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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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한생각 넓으면 둘 아니게 이끌어 갈 수 있어
고정된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지난 호에 이어서)
▲큰스님: 지금 이 방에 전구가 여러 개죠? 그런데 스위치를 하나 올리니까 불이 다 들어오죠? 또 요거를 몇 개만 켤 수도 있고요. 이건 자유자재예요. 여러분의 마음이 자유자재권을 가졌어요. 그것은 예전에도 얘기했듯이, 여러분이 지수화풍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광력·전력·자력·통신력이 충만해서 자유자재하게 끌어쓸 수가 있는 여건이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마음으로 그 여건을 자재하게 끌어쓸 수 있으니 마음놀이입니다. 마음으로 하는 거니 마음으로 해결을 하라 이거죠.
그런데 나한테 와서는 요기가 아프고 저 일이 안되고, 무슨 돈을 줬는데 다 떼이고, 보증을 섰는데 집이 다 날아가게 생겼다는 둥 이런 말을 할 때면요, 내가 기가 막힌 거 있죠? 기가 막혀요! ‘세상에 어쩌면들 저렇게 관습에 세뇌가 돼서 그냥 뛰어넘을 수가 없을까.’ 하고요. 아무리 말을 해도 씨가 먹히질 않아요. 능하게 좀 한 발짝을 떼어놓지를 못해요. 그 어린애가 한 발짝 떼어 놨을 때 부모가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네? “아이고, 너 한 발짝 떼었구나! 너 걸었구나!” 하고 말이에요. 그런 심정일 거라 이 소립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무리 그 가난을 면하게 해 주려고 해도 떼어 놓질 않아요.
그러니 내가 뭐라고 말을 해야 되겠습니까? ‘왜 당신네들이 저질러 놓고 당신네들이 그렇게 해결을 못해요? 해결을 못할 일이면 하질 말지, 애당초에! 아주 줄 생각을 하고 하든지 해야지 왜 내 집을 잡혀서 담보를 서요? 부자지간에도 담보를 설 수가 없는 지경인데!’ 그것도 무슨 까닭인가 하면 욕심이거든요. 어떤 이익을 얻으려는 데서 오는 욕심에 의해서 담보를 잡혀 줬을 거라고 생각이 돼요. 그러니까 욕심에 의해서 집을 탕진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저 적게 먹고 편안히 살라고 하는 겁니다. 집이 아무리 좋으면 뭘 합니까? 나를 두고 하는 소리인지도 모르죠, 또. 내 몸뚱이가 집이라면 나는 오막살이 토굴이에요. 허허허…. 빌딩이나 세련되고 좋은 집이 못되죠. 하지만 그 안에 들어서 사는 주인이 어떻게 행하고 어떻게 마음을 먹고 사느냐에 따라서 행복이 있고 없는 것이지, 집이 크고 좋고 이래서만 행복이 있는 게 아닙니다. 하여튼 지금 뭐라고 물었는지, 뭐라고 대답을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하하하, 뭐라고 물었나? (대중 웃음)
▲질문자1(남): 천도도 집안 살림 잘해야 다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말씀으로 알아듣겠습니다.
▲큰스님: 그거야 그렇죠. 내 한생각이 넓으면 둘이 아니게 이끌어 갈 수가 있고요. 진짜입니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에요! 정말입니다! 이건 부처님 말씀과도 어긋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발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하늘이 무너질 일이 생겨도 너그럽게, 한번 믿고 뛰어넘을 수 있는 그런 큰 마음이 필요합니다. 울고 짜고 해 봤자 소용없어요. 오히려 몸에 병이나 들죠. 그래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질문자1(남): 다음 질문 올리겠습니다. 민간신앙에서는 혼인이나 장례 등 경조사를 치를 때 풍수지리를 따지거나 길일을 택합니다. 이 집은 방향이 좋지 않으니 자손에게 좋지 않다, 또는 점쟁이가 궁합을 보러 간 사람에게 “이 두 사람이 사주가 맞지 않으니 결혼을 해서는 안 된다.”라고 합니다. 풍수지리 일진이 윤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큰스님: 허허허…, 사는 게 전부 변하고 돌아가는데 어찌 거기에 영향이 없겠습니까마는, 살면서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장가를 든다 시집을 간다 하는데도 말입니다, 궁합을 볼 게 아니죠. 가정이 서로가 맞는가. 또 부모들이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또 신랑 신부가 걸맞는가. 그리고 서로 좋다고 하는가. 이게 궁합이지 무슨 궁합을 따로 볼 게 있습니까, 네? 날짜에 궁합이 붙고 윤회에 궁합이 붙고, 이런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마음먹기에 달려 있으니 그 마음으로 차근차근히 심사숙고해서 맞으면, 아주 좋으면 그냥 궁합이 맞는 겁니다. 여북하면 궁합입니까? 마음에 맞아야 궁합도 맞는 거지 마음에 없는데 어떻게 궁합이 맞습니까?
