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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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불씨는 절대로 꺼트리지 마세요!
주인공에 맡기면서 모든 것을 타파해 나가세요

(지난 호에 이어서)
▲질문자1(남): 거의 모든 종교가 윤회를 인정하고 있는데,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도교는 장생불로(長生不老)에 있다고 하고, 기독교와 천주교는 천당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면서 영생을 얻는다고 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사상의 궁극적인 목적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큰스님: 아, 그것도 마음에 있는 거죠, 뭐. 도교가 뭐 다른 겁니까? 도란 마음이죠. 이 마음이 벗어난다면 정말 삶의 보람을 찾고 영생을 할 수 있는 거고, 영생이 된다는 것은 영원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죠, 뭐. 그래서 모습을 해 가지고 나오려면 나오고 말려면 말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죠. 예를 들어서 내가 어떠한 모습으로든지 상황에 따라서 그 모습을 나타냈다가 또 자기 모습을 없애려면 없애고, 또 모습을 나타냈다가 없애려면 없애고 이렇게 할 수도 있는 법이고요. 그러니까 자유자재권을 송두리째 얻는 거죠.
불교에서는 ‘자신을 발견하라. 너부터 알고 너부터 발견해야만이 영생을 누릴 수 있다.’ 그러죠. 그런데 기독교나 가톨릭교에서는 하나님과 더불어 영생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상대를 보고 믿고, 상대를 보고 기도를 하니까 나를 발견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말로만 그렇게 해서 되는 게 아니죠. 그러니 모두가 하나로 돌아가는 이치에서 본다면 ‘자기부터 알았으면 그 도리를 모두 알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불교도 상대를 놓고 기도하고 상대를 놓고 빈다면 자기를 뛰어넘을 수가 없죠. 자기를 발견할 수도 없고요.
그래서 이 법당에 들어오면 당신이 이 법당에 들어왔기 때문에 부처님이 계시다는 겁니다. 당신이 법당에 왔기 때문에, 당신이 있기 때문에 부처님이 있는 거지 당신이 법당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부처님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까 부처님의 형상도 자기의 형상과 둘이 아니요, 마음도 둘이 아니요, 생명도 둘이 아니고 전체가 둘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그래서 주인공에 하나로 묶어서 삼배를 하든지, 또는 하나로 부처님한테 묶어 놓고 삼배를 하고 다시금 자기한테 하나로 끌어 묶어 놓든지, 이렇게 하는 것이 공부하는 데 지장이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공덕이 되고요. 또요?
▲질문자1(남): 네, 저의 질문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큰스님: 왜 그만 하십니까? (대중 웃음)
▲질문자1(남): 질문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양보하겠습니다.
▲큰스님: 우리가 생활을 그냥 하는 게 그대로 찰나찰나 윤회가 되는 것이고, 윤회라는 것은 이름이지, 그게 이름 가지고 논의할 게 아니라 공했다는 그 사실 그걸로 이름을 해도 되는 것입니다.

▲질문자2(남): 저는 심용회 총무입니다. 스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스님께서 조금 쉬시라는 마음으로 그 동안 제가 공부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조금 들려드릴까 합니다.
▲큰스님: 네. 편히 앉아서 하세요.
