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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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운거선사, 왕자출신 의천을 맞으면서/원철 스님(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고려왕자 의천, 송나라 수행비서와 함께 만행
왕실의 관례 깬 요원선사 기개에 ‘묵묵부답’

수도권 주변의 번듯한 사찰은 음으로 양으로 왕실 내지는 왕릉과 관계있는 원찰들이다. 그것도 못되면 왕족의 위패 내지는 하다못해 왕자의 태실 등이라도 봉안하고 있어야 제대로 사찰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조선시대 ‘선불교 암흑시대’의 실상이었다.
왕릉 앞의 사당인 정자각(丁字閣)은 사찰건축에도 영향을 미쳐 통도사 대웅전은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의미를 사회적으로 되살린 T자형 법당으로 조성되기도 했다.
외형적으로는 정치와 불교가 서로 배려하며 타협적 공생을 했겠지만, 내용적으로는 왕족이 사찰을 방문했을 때 승려의 영접자세가 어떠했는지는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하다. ‘좌파(?) 사찰’들은 선종의 정체성과 자존심의 유지방편으로 ‘하마비(下馬碑)’ ‘누각밑을 통한 진입계단’ 등으로 그들의 비례(非禮)에 소극적으로나마 저항하고 경책하고자 애썼다.
송나라와 고려는 형제지국으로 문치(文治)를 꽃피우면서 서로를 배려하였다. 그 때 고려 문종의 넷째 아들인 의천(義天)이 출가를 하게 된다. 물론 출가이후에도 모두가 왕자신분으로 그를 대접했음은 자명한 일이다. 의천은 1085년 송나라로 유학하여 여러 선지식을 참방하였다. 그런데 그때도 누더기를 입은 납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만행을 떠나면서 송나라 황제에게 ‘천하의 총림을 두루 다니면서 법을 묻고 도를 받기를 원한다’는 글을 올렸다.
송나라 조정에서는 궁중의 행사와 의전을 담당하는 관리를 붙여서 의천을 수행(隨行)토록 했다. 승려의 운수행각인지 왕실의 행차인지 도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찰 역시 왕의 출행의전에 준하여 맞이하고 보냈다.
그런데 선사중의 선사, 납자중의 납자인 운거요원(雲居了元 1032~1098)선사가 머물고 있던, 강소성 진강부의 금산사는 그게 아니었다. 총림의 방장인 요원선사는 법상에 앉아서 의천납자의 삼배를 받았다. 당황하여 놀란 것은 의천이 아니라 황실에서 특별파견된 수행비서다. 약간 찢어지는 듯한 그러면서도 불쾌함이 밴 목소리로 말했다.
“왜 이러십니까?”
운거선사는 덤덤하게 말했다.
“내 눈에 의천수좌는 왕자가 아니라 고려의 납자일 뿐이요. 승려가 총림에 입방을 하면 산중의 어른에게 절을 하도록 되어 있는게 우리 법도입니다. 총림의 규범이 이와 같으니 내가 바꿀 수가 없소. 각각의 성씨를 가지고 출가하지만 이후에는 모두 석씨일 뿐입니다. 스스로 왕씨라고 하려고 든다면 불법에 맞지 않소이다.”
하지만 황제가 신신당부하면서 보낸 관리는 길길이 뛰면서 이의를 제기했다.
“왕실을 업신여기고 관례를 무시하면서 여타 절과는 다르게 대접하는 것을 법도로 삼는다면 어찌 그것이 걸림없는 선지식의 마음이라고 하겠습니까?” (공자 앞에서 문자쓰는 격)
그러자 짧게 한마디로 대꾸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도를 굽히면서까지 세속법을 따른다면 그것은 결국 정안(正眼)을 잃어버리는 것이니 무엇으로써 송나라 총림의 모범을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이상한 것은 그 어느 기록에도 의천의 당시 태도와 속마음에 대한 반응을 언급한 것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법왕의 그릇이니 ‘기개 있는 선지식을 이제사 제대로 한 명 만났구나’ 하고 흔연히 그 가르침을 받들었을 것이다. 그가 속물이 빠진 제대로 된 승려라면 입이 열 개 있어도 당연히 할 말이 없어야 한다. 그러니 기록이 남아있다면 안 되는 도리인 것이다.
고추는 매워야 하고 소금은 짜야 한다. 왕실은 왕실다워야 하고 절집은 절집다워야 한다. 관리는 관리답게, 승려는 승려답게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 제 맛이다. 그 모든 맛을 한 혀에 접할 수 있는 이 일화는 드물게 맛볼 수 있는 명 요리 장면이기도 하다.
2006-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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