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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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살아 있는 말’을 참구할 것/원순 스님(송광사 인월암)
부처님과 하나 될 수 있는 지혜
선지식에 지도받는 것이 중요

참선하는 사람들이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불변(不變)과 인연 따라 나타나는 수연(隨緣)의 뜻이다. 단숨에 깨치는 돈오(頓悟)와 차츰차츰 닦아가는 점수(漸修)의 내용을 잘 알아야만 한다. 그런 뒤에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비유되는 교(敎)를 벗어나 달을 볼 수 있게 선(禪)의 근본 뜻을 참구해야 한다. 그리고 오로지 한 생각으로 화두만을 참구해야 한다.
화두를 챙길 때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심(疑心)이 함께 일어나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말’을 참구하는 것이자 생사의 몸을 벗어날 수 있는 살길이다. 이 내용을 <선가귀감> 12장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大抵學者 須參活句 莫參死句
도를 닦는 사람들은 모름지기 ‘살아 있는 말’을 참구할 일이요 ‘죽어 있는 말’을 참구하지 말지어다.

‘살아있는 말’과 ‘죽어있는 말’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선종(禪宗)에서는 공부 길을 터줄 수 있는 아주 쓸모있는 말들을 ‘살아 있는 말’이라 하고, 쓸모없는 말들을 ‘죽어 있는 말’이라 한다. 선문(禪門)에서 쓰이는 ‘살아 있는 말’들은 중생들이 시비 분별하여 알 수 있는 그런 차원의 것이 아니고, 그 차원을 뛰어넘어 부처님 세상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지혜를 말한다.
모든 번뇌를 끊고 타파할 수 있어 섬광이 번뜩이는 지혜를 ‘살아 있는 말’이라 하고, 이리저리 뜻을 헤아리고 추측하여 쓸데없이 번뇌만 더 늘게 분별하는 지혜를 ‘죽어 있는 말’이라 한다.
‘살아 있는 말’은 깨달음으로 이끄는 수행자의 마음을 터 줄 수 있는 번뜩이는 지혜이므로 생명을 살리는 칼로 비유되어 ‘활인검(活人劍)’이라고도 하고, ‘죽어 있는 말’은 공부 길을 방해하여 수행자의 생명인 지혜를 없애기 때문에 ‘살인도(殺人刀)’라 한다. 참구하는 화두는 화두 자체에서 모든 시비 분별이 끊어져야 ‘살아 있는 말’이 된다. <산방야화(山房夜話)>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語中有語 名爲死句 語中無語 名爲活句
말 가운데 말이 있는 것을 ‘죽어 있는 말’이라 하고 말 가운데 말이 없는 것을 ‘살아 있는 말’이라 한다.

선종에서 참구란 수행자가 눈 밝은 선지식을 찾아서 불법에 대한 가르침을 온몸으로 체득하려는 행위를 뜻한다. 선가에서는 어떤 경계에 집착하는 알음알이를 모두 배척하고 몸소 눈 밝은 스승을 찾아 그 분의 가르침 속에서 참선하는 것을 수행자들이 실천해야 할 삶의 가장 큰 덕목으로 여긴다. 이것이 강조하는 것은 올바른 스승 밑에서 참선하고 도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선종에서는 선지식을 찾아뵙지 않아 공부가 잘못되는 것을 큰 병통으로 친다.
그러므로 선종에서는 눈밝은 선지식을 만나 지도를 받는 것이 가장 큰 일이며, 늘 “선지식을 찾아보라”는 것이 큰 가르침이 된다. 선지식을 찾아 화두를 받고 그 스승 밑에서 ‘살아 있는 말’을 참구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벽암록> 여기저기에서 보이는 참심(參尋), 참문(參問), 참고(參叩), 참현(參玄), 참학(參學), 참상(參詳) 같은 말들도 모두 참구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말들이다.
서산 스님은 “살아 있는 말에서 깨달음을 얻는다면 부처님이나 조사스님들과 어깨를 견주면서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될 것이요, 죽은 말에서 깨쳤다고 착각하면 이것은 자기 자신도 구제하지 못하는 일이 될 것이다”며 게송으로 말한다.
要見臨濟 須是鐵漢
임제 스님을 만나려면 쇠뭉치로 된 놈이라야 한다.

서산 스님은 다시 말한다. “화두를 참구하는 데에는 ‘말을 참구하는 것’과 ‘그 뜻을 연구하는 것’이 있다. 말을 참구하는 것은 ‘깨달음을 얻는 지름길’이자 ‘살아있는 말’ 즉 활구(活句)이니, 생각할 수도 없고 설명할 길이 없으므로 여기에 이르러서는 달리 어찌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 뜻을 연구한다는 것은 화두를 ‘이리저리 헤아리고 추측하여 깨달음을 얻었다고 착각하는 것’이자 ‘죽어있는 말’ 즉 사구(死句)이니, 이치로 따질 수도 있고 말로 설명할 길도 있어서 어떤 대상경계로써 듣고 이해하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깨달음’이라는 어떤 경계가 내 앞에 펼쳐지고 있다면 ‘나’라고 하는 놈이 아직까지 시비 분별을 하고 있는 것이니 공부가 완성된 상태가 아니다.
화두 공부의 완성이란 화두와 내가 하나가 되어 화두도 사라지고 나도 사라져 모든 것이 텅 빈 자리에 오로지 밝은 지혜만 남아 있는 것이다.
텅 빈 마음에서 나오는 빛나는 지혜를 ‘공적영지’라 하기도 하고 ‘진공묘유’라 하기도 한다. 텅 비어 고요하다는 공적(空寂)이나 진공(眞空), 신령스러운 앎이자 부처님의 지혜로 눈앞에 펼쳐지는 영지(靈知)나 묘유(妙有)는 알고 보면 같은 뜻이기 때문이다.
200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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