그리고 또 풍수지리는, 풍수를 보는 사람들이 여기 좋다 저기 좋다 이렇게 하는데, 우리가 공부하는 데는 그게 아닙니다. 지나가다가 마음에서 우러져 나와서 ‘아! 이 자리가 참 좋겠다.’ 하는 마음이 들면 그 자리에다가 그냥 묻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어요! 나는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산 밑이든 물이 질척하든, 그 자리를 파 보면 알게 되는 겁니다. 그냥 내가 좌우를 봐서 ‘야, 이거는 참 좋겠구나. 볕이 들고 아래로 물이 흐르고….’ 또 상황에 따라서 말입니다, ‘이게 참 좋구나. 앞은 산에 봉우리가 저렇게 있고 옆으로는 둘러싸여 울타리가 지고. 참 좋구나.’ 이런 거뿐만 아니라 지형에 따라서 그 용도가 되거든요.
그러니까 지형에 따라서 내 마음을 정할 때에, 예를 들어서 여기 안양에 처음에 터를 마련해서 이 집을 짓는데 말입니다, 그 풍수 보는 사람들, 뭐 역학 하는 사람들 모두 와서 여기다 집을 지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아주. 사람이 떼로 죽고 그런다는 거죠. 여기가 또 공동묘지였거든요. 그리고 굴왕신이 들어서도 안 되고….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허, 죽으면 한 번 죽지 두 번 죽어? 허, 굴왕신이 들기는 무슨 굴왕신이 들어? 내 마음이 굴왕신이고 내 마음이 다 그 자리를 잡으면 되는 거지 굴왕신이 따로 있어?’ 그렇게 그냥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고는 그냥 지었어요. 그런데 이 자리에 여러분이 앉아 있어도 죽지 않지 않습니까? (대중 웃음) 허허허….
그런 거와 같이 우리의 마음에 따라서, 귀신도 자리를 보고 덤비지 덮어놓고 덤비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귀신을 피하려고 애쓰고 그러면 자꾸 재밌어서 쫓아가고 허, 귀신이 오는 거를 그냥 탁 집어서 집어삼키면 쫓아올 것도 없고 갈 것도 없어요. 아시겠어요? 귀신이 따로 있고 사람이 따로 있습니까?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고 귀신이 살아나면 사람이지. 하하하…. (대중 웃음)
산골이나 밤중이나 그믐밤에 가다 보면 누구든지 꼭 무서워서 덜덜덜덜 떨어요. 허, 그런데 저는요, 깊은 산속, 그 수십리 밖의 산골이라도 늠름했던 것은 뭐냐, 둘이 아닌 까닭입니다. 오히려 도움을 받았지, 십리 안팎으로 모두 도움을 받았지 해를 받은 건 하나도 없어요. 왜냐하면 모두 한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먹을 것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고 말입니다. 낭떠러지가 있으면 가르쳐 주고, 이렇게 도움을 주는 거예요. 걷다가도 낭떠러지가 되면 ‘아이구, 여기 낭떠러지입니다. 가지 마십시오.’ 이러고, 하다못해 부엉새도 도와주고, 산비둘기도 도와주고, 지나다니는 뱀도 도와주고 그냥 모두가 다 도와주는데 내가 왜 걱정을 합니까? 뭐가 무서워요?
그런데 무섭다는 건 둘로 보기 때문에 무서운 겁니다. 귀신이 나올까봐 겁나고 목신이 나올까 봐 겁나고 말입니다. 그래서 목신도 ‘참 마음 좋은 사람 오는구나.’ 이렇게 좋아하며 미리 저만치 나와서 인사를 하고 그러는데, 왜 내가 무서워합니까? 하하하…. 또 공양도 제공하고 말입니다. 무슨 공양이냐고요? 그 목신이 말하기를 “저기 조금만 돌아가시면 공양이 있으니 거기 가서 잡수시라.” 그러거든요. 돌아가면 영락없이 새끼오락지에 북어 하나가 꿰어 있어요. 하하하…. (대중 웃음, 박수) 그 북어 꼬랑지를 잡고 턱턱 돌로다가 쳐서 옆구리에다가 쓱 끼고선 이제 가는 거죠, 또. 그러면 산신 모시는 산당이 있죠? 그런 데로 들어가죠. 거기에 위패도 해 놓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게 정말이지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아주 오룡 기와집 같아요. 또 상 차려 놓은 널판지에 단을 해 놨지 않습니까? 그 위에 올라가서 위패를 베고 드러누워 있으면 세상천지가 전부 내 자리 같아요. (대중 웃음) 정말입니다. 이거는 말로 어떻게 형용할 수가 없는 겁니다. ‘이렇게 좋은 것을….’ 하면서 말입니다. 하하하….
