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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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업, 전생의 죄갚음일까?/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매맞는 아내, 전생의 죄값이니 참아야 할까요?
폭력 원인 찾아 해결하기 위해 ‘업’ 일으켜야죠

몇 달 전, 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다니는 절의 한 여자신도가 스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그 여자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견디다 못해 스님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여쭈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였습니다. 사실 이런 문제를 불교가 어떻게 해결하는지가 참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들려준 스님의 해결책은 너무나 충격이었습니다. 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합니다.
“보살님이 전생에 지은 죄를 갚는 것이니까 참으십시오.”
그러니 매 맞고 사는 그 여자는 전생에 매 맞을 짓을 하였으니 이번 생에 그 매를 다 맞아야 업에서 풀려난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경전을 읽다보면 부처님이 전생을 말씀하는 경우를 많이 만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항상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다른 여인을 둘째 아내로 들이기로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한 집안에 남편 한 사람과 두 명의 아내가 함께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세 사람이 한 집에서 살아가려니 뜻밖에도 첫째 아내는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저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나는 하녀 신세가 되고 말거야.’
그리하여 둘째 아내의 임신을 방해하게 되었고 두 번째 임신까지는 용케 낙태를 시켰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 임신에서는 아이를 낳다가 둘째 아내와 아기 둘 다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둘째 아내는 죽어가면서 한없는 원한을 품었고, 남편도 결국 그녀의 잔인한 행실을 알아채고는 모질게 매질하여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 후 두 여인은 태어날 때마다 원수지간이 되어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을 반복하였습니다. 죽은 첫째 부인은 암탉으로, 둘째 부인은 고양이로 태어나더니 이번에는 암탉의 알을 고양이가 모조리 먹어치웠습니다. 여봐란 듯이 복수를 한 것이지요. 곧이어 암탉은 표범으로 고양이는 사슴으로 태어났습니다. 이번에는 표범이 사슴을 잡아먹었습니다. 역시 통쾌하게 복수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두 여인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사윤회를 되풀이하면서 원한과 복수를 맘껏 갚았습니다.(‘법구경’ 거해스님 편역, 고려원)
이 이야기를 보면 정말 ‘내가 현재 만난 불행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전생에 있으니 피하려고도 하지 말고 감수해낼 수밖에는 없다’는 가르침을 전해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이런 것이 부처님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이 이런 전생이야기를 들려주신 이유는, 지금 현재 현명하게 선업을 지어서 그 끔찍한 반복을 끊으려고 힘쓰라는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였지 ‘그러니 그냥 당하고 살라’라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지금 ‘현재’입니다.
지금 현재 우리는 뭔가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선한 의도건, 악한 의도건, 의도를 가지고 일을 합니다. 그게 ‘업’입니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 이게 업인 것입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죽을 죄를 지었건, 영웅의 삶을 살았건 중요한 것은 나는 ‘지금 현재’ 살아가고 있고, 나는 어떤 업이든 ‘현재’ 짓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앞서 매 맞는 여자의 경우, 정말 그 여자가 전생에 매 맞을 짓을 해서 피할 도리가 없다면 그 남편이 단란한 가정에서 자라나 성격상의 문제가 전혀 없어도 그 아내를 때렸다는 말이 됩니다. 그리고 다양한 상담과 심리분석을 통해 치유해도 남편은 여전히 아내를 때릴 거라는 말이 됩니다.
실제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지금 매 맞는 여자가 해야 할 일은 전생의 죄 운운할 것이 아니라 남편이 왜 이리 폭력적인지 그 이유를 빨리 찾아서 치료와 상담에 들어가는 일입니다. 남편의 어린 시절에 문제는 없었는지, 부부간의 대화법에 무슨 원인이 있지는 않는지, 하다못해 환경이나 음식이 너무 자극적이지는 않는지, 다각도로 남편의 폭력을 해결하려고 지금 당장 ‘업’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 매 맞는 아내가 할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점점 거칠어가는 이 사회도 함께 문제풀기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매질을 참고 당해내는 것이 어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럼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의 악업을 조장하는 ‘죄’는 또 어찌 하시렵니까? 업은 전생의 죄갚음을 말해주려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지금 당신이 어떤 업을 짓느냐에 따라 당신의 현재와 미래가 달라진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한 부처님의 명쾌한 문제해결법인 것입니다.
200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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