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분심 의심 세 요건 갖춰야 하나라도 빠지면 쓸모없는 깨달음
화두 참선은 선지식의 가르침을 한 점 의심도 없이 믿고서 화두와 하나가 되는 선정 속에 들어가야 한다. 조그마한 틈도 없이 끊임없이 화두를 참구해야 하는 이 공부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참선하는 문중에서 스승에 대한 믿음이 없고 화두도 의심하지 않는다면 깨달음은 절대 성취할 수 없다. 알고 보면 온갖 의심이 오직 하나의 의심일 뿐이다. 하나의 의심이 해결되면 온갖 의심이 한꺼번에 해결된다. <선가귀감> 14장에서는 <선요>의 내용을 빌려와 화두를 공부할 때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요건인 큰 믿음, 큰 분심, 큰 의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參禪須具三要 一有大信根 二有大憤志 三有大疑情 苟闕其一 如折足之鼎 終成廢器.
참선 공부에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큰 믿음이고 둘째는 큰 분심이며 셋째는 큰 의심이다. 그 중에 어느 하나라도 빠진다면 다리 부러진 삼발이 솥과 같아서 암만 열심히 공부해 봐야 아무 쓸모가 없다.
모든 부처님과 조사 스님들이 이 세상에 나오신 뜻은 중생이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데 있으니, 이를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서 중생은 먼저 생사의 뿌리와 부처님의 세상을 알아야만 한다. 선종에서 ‘수행자는 선지식의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라고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이런 까닭이다.
선지식을 만나 스승으로 모시게 되면 스승에 대한 믿음이 깊어야 한다. 스승을 믿는 마음과 그 분의 가르침은 연결되어 부처님의 진리에 대한 믿음을 철저하게 한다. <기신론>에서 믿음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온갖 법의 근본을 믿는 것이니, 진여(眞如)인 깨달음을 즐겨 생각하라는 것이다. 둘째 부처님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덕이 있음을 믿는 것이니, 늘 부처님을 가까이 받들어 모시면서 착한 마음을 일으켜 ‘모든 것을 아는 지혜’를 구하라는 것이다. 셋째 법에 큰 이익이 있음을 믿는 것이니, 늘 모든 보살행을 수행하라는 것이다. 넷째는 스님들은 바른 수행을 함으로써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도 이롭게 해줄 것을 믿는 것이니, 늘 수행하는 모든 보살들을 기꺼이 가까이 하고 실다운 행을 배우라는 것이다.
이런 믿음은 탁한 물을 깨끗이 정화하는 수정주(水精珠)처럼 중생의 온갖 어지러운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힌다. <보살본업경>에서 “모든 중생은 부처님의 품안에서 믿음을 근본으로 삼아라.” 하였고, <지도론>에서 “큰 바다와 같은 부처님의 법은 믿음으로 들어가게 한다.”라고 하였으며, <화엄경>에서는 “믿음은 도(道)의 근본이요 공덕의 어머니가 된다.”라고 하였다. 중생에게 생사를 해탈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 믿음을 바탕으로 장부의 뜻을 세워 열심히 화두를 챙겨야 한다.
참선 공부가 제대로 되려면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요건은 스승과 화두에 대한 가르침에 큰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니, 그 믿음은 수미산과 같아서 공부하는 길이 저절로 높아질 것이다. 둘째 요건은 화두를 타파하고자 하는 큰 원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니, 이 원력은 부모를 죽인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나 바로 두 동강내려는 것처럼 바로 이 자리에서 공부를 마쳐야 하겠다는 큰 분심을 말하는 것이다.
셋째 요건은 화두에 대한 큰 의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니,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져 있는 사악한 일을 마구 폭로하고자 하는 마음처럼, 의심, 곧 진실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해야 한다.
화두를 공부할 때 이 세 요건만 갖추게 되면 반드시 정해진 날짜안에 공부를 이룰 수 있다. 화두가 독 안에 든 자라와 같아서 잊어버릴 염려가 없어 화두와 하나가 된다. 반대로 그 가운데 어느 한 가지라도 빠진다면 마치 다리가 부러진 삼발이솥과 같아서 끝내 어떤 깨달음도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될 것이다.
서산 스님은 말한다. “부처님께서 ‘성불하는 일에는 믿음이 근본이다’라고 하셨고, <증도가>에서 ‘도를 닦는 사람은 먼저 뜻을 세워야 한다’라고 했으며, <몽산법어>에서 ‘참선하는 사람들이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제일 큰 병’이라 하고 또 ‘크게 의심하는 데서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다’라고 하였다.”
선어록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선요>의 저자 고봉(1238~1295) 스님도 게송으로 말한다.
急水灘頭 泊小舟 切須牢把 者繩頭
驀然繩斷 難廻避 直得通身 血送流
萬法歸一 一何歸 只貴惺惺 着意疑
疑到情忘 心絶處 金烏夜半 徹天飛.
거센 물살 여울목서 멈추려 하면
배의 닻줄 단단하게 묶어놓아라
별안간 줄 끊어져 뒤집혀지면
온 몸에서 피가 터져 솟아 나오리.
온갖 법이 한 법으로 모아지는데
이 한 법은 또 어디로 돌아가느냐
깨어 있는 의심만이 오직 귀할 뿐
마음 길이 끊어진 곳 도달해보면
밝은 태양 한밤중에 빛을 발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