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얇아 무책임한 종교가 말에 혹하십니까
당한 후에 원망 말고 “사실일까” 한번 더 생각을
한 할머니가 커다란 나무 밑에 잠시 누워 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낌새에 눈을 뜬 할머니는 기절하는 줄만 알았습니다. 할머니 몸의 몇 배나 되는 커다란 곰 한 마리가 할머니를 습격하려고 앞 발 두 개를 번쩍 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침 그때 눈을 떴으니 다행이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할머니는 재빠르게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몸을 피했지요. 하지만 곰도 워낙 날쌘 짐승이라 만만치 않았습니다.
할머니와 곰.
나무를 사이에 두고서 빙빙 돌며 쫓고 쫓기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빙빙 돌다가 곰이 한쪽 발을 나무에 짚고서 한쪽 발로 할머니를 후려치려고 하는 순간 할머니는 한 손으로 아주 재빨리 나무를 짚은 곰의 앞발을 눌렀습니다. 그리고 곰이 당황해하는 사이에 다른 쪽 앞발 하나마저 얼른 붙잡아서 나무에 대고 눌렀습니다. 그림이 그려지시나요? 나무를 사이에 두고 곰의 앞 발 두 개를 할머니가 두 손으로 꾹 누르고 있는 광경이요.
하지만 할머니는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꼼짝 못하고 있지만 사납고 힘센 곰이 언제 할머니를 다시 공격할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어떤 남자가 그 나무 곁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얼른 꾀를 내어 그를 불렀습니다.
“이봐요, 청년! 나 좀 도와주구려. 내 대신 이 곰 앞발을 눌러주면 그 사이에 내 얼른 이 녀석을 잡을 테니 우리 둘이서 고기를 나눠 먹읍시다.”
청년은 곰을 잡아서 나누어주겠다는 말에 얼른 할머니 대신 곰의 앞발을 자기 손으로 힘껏 눌렀습니다. 할머니는 이제 살았다 하며 걸음아 날 살려라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습니다.
그 청년이 곰에게 어떻게 되었는지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그런 청년을 두고 동네 사람들이 “이런 바보 멍청이”라며 비웃었다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납니다.
<백유경>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할머니와 곰 이야기를 읽을 때는 허리가 꺾이도록 웃었습니다. 어리숙한 청년보다는 할머니의 재치가 더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과 상황이 무엇을 비유한 것인지에 대한 설명을 읽고서는 더 이상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사상과 이론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이 한 세상 그럭저럭 잘 살아가게 하는 교훈들도 많이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엉뚱한 방향으로 사람들을 끌고 가는 종교가나 이론가들도 많습니다. 그들은 자기 말에 책임도 지지 못하면서 마치 자기 생각과 주장이 진리라는 듯이 거침없이 사람들을 향해 쏟아 붓습니다. 할머니는 바로 이렇게 무책임한 종교가를 비유한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아무리 번드레한 말을 들어도 ‘진짜 그런가?’라며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귀가 얇아서 남의 말에 그저 솔깃해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고 그냥 믿어버리는 사람 또한 많습니다.
귀가 얇은 사람은 대체로 ‘당신이 행복해지려면 이런 일을 해야 한다’라는 말에 마음이 많이 흔들립니다. ‘이런 일을 하면 당신은 부자가 된다’라든지, ‘이런 일을 해야 자식이 잘 된다’, ‘병이 낫는다’라는 말을 들으면 불을 향해 날아드는 나방처럼 더 이상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듭니다. 이런 무모한 사람들 중에는 학력과 재산을 어느 정도 가진 사람도 상당수 있습니다. 곰 고기를 나누어줄테니 이 곰 좀 붙잡고 있으라는 말에 속아 넘어가 곤욕을 치른 청년이 바로 이런 사람을 비유한 것입니다.
시중에는 ‘부처님의 말씀’을 담은 책과 스님들과 재가불자들이 쓴 책들이 참 많이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책이 다 알차고 유익한 내용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책들 중에는 자기가 기거한 절이 효험이 있다거나, 꼭 어떤 특정한 절에서 천도재를 지내야 ‘좋은 일’이 있다는 말이 암암리에 들어가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또는 그 책의 저자인 스님을 친견하러 절에 갔거나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다가와 정성을 더 쏟으라느니, 조상을 달래야 한다느니 하는 말들을 슬쩍 건네거나, 긴가민가하고 있을 때 ‘지금 내 말은 아무에게나 함부로 하지 않는다. 특별히 당신에게만 들려준다’며 은근히 설득하는 이가 있다면 그건 전부가 사나운 곰을 청년에게 넘기고 도망친 할머니와 같은 존재들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결국 곤욕을 치르고 비웃음을 당한 자는 청년 아니었습니까? 당하고 나서 할머니를 원망한들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세상은 그런 청년을 순수하다고 하지 않고 어리석다고 비웃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