▲질문자2(남): 네, 감사합니다. 제가 큰스님을 처음으로 친견하게 된 것은 1991년 8월경으로 기억됩니다. 그 자리에서 큰스님께서 저에게 “아직 멀었다. 아직 멀었어.”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다른 신도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마는 저도 그 당시에 예기치 않은 불안 심리를 가지고 큰스님을 친견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큰스님의 ‘아직 멀었어.’ 하시는 말씀의 진의를 잘 몰랐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도 마음공부로 들어가기보다는, 신경정신과 의사를 만나서 상담을 하고 약을 복용했습니다. 물론 약을 복용하는 과정에서도 저 나름대로의 방편으로 생각하고 의사와 제 마음이 한마음이라는 마음으로 치료를 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 전까지 한 2년 6개월 동안 복용을 했는데, 물론 그 동안 약을 쭉 줄여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약을 먹었는데 아무 반응이 없어요. 그 동안에는 약을 먹으면 잠을 아침 10시까지도 자고 마음도 굉장히 편안했었습니다. 그런데 약을 먹어도 이제는 아무 반응이 없어요. 그래서 ‘야! 이제 그만 먹어도 되는 건가?’ 하고 약을 안 먹었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설사가 나오더라고요. 설사를 한 일주일 정도 하고 나니까 정신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또 병원 내과에 가서 설사약을 먹고 그 와중에 감기도 한 보름을 앓았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설사약과 감기약을 한꺼번에 복용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약을 복용하다 보니까 제 몸에 이상한 증세가 나타나더라고요. 갑자기 소화도 안되고 입에서 트림을 하면 냄새가 나고, 그리고 구토를 하고 이러한 과정을 겪게 되니까 ‘야, 이젠 안 되겠는데.’ 하고 내과 전문의 병원을 찾아가서 종합 진찰을 받고 결과를 받아 보니깐요, 의사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볼 때 이게 굉장히 심각한 상황인데 왜 여태까지 그대로 놔뒀느냐.’ 하면서 추천서를 써 주면서 여기 가서 내시경 검사, 조직 검사 뭐, 이런 걸 해 보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그 말씀을 듣고 집에 와서 그날 밤에 자는데 아무래도 이거 도저히 안 되겠어요. 그래서 집사람보고 내일 아침에 큰스님을 한번 친견하고 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하고 나서도 어느 병원에 가서 한번 내시경 검사를 해 봐야 되겠다 하고 마음을 굳혔었는데요, 집사람이 큰스님을 친견하고 나서 그게 별거 아니고 그냥 염증이니까 마음공부 관(觀)하는 방법만 제게 알려 주라고 그러셨다고 그래요. 그 말씀을 들으니까요, 갑자기 약이 싫어지더라고요. 그러면서 제가 병원에서 받은 차트, 엑스레이 찍은 거, 그리고 약을 전부 그날로 쓰레기통에 집어 넣어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부터는 내 사전에 약은 없다. 그리고 앞으로 병원도 절대 가지 않겠다.’ 하는 마음이 솟구쳤습니다.
그렇게 약과 병원을 차단을 하게 되니까 제가 붙잡을 수 있는 거는 이 한마음 법밖에는 없더라고요, 당연히. 그래서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가지고 주인공을 잡는 공부를 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하다 보니깐요, 한 달 동안 제가 선원을 매일 출근을 했습니다. 제가 나가는 이 선원이 무(無)의 병원이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매일 하루도 안 빠지고 한 달 동안을 출근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큰스님께서 ‘아직 멀었어.’ 하시는 말씀의 의미를 나름대로 좀 깨달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 한 달 동안에 새해맞이 촛불재가 있었습니다.
아침에 예불을 마치고 저녁에 촛불재에 참석을 했었는데, 주지 스님께서 많은 신도 분들을 한 사람 한 사람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챙기시는 거를 보고 거기서 크게 느꼈습니다. 야, 주지 스님은 저 많은 분들을 저렇게 관심을 가지고 이끌어 주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43년을 살아오면서 도대체 가까운 친구, 아니 가까운 형제들한테도 마음 한번 내 주지 못하고 오직 나 하나밖에 모르는…. 물론 제가 그 동안 어렵게 살았기 때문에 저 나름대로의 어떤 목표는 있었습니다. 그거를 달성하려고 하다가 보니까 제 인생관이라고 할까 이런 것들이 이기적인 쪽으로 굉장히 기울었다는 거를 제 나름대로 느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마음의 문을 닫아 놓고, 어떤 울타리를 쳐 놓고 그 속에서 저 자신의 자아의식에 사로잡혀 가지고 저밖에 모르는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 이게 전부는 아니구나. 앞으로는 마음의 문을 열고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한테 눈을 한번 돌려 보자.’ 이러한 마음가짐을 갖게 되니까 굉장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그러면서 그 동안에 소홀했던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지금은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촛불재를 함으로써 제 나름대로 마음의 눈이 약간은 떠진 게 아닌가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마음공부를 하는 모든 분들은 이 촛불재만큼은 필히 참석을 해야 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중 웃음, 박수) 그 문제에 대해서 큰스님께서 간단하게 정리 좀 해 주십시오.
