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쓰고 있는 마음 자체가 부처님 성품이고 부처님 세상
<선가귀감>에서는 우리가 공부해야 할 내용을 요점만 드러내고 있다. 참선하는 사람들은 먼저 부처님의 참다운 가르침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중생이고 우리가 추구하는 부처님의 세상이 있는데, 그 부처님 세상은 중생의 고통이 없고 변하지 않는 영원한 세상이다.
그 세상에 넘쳐흐르는 자비심은 중생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 부처님은 중생들의 부름에 응답하여 그 근기에 맞추어서 여러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나타나신다.
비유하자면 바닷물과 파도의 관계와도 같다. 바람이 불어서 출렁이는 물결이 일어나면 그 바닷물은 여러 가지 파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모습은 바뀌었으나 파도는 여전히 바닷물로서 그 성분이 바뀌는 법이 없다. 변하지 않는 물의 성분을 불변(不變)이라고 한다면, 바람에 따라 일어나는 파도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수연(隨緣)의 뜻이다.
부처님의 성품은 변하지 않았지만 중생의 부름에 응답하여 그 수준에 맞추어서 여러 모습으로 부처님이 나타나신 것, 그것이 불변(不變)과 수연(隨緣)의 뜻이다. 중생들은 여러 가지 모습을 지니고 있지만 실은 모두 다 부처님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 변하지 않는 부처님의 성품이 인연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을 지니게 되는 것, 이것이 수연의 뜻이다. 자기 마음에 있는 본바탕 성품이 불변이고 그 바탕이 인연 따라 달리 나타나는 모습이 수연의 뜻이다.
이 말을 듣고 ‘아, 내가 부처님이구나’ 하고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알고 모든 공부를 끝내는 사람을 우리는 돈오돈수(頓悟頓修)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을 들어도 그 자리에서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만 하다면, 먼저 ‘부처님의 성품’을 이해하고 그것에 의지하여 더 공부를 해나가야 한다. 부처님의 성품을 먼저 이해하고 차츰차츰 닦아 나가는 것을 우리는 해오점수(解悟漸修)라고 한다. <선가귀감> 11장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故 學者 先以如實言敎 委辨不變隨緣二義 是自心之性相 頓悟漸修兩門 是自行之始終 然後 放下敎義 但將自心 現前一念 參詳禪旨則 必有所得 所謂出身活路
그러므로 도를 배우는 사람들은 먼저 참다운 가르침으로써 변하지 않는 불변(不變)과 인연에 따르는 수연(隨緣)의 뜻이 자기 마음에 있는 본바탕 성품과 드러나는 모습이며, 단번에 깨닫는 돈오(頓悟)와 차츰차츰 닦아 가는 점수(漸修)는 스스로 공부를 시작하는 처음과 끝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그런 뒤에 교(敎)의 뜻을 내버리고 오로지 자신의 마음에 나타나는 한 생각으로 선(禪)의 근본 뜻을 자세히 참구하면 반드시 얻을 것이 있으니, 이것이 생사의 몸을 벗어날 수 있는 살길이다.
<선가귀감>에서는 뛰어난 근기로써 크게 지혜로운 사람은 이런 구분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고 이르고 있다.
그러나 교(敎)를 공부해야 할 어중간한 사람들은 함부로 공부의 차례를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불변(不變)과 수연(隨緣), 돈오(頓悟)와 점수(漸修)에는 앞뒤 또는 차례가 있다는 것, 그것이 교(敎)의 뜻이다.
선(禪)에서 말하는 법은 한 생각 속에 불변과 수연, 본바탕 성품과 형상, 그 바탕과 쓰임이 한꺼번에 일어난다.
불변이 수연이 되고 그 바탕이 쓰임새가 되어, 떠나도 떠난 것이 아니고 옳아도 옳은 것이 아니다. 파도라도 바닷물을 떠난 것이 아니고, 모습이 파도라도 그 실체는 파도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큰스님들은 법에 근거하여 말을 떠나서, 바로 한 생각을 가리켜서 참 성품을 보고 부처님이 되게 한다. 교(敎)의 뜻을 내버린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부를 시작할 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우리가 쓰고 있는 이 마음 자체가 그대로 부처님의 성품이고 그대로 부처님 세상이다’라는 믿음이다.
<선가귀감>에서 “스스로 공부를 시작하는 처음과 끝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라고 한 말이 바로 이 뜻이다. 돈오(頓俉)와 점수(漸修), 불변과 수연의 뜻을 확실히 안다면 공부하는 근본을 알고 있는 것이며, 또한 참선 공부는 그런 뒤에라야 제대로 할 수 있다.
이것이 쳇바퀴처럼 돌고 돌아 끝없이 고통이 이어지는 생사(生死)의 바다에서 확실하게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다만 우리들의 업이 두텁고 쓸데없는 생각들이 많아서 순수하고 빛나는 부처님의 성품을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서산 스님은 게송으로 말한다.
明歷歷時 雲藏深谷 深密密處 日照晴空
모든 것이 밝고 밝아 분명할 때에
비구름이 골짜기를 덮어버리고
깊고 깊어 그윽하고 고요한 곳에
푸른 하늘 높은 태양 찬란한 광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