위한 강의를 하러 다니는 저 역시도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되겠기에 훌륭한 선생님들의 강의를 들으러 다닙니다. 그런데 매번 강의를 들을 때마다 깜짝 깜짝 놀랍니다.
내가 질문을 하지도 않았는데 선생님은 내 머릿속에 들어와 보기라도 했는지 내가 그토록 궁금해 하던 내용들을 아주 족집게처럼 집어서 명쾌하게 설명을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느끼는 그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어떨 때는 지금 저 선생님의 강의는 오직 나를 위해서 베풀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할 정도입니다. 다음번 강의가 기다려지는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습니다.
부처님의 제자들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부처님은 그저 덤덤하게 법문을 들려주고 계시는데 그 가르침을 듣는 중생들은 ‘지금 부처님은 오직 나를 위해서 법문을 설하고 계신다’라며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부처님의 가르침이 훌륭하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이 그런 ‘착각’을 하는 것일 테지요. 그렇지만 법문이나 강의를 듣는 사람에게 뭔가 궁금하거나 묻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면 과연 법문을 들으면서 그런 기쁨을 느낄 수 있을까요?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지혜를 없애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나보다 나은 이에게 묻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그저 잠에만 빠져 정진할 뜻이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또 사람에게 큰 지혜를 이루게 하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다른 사람에게 이치 묻기를 좋아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잠을 탐하지 않고 정진할 뜻을 가지는 것이다.”(증일아함경 10권)
나보다 나은 이에게 이치 묻기를 좋아하고, 잠자는 데에 집착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졸지 말고 자꾸 물어보라는 말이 됩니다.
서양의 학자도 질문에는 일곱 가지 힘이 있다고 말합니다.
“질문을 하면 답이 나온다. 질문은 생각을 자극한다. 질문을 하면 정보를 얻는다. 질문을 하면 통제가 된다. 질문은 마음을 열게 한다. 질문은 귀를 기울이게 한다. 질문에 답하면 스스로 설득이 된다.”(<질문의 7가지 힘> 도로시 리즈 지음) (주1)
아함경과 같은 초기 경전을 보면 부처님과 제자들 사이에는 숱하게 질문과 대답이 오갑니다. 묻고 대답하고 되묻고 대답하고…. 같은 내용을 몇 번이나 문답으로 주고받은 뒤에는 밖에 나가서 전혀 딴소리를 하는 바람에 부처님이 그 제자를 불러들여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느냐”라고 따져 묻는 일도 있을 정도입니다.
제자들은 하루 종일 부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질문거리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해가 져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부처님 앞으로 모여 앉아서 이렇게 묻곤 합니다.
“부처님, 제가 아까 좌선을 하다가 이런 것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서 낮 동안 궁금했던 점을 풀어놓은 뒤에 부처님의 설명이 베풀어지면 소중히 받아 지닌 뒤에 또 다음날 종일 그 대답을 곰곰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스스로 질문을 일으키고 대답을 생각하고 다시 스승이나 선배에게 질문을 토해내고 답을 듣는 과정을 통해서 그들은 성자가 되어갔던 것입니다.
‘집착과 번뇌를 버리는 일’과 같은 것은 그렇게 곰곰 깊이 생각을 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일이었습니다.
요즘 시중에는 참 많은 법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현대인들은 법문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사방에서 홍수처럼 콸콸 쏟아지고 있는 스님들의 법문과 불교학자들의 강의를 조금도 어려움 없이 다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사람들은 불교를 잘 모르겠다고 하소연합니다. 아무리 들어도 무슨 소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말인지, 딱 한 마디로 불교란 무엇인지… 도통 모르겠다고 울상을 짓는 분이 많습니다. 그건 각자의 가슴속에 물음표를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짜 자신이 무얼 궁금해 하는지 먼저 그 질문부터 스스로에게 던져보시기 바랍니다. 질문을 해야 답이 찾아지고, 길이 보입니다. 질문을 안고 법회에 참석하는 순간 스님의 법문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나만을 위해 열려진 피안으로 향하는 지름길임을 확인하실 것입니다.
(주1) <생산적 책읽기 50> 안상현 지음, 북포스, 55쪽에서 재인용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