▲큰스님: 지금 이렇게 말씀하신 것도 알고 보면 설법입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통해서 서로가 느긋하게 인내를 가지고 살 수 있게끔 하는 마음도 생겼고, 또 인내를 가질 수도 있고 마음을 정리할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촛불을 보고 내 마음을 정리하는 사람도 있고, 내 마음의 촛불을 켜들고 정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보이는 불과 보이지 않는 불이 둘이 아닌 까닭에, 우리가 마음의 촛불은 항상 켜고 다니는데, 내가 어떠한 의식으로 인해서 마음의 불을 좀 꺼뜨리고 간다, 이럴 때는 캄캄합니다, 마음의 불을 껐을 때는. 그럴 때 남이 촛불을 켠 걸 보면 바로 또 촛불을 켜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서로가 밝게 살 수 있는 거니까 켜는 것도 좋고, 안 켜는 것도 안 켜는 것이 아니죠. 하여튼 내 마음의 불만은 절대로 꺼뜨리지 마십시오.
▲질문자2(남):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인과응보에 대한 문제를 제 생활과 결부시켜서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1980년도에 독립을 해 가지고 현재 자개장농 공장을 조그맣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년, 그러니까 93년도 구정 지나서, 작업을 하려고 재료를 사다가 작업방에다가 신문지에 싸 가지고 놔뒀었는데요. 그때 불과 한 15분 사이, 그러니까 퇴근하고 나서 조카가 그 위에 올라가서 밥을 먹고 내려간 그 사이에 그 물건이 없어졌던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10여 년 동안 공장을 하면서 그런 일이 전혀 없었는데, 그때 그런 일이 딱 일어나더라고요. 심증이 가는, 일하는 아이가 있었는데 뭐, 증거가 없으니까 그때는 그대로 마무리 해 버리고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5월 5일 어린이날로 기억이 됩니다. 그날 식구들과 함께 치악산 가는 길에 있는 소쩍새 마을을 갔다 왔습니다. 거길 갔다 오고 그 다음 날, 저희가 물건을 쌓아 놓고 있는 창고가 하나 있는데 집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어요. 거기에서 물건을 출고하기 위해서 차를 가지고 갔더니, 물건이 많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한 세트가, 딱 장농 한 세트가 없어졌더라고요. 그래서 ‘이거 참 이상하다. 올해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길까?’ 하고 생각했지만, 물론 그 당시에도 심증이 가는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꼭 이상하게, 물건이 없어지면 그때부터 출근을 안 하더라고요. 그래도 증거가 없으니 뭐 저로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죠.
또 한 달 전에는, 장농을 만들려면 도안이 있어야 되는데, 어느 창고에 가니까 제 물건하고 똑같은 물건이 딱 서 있더라고요. 물론 조그맣고 좀 질이 떨어진 물건이었는데, 다른 사람이 제 도안을 가지고 물건을 만드는 걸 제가 확인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공부하면서 그 과정을 가만히 돌이켜보면 제 나름대로 과거의 저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해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그러니까 77년경, 그 당시는 제가 독립하기 전이니까, 남의 집에서 책임자로서 아이들을 한 열댓 명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제 부끄러운 얘기를 말씀드릴까 합니다. 조금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책임자로 한 5년간 제 열과 성의를 다해서 열심히 했습니다. 진짜 제 일보다 더 열심히 해 오다가 이제는 독립을 해야 되겠다 하는 마음을 먹게 되니까, 그 당시에 제가 그 공장에서 재료를 관리하고 있었는데, 저한테 그런 면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그 재료에 손이 가더라고요. 그래 가지고 매일 퇴근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공장에 있던 거를 저희 집 서랍에다 이동을 시켰습니다, 조금씩. 그렇게 한참을 했는데, 물론 그 사장님도 그전보다 좀 자주 없어진다고 느꼈는지 저에 대해서 조금 추궁하는 눈초리를 보이면서 의심을 하더라고요. 