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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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아난존자와 결혼하는 법(2)/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사람의 몸에 대해 깊이 생각한 마등의 딸
자기가 집착했던 것의 실체 깨닫고 출가

그토록 사랑하는 아난과 맺어주겠다는 부처님의 말씀에 마등의 딸은 귀가 솔깃하였습니다.
“정말 아난 스님과 저를 결혼시켜 주시겠습니까?”
“그래. 그런데 아난은 보다시피 머리를 깎고 출가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 너도 그런 모습을 갖추어야 하는데 할 수 있겠느냐?”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었고 그 어떤 조건도 마다할 수 없었던 마등의 딸은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말렸지만 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마등은 제 손으로 딸의 그 삼단 같은 검고 윤나는 머리칼을 잘라주고 말았습니다. 머리를 깎고 소박한 옷차림으로 승원으로 돌아온 그녀에게 부처님이 물었습니다.
“대체 아난의 어디가 그리도 좋으냐?”
“저는 아난의 눈도 사랑하고, 코도 사랑하고, 입도 사랑하고, 그 음성도 사랑하고, 그 분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다 사랑합니다.”
사랑에 들뜬 그녀는 이렇게 조목조목 제 마음을 들려주었습니다.
“자, 그럼 이제 우리 함께 생각해보자. 네가 그리도 사랑한다는 아난의 코 속에는 뭐가 들었지? 또 아난의 귀 속에는 뭐가 들었고? 네가 그리 안고 싶어 하는 아난의 몸속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 어디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 보겠느냐?”
마등의 딸은 머리를 쇠망치로 맞은 듯 멍해졌습니다. 자기는 거기까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눈에 비친 아난의 겉모습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한다고 하여 부부를 이루기는 하지. 그런데 그들의 사랑이란 대체 무엇일까? 몸에서 흘러나오는 액체가 섞여 아이를 만들고 생명처럼 애지중지하다가 누구든 먼저 곁을 떠나면 그 아쉬움과 외로움에 평생 허탈한 눈물을 흘리고 말지 않더냐?”
마등의 딸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나는 그토록 잘생긴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렸는데…. 그런데 내 마음을 빼앗은 그 남자의 몸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가?’
그녀는 찬찬히 사람의 몸이란 것을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준수한 청년이건 절세미인이건 천하박색이건 한 꺼풀 벗겨내니 그 속에는 똑같이 눈물, 콧물, 침, 땀, 똥, 오줌 같은 것들이 들어차 있을 뿐이었습니다.
‘대체 내가 뭘 사랑스럽다고 느꼈던 것일까? 아난 스님의 그 준수한 이목구비는 다 어디로 갔을까?’
마등의 딸은 자기가 집착한 것에 대한 실체를 아주 천천히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한없이 사랑스럽고 아름답기만 할 것 같았던 대상이 알고 보니 덧없고 괴로운 속성을 띤 것이었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한 자기 자신도 그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음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대상에 정신을 집중시키며 관찰하고 깊이 생각을 이어가자 제 마음을 온통 차지하고 있던 아난의 이미지가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덧없기 그지없는 아난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자 마등의 딸에게는 모든 생명체의 바탕에 흐르는 법칙을 바라보는 힘이 생겼습니다.
부처님은 그런 순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자, 이제 너를 놓아줄 테니 아난의 방으로 가보아라.”
하지만 마등의 딸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제가 참으로 어리석어서 아난 스님을 쫓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 마음이 활짝 열렸습니다. 캄캄한 길을 헤매다 등불을 만난 것 같고, 난파당하여 집채만한 파도에 휩쓸리다가 강기슭에 이른 것 같고, 앞을 보지 못하는 이가 뭔가 의지할 것을 붙잡은 것 같아 졌습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모든 번뇌를 다 떠난 성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여러분은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부처님은 세상의 모든 젊은이에게 독신출가의 길을 권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자기가 지금 정신없이 빠져들고 있는 대상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아난과 마등의 딸은 지난 5백 세 동안 부부의 연을 맺어왔습니다. 이제 부처님은 그 인연을 진리 속에서 형제의 인연으로, 도반의 인연으로 맺어주는 해결책을 내놓은 것입니다. 마등의 딸은 끝까지 고집을 피워서 아난을 환속시켜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해결책을 받아들여 한 사람의 지아비 대신 수많은 도반을 얻은 그녀의 선택이 그리 손해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2006-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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