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관계에 의해 신호·에너지 주고 받으며 변화하는 모습이야말로 존재의 참모습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면서 부쩍 카메라가 보편화되고 있다. 디지털카메라의 강점은 아마도 필름 비용이나 인화·현상 비용 부담이 적다는 점일 것이다. 과학기술을 아는 사람들은 이를 두고 ‘전자와 홀이 공짜니까’라고 농담 삼아 이야기한다.
찍고자 하는 물체의 빛이 반도체 칩에서 전자와 홀로 변환이 되고, 이 전자와 홀의 수를 반도체 칩의 회로를 이용해서 디지털 신호로 바꾼 후, 바로 플래시 메모리에 저장하는 원리다.
물체의 색깔과 빛의 세기가 화학 물질인 감광 물질을 변화시킨 후, 이 변화를 다시 사진용 종이에 전사시키는 예전의 필름 방식과는 다르게, 요즈음 디지털 카메라에서는 빛이 반도체칩에서 전자와 홀로 변환되는 것이다.
전자와 홀이 반도체내에서 생성되는 것이 우리에게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뜻에서 전자와 홀이 공짜라고 말하는 것이다.
반도체 내에서 빛이 전자와 홀로 변환되는 원리는 참으로 오묘하다. 빛 에너지가 반도체 칩의 소자(화소라고 한다)에 비치게 되면, 반도체 원자핵에 속박되어 있던 전자가 떨어져 나간 후 자유전자가 된다. 이렇게 전자가 떨어져 나가며서 빈자리를 만들게 되는데, 만들어진 빈자리를 홀(구멍)이라고 한다. 전자는 ?전기를 띠고, 빈자리는 ?전기를 띠게 된다. 떨어져 나간 전자와 빈자리인 홀이 소자 밖으로 이동하면, 회로가 전자와 홀의 수를 세게 된다. 결합을 이루고 있던 전자가 떨어져 나간 빈자리인 홀은 마치 목욕탕 물에서 생긴 방울이 이웃하는 물이 채워짐으로써 이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주위의 속박전자들이 빈자리를 채워 나감으로써 이동하게 된다. 이러한 원리가 디지털 카메라뿐만이 아니고 반도체 회로가 동작하는 기본 원리가 된다.
인터넷에서 빛 신호로 전송하는 이유는 빛에 많은 신호를 실어 유리섬유를 통해서 빠른 속도로 전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외부세계를 인식하는 시각 또한 신호를 전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외부의 빛이 눈의 안쪽에 존재하는 망막의 시신경을 자극하면, 이 자극에 의해서 신경 세포내의 물질이 전자와 +이온으로 분리되고 이 이온이 시신경을 타고 뇌까지 전파되는 형식이다. 반도체와의 차이점은 전자와 홀 대신 전자와 +이온이 분리되어 전파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전자와 홀, 그리고 빛 사이에 신호 그리고 에너지를 주고받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영원불변이라고 믿는 안·이·비·설·신·의와 같은 느낌들이 사실은 빛이라는 파동, 그리고 전자와 홀의 상호 변환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결코 어떤 인식도 영원히 지속되는 실체일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아니 상호 관계에 의해서 신호와 에너지를 주고받는, 변화하는 모습이야 말로 존재의 참 모습일지도 모른다.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메모리 스틱에 저장하고 전송하면서도 우리는 2600년전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던 무상함, 그리고 어떠한 것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참 자비를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이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