그렇게 자꾸 추궁을 하시면서도 그 당시에는 증거가 없어서 그대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그 집을 나와 독립하는 과정에서 그 집에서만 일을 했었기 때문에 도안이라든가 이런 게 천상 그집 물건밖에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나오면서 그집 도안을 전부 가지고 나와서 제가 독립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문제들을 연관시켜 볼 때에 ‘내가 과거에 그 집에서 남의 물건을 갖고 왔고 도안도 그대로 다 갖고 나왔던 그 결과가 작년에 물건을 분실했던 점과 일맥상통하지 않느냐. 그게 연관이 되는 게 아니냐. 이러한 생각이 드니까 이게 다 내 탓이로구나. 그 사람들 욕할 게 하나도 없구나.’ 하는 마음이 들면서 그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나 미움은 물론, 그 당시에도 전혀 그런 거는 없었습니다. 요즘은 그 점에 대해서 그렇게 저 나름대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너무 깊게 생각해서 거기다 갖다 붙이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 인과응보의 대가를 받고 있는 것인지 그 점에 대해서 간단하게 정리를 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큰스님: 사람 심리라는 것이 다 그러하겠죠. 하지만 이 도리를 모르니까 그렇게 했겠지만, 앞서의 그 사람도 ‘앞으로 내가 독립을 좀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하면서 같이 상의해 나갔다면 다 도와주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남을 나무라기 이전에 내 탓으로 돌리고 둘이 아니니까, ‘너도 앞으로 그렇게 인과응보를 받을지 모르니까 그러지 말아라. 주인공, 둘이 아닌데 그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잖아.’ 하고 주인공에다 맡기시면서 모든 거를 그렇게 타파해 나가세요.
▲질문자2(남): 네, 감사합니다.
▲큰스님: 그래야 그러한 짓을 못하게 됨으로써 걔도 잘되고 또 이쪽도 좋고 그런 거지, 그걸 발설을 해서 해결하려고 한다면 서로 다 좋지 않죠.
▲질문자2(남): 네,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요, 제가 작년 추석 이후로 지금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해 가지고 하청을 여러 군데 공장에 주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물론 제 잘못이지마는 물건이 계속 쌓이면서 나가질 않다 보니까 주체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에 한 달 동안 또 선원에 출근하다 보니까 지금은 더 많이 쌓여 가지고 진짜 주체할 수 없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제가 처해 있는 모든 생활, 직업이라든가 이러한 문제를 주인공 법을 적용을 해 가지고, 거기에다가 실험을 하고 점검을 해 가면서 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큰스님: 그게 당신 겁니까? 당신 껍데기를 당신이라고 하니깐 그 문제가 껍데기로 남죠.
▲질문자2(남): 예, 예. 맞습니다.
▲큰스님: 당신 속에 당신이 또 있어요. 그러니까 속에 있는 당신 거지, 지금 당신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당신이 해 나가는 거지, 당신이 하는 게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아, 모든 것은 주인한테 맡겨요. ‘너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고 지금 쌓이는 그 자체가 바로 내 것이 아니라 네가 해결할 문제다.’ 하고 그 과제를 다 거기다 넘기세요.
▲질문자2(남): 네. 주인공이 한다는 걸로 생각하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큰스님: 사실인 걸요. 하하하….
▲질문자2(남): 그러니까 큰스님께서 한생각 내 주셔 가지고 지금 제가….
▲큰스님: 한생각 내든 안 내든, 내나 마나죠, 뭐. 그냥 그렇게 생각한다면 전부 한마음으로 돌아가게끔 돼 있어요, 자동적으로.

▲사회자: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른 것 같습니다. 두 분 질문이 너무 진지해서 큰스님께서 질문에 답문해 주시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큰스님: 아니요. 요다음에도 질문으로만 들어가겠습니다. 질문하고 이렇게 토론하는 데서 우리가 마음을 정리할 수도 있고, 넉넉지 못해서 자꾸 피하던 것도 그냥 넘어설 수 있는 패기가 생길 수도 있고 그런 거니까, 요다음에도 그냥 질문 토론으로 합시다.
