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와 규소, 같은 전자 배열 갖고도
결합방식과 하는 일 하늘과 땅 차이
선사들이 대중에게 들려주는 법어에는 선문답과 같은 말들이 포함된다. 그 비논리성(혹은 초논리성)은 사람들을 당황케 하곤 한다. 그 말들은 깨달음의 경지를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파격일 수도 있고, 깨달음의 느낌을 가장 가깝게 표현한 것일 수도 있겠다. 과학기술의 시대에 이러한 파격이 어떻게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 또한 불자들의 숙제일 것이다.
‘돌 계집이 애 낳는 소식’이라는 경허 스님의 말씀은 깨달음의 소식을 표현한 대표적인 말이다. 돌은 무생물이므로 애를 낳을 수 없다. 따라서 불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논리를 만들어 나가면, 황당한 비논리의 수사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가지는 한계를 뛰어넘으라는 질책일 수도 있고, 또는 수행 중에 느끼는 자기의 사라짐,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의 애매해 짐, 그리고 갇혀 있던 자아의 해방에 대한 느낌을 그렇게 표현했을지 모른다.
대학교 생물학 첫 시간에 교수들은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점을 밝히라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명백한 차이를 가지는 것처럼 보이는 두개의 개념이 실제로 따지고 들어가면 애매해지는 경우가 많다. 흔히 생물만의 특징이라고 생각하는 자손을 복제하는 능력은 무생물에서도 발견하게 된다. 실제로 돌이 비로부터 받은 물과 흙에 섞여 있는 돌의 성분으로부터 자기의 모양을 복제하는 능력을 보면 참으로 신비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생물학자들은 신진대사를 하면서, 자신을 복제하는 능력을 생물의 정의로 들기도 한다. 무생물인 호르몬·피의 신진 대사로부터 영양분을 받아들이고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고 또 사랑을 나누는 생물의 작용을 이해하면 할수록 놀라운 신비를 느끼게 된다.
지구에서 가장 흔한 원소인 규소는 흔히 바닷모래를 이루기도 하고, 바위를 이루기도 한다. 재미있게도 생명을 이루는 기본 원소인 탄소와도 같이 규소는 바깥 전자를 4개 가지고 있는 원소이다. 그리고 탄소가 규칙적인 배열을 이루어 금강석이 되는 것과 같이 규소는 같은 모양으로 실리콘 결정을 이룬다.
또한 탄소는 수소 등과 결합해서 탄수화물, 단백질과 같은 생물을 이루는 기초 원소가 된다. 세계 1류 기술로 자랑하는 한국의 반도체 기술은 바로 이 규소로 구성된 실리콘 결정으로부터 반도체 칩을 만드는 기술이다. 현미경으로 반도체 칩의 동작을 측정한 사람은 무생물인 돌이 가지는 수많은 기능들, 그리고 칩 내의 트랜지스터와 트랜지스터 사이의 상호관계들이 생명 현상 만큼이나 오묘하고 복잡함을 느끼게 된다.
같은 전자 배열을 가진 탄소는 생명을 만드는 데 비해서 실리콘은 왜 무생물인 반도체, 혹은 돌이 되는가는 확실하지 않다. 무생물이면서도 생명을 이루는 탄소와 비슷한 전자배열을 가진 돌에게서 애를 낳은 격외를 말하는 깨달음의 경지가 과연 단순히 격외인지, 과학에서 말하지 못하는 진리를 말하는 지를 다같이 깊이 고민해 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