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톨릭의 본산인 명동 성당 꼬스트홀에서 불교전통의식인 영산재가 4월 19일 열렸다. 지난 해 조계사 청년회는 유교, 기독교, 이슬람 성직자들을 초청해 강연회를 가졌다. 이웃 종교를 이해하고 화합을 모색하는 자리다. 가히 혁명적 발상의 산물이다. 그런 걸 보면서 아득한 옛 기억이 떠오른다.
빵 신자의 추억이 서린 곳, 논산훈련소다. 일요일 아침이면 대다수 훈련병들은 독실한 불교 신자, 기독교 신자가 된다. 대열을 이루어 군종병의 인솔 하에 군가를 부르며 씩씩하게 법당으로, 교회로 간다.
신자에게는 특권이 있다. 노예 사냥하듯 마구잡이로 끌려가야하는 사역으로부터 해방이다. 그리고 법당에서, 교회에서 나누어주는 푸짐한 빵을 받아 안심하고 꾸역꾸역 먹는다.
빵 신자의 면면은 수시로 바뀐다. 맛있는 빵을 넉넉하게 주는 쪽으로 몰린다. 부처의 자비와 예수의 사랑은 오직 빵에 달려있다. 그래도 누구 하나 탓하지 않는다. 지난 주에 법당에서 수계 받은 놈이 이번 주에는 세례 받는다고 교회에 앉아 있다. 성직자도 동료들도, 비난하지 않는다. 우린 모두 절박한 처지에 놓인 훈련병일 뿐이다.
종교간 평화 없이 세계 평화는 없다. 종교적 갈등이 정치, 사회, 경제적 갈등으로 전이된다. 타종교란 용어가 이웃 종교로 바뀌는데 100년 이상 걸렸다. 이웃 종교에 대한 이해의 부재,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하지 않고 틀린 것으로 간주하는 오류, 종교적 다양성 인식의 부재가 가장 큰 이유다.
갈등을 일으키는 것도 종교요 이것을 치유할 수 있는 것도 종교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 일을 펼치고 저지르는 것이 정치라면, 종교는 수습하고 정리하는 것이 사명이다. 정치에 휘둘리거나 정치적 야심을 종교를 통해 구현하고자 해서는 안 된다. 반쯤 얼이 빠져 있는 훈련병에게 제공한 약간의 위안과 빵 한 조각, 종교의 사명은 그것으로 족하다. 그들에게 빵을 건넨 손이 누구의 손인가는 묻지 말라.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 보시 가운데 으뜸은 무주상보시라. 가르침이 같으니 다툴 일이 무어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