▲사회자: 이번에 저희가 임원 개편이 있었습니다. 새로 된 임원들이 이 자리에서 큰스님께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임원들, 일어나 주시죠. 조금 앞으로….
▲큰스님: 본래 임원이기 때문에 올 것도 없고 갈 것도 없는데요, 뭐. 하하하….
▲사회자: 선 자리에서 큰절로 큰스님께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신도회장: 이번 새로 소임을 받은 저희들 임원회 일동 26명은 앞으로 큰스님의 가르침을 받들고 주지 스님, 승단의 여러 스님들의 뜻을 받들어서 앞으로 우리 신도님들이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한마음 공부에 정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며, 우리 도량의 발전을 위해서 성심성의껏, 또 일체 화합 단결해서 이루어 나갈 것을 큰스님 앞에 서약드리며 신고 삼배를 올리겠습니다.
▲큰스님: (합장하시고) 감사합니다. 예전에 있었던 일입니다만, 어느 절에서 스님들을 금방 공양주로 내놨다가 금방 선방으로 올렸다가 금방 부목으로 내쫓았다가 이렇게 했답니다. 그래도 그 여러 제자들 가운데 딱 한 사람만이 아무 소리도 않고 그렇게 흥겨워서 즐거웁게 일을 하더랍니다. 그 모든 것에 아주, 그 올라가고 내려가고 이런 것도 하나도 없이, 그냥 나무를 패 가지고 와서 불을 때면서 “아이구! 뜨듯하겠지, 이만큼 때면.” 하면서, 콧노래를 부르면서 말입니다. 수좌가 돼 가지고 그렇게 하기가 어렵거든요. 그렇게 했던 그 자체가 가섭같이 됐다는 얘기인데요.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지위든지, 윗자리라든가 아랫자리를 막론하고 그대로 실천할 수 있어야 하죠. 부처님께서는 하다못해 돼지가 앓는 소리를 하고 염원을 해도 돼지 속으로 들어가서 돼지를 고쳐 주셨어요, 응해 주셨다 이 소리예요. 그러니까 때로는 돼지한테 들어가서 돼지가 되시고, 때로는 소 속에 들어가서 소가 되시고, 벌레 속에도 들어가시고 이러기 때문에 부처라는 지위가 없어요. 부처라는 지위가 본래 없는 것이 부처라는 지위거든요. 그래서 지위가 없는 것이 부처기 때문에 부처라고 한 거거든요. 그러니 지위를 어떻게 둘 수가 없는 거죠. 이것이 됐다가 저것이 됐다가, 이거를 했다가 저거를 했다가, 저기 갔다가 여기 갔다가 하니까 아무 지위도 필요 없어요. 이름도 필요 없고 지위도 필요 없어요. 그랬던 거와 같이 여러분은 그렇게 작위 없는, 이름 없는 이름으로써 그대로 진실하게 실천을 하는 데서 우주의 삼라만상 한 도리에서 열쇠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열심히 진실하게 마음도리에서…, 마음도리가 아니라면요, 화목도 깨지고 단결도 깨집니다. 그러니까 한마음으로 단합을 하고 화목을 가져오려면 모든 건 내 탓으로 돌리고 이름 없는 정말 부처가 돼야죠. 이름 없는 사람이 이름 없이, 함이 없이 그저 닥치는 대로 진실하게 남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거요. 내가 죽고 남을 살리라는 게 아니에요. 이런 말 있죠. 평등하기 때문에 너, 나가 있고 법이 있다고요. 그러니까 나는 그전부터 그렇게 해 왔어요. 내 입으로 말을 하는 게 아니고, 잘못하고 ‘아주 이건 안 되겠다’ 하면 자기 입으로 자기가 말하고 자기가 물러서요. 그렇게 하게 되죠. 그러니까 모두가 그런 일이 없도록 남을 도와줄 수 있는 길잡이가 됐으면 합니다. 그리고 웃고들 행하시고요.

※위 법문은 1994년 3월 6일 법형제법회에서 설법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나 한마음선원)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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