그러니 여러분이 이렇게 사시면서도 내가 좋았던 그 마음만큼 그렇게 좋아 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게 좋습니다. 그런데요, 그 습이라는 게 참 무서운 거예요. 내가 지금도, 이렇게 큰 집에서 자고 하면서도 지나가다가 다리 밑 구멍만 봐도요, ‘어휴, 저기서도 잘 만한데….’ 하하하…. (대중 웃음, 박수) 습이라는 것이 참 기가 막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또 움막이나 뭐 창고라든가, 짚으로다가 이렇게 해 놓은 것을 보고 ‘아이고, 저기도 살 만한데.’ 이래요. 여기 삼막사 올라가는 데 저 위로 빈 움막집이 있는데 ‘저긴 저렇게 살 만한데 왜 비워 놨을까?’ 하하하. 아, 이러다가 한편 ‘참, 습이라는 게 이렇게…. 마음이 그렇구나!’ 하는 생각도 합니다. 큰 집은 생각을 안 하고요, 꼭 그런 것만이 눈에 띄거든요. 그리고 ‘그 생각이 드는 거 보니까 무척 정이 들었던 모양이다.’ 하는 생각을 해요.
해 보지 않았던 사람은 지금도 못합니다. 깡통을 들고 얻어먹어 보지 않은 사람은 지금 이렇게 부유하게 사는 상황에서 ‘너 깡통 들고 얻어와라.’ 하면 못 얻어옵니다. 그러나 우리 같은 사람은 할 수 있습니다. 그게 아주 농후하게 배었어요. 허허허…. 또 그 하꼬 구루마 끌고 가는 걸 보면요, ‘아이고, 비가 와도 저기서 그냥 자도 되겠고, 저기서 끓여 먹어도 되겠고, 뭐 괜찮겠구나!’ 이런 생각이 또 들거든요. 그러니 글쎄 얼마나 웃겨요? 그렇게 생각이 들면서도 내가 그냥 빙긋이 웃고 말죠.
그러니까 사람이 살아온, 습이라고 할 거는 없겠지마는 그 과정이 얼마나 지독한지 몰라요. 그래서 여러분도 잘났든 못났든, 작든 크든, 배웠든 못 배웠든 집 걱정은 하지 마시고, 주인이 어떻게 살아야 집을 잘 단속하고 썩지 않고 쓰러지지 않게 할 수 있을까? 그저 여러분이 능력을 발전시켜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기르시는 게 참사람이라고 봅니다. 또요?
▲질문자1(남): 감사합니다. 다음 질문….
▲큰스님: 제대로나 대답을 해 줬는지 모르겠네요.
▲질문자1(남): 아닙니다. 궁합이나 이런 것도 결국은 육도윤회라고 생각이 되네요. 다섯 번째 질문을 올리겠습니다.
▲큰스님: 거기에 매이지 마세요. 누구나가 다요.
▲질문자1(남): 알겠습니다. 저희로서는 과거와 미래를 알 수가 없는데 현실 생활 가운데 윤회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확실하게 증명할 수가 있겠습니까?
▲큰스님: 아까 말 해 놓고 또 딴 말 하시네요. 그거 증명할 수가 있죠, 허허허…. 고정된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냥 전체를 알게 되죠. 우리가 보는 것도 만나는 것도 가고 오는 것도 먹는 것도 사는 것도 모두 고정되게 하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 육도윤회에 끄달리지 말라는 부처님의 가르치심이 올바른 거죠. ‘그 윤회라는 것이 알고 본다면 모두가 공했으니까. 거기다 집착하지 말고 거기에 매이지 말아라. 매이지 않는 게 상책이다. 매이지 말고 벗어나라.’ 이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장가를 들이든지 시집을 보내든지 상관없이 마음 턱 놓고, 그 사람 집과 양면 모두, 신랑 색시 모두 그 마음을 잘 봐서, 그냥 맞으면 하는 겁니다. 그게 바로 맞는 겁니다.
또 현재 상황을 볼 때, 우리 한국이 땅이 좁아서 산이든지 땅이든지 어느 때에 묘지를 파 가라고 할지도 모르니까, 그것을 생각해서 탑으로 하나만 딱 해 놓고 그냥 세세생생에, 삼대(三代)가 다 들어가고 사르고 또 들어가고 또 들어가게 해 놓는다면, 아주 죽어도 걱정이 없고 살아도 걱정이 없죠. 그러니 아무 데나 내가 좋다 하는 자리면 그냥 좋은 자리이기 때문에 그대로 법이 된다 이 소립니다. 그대로 법입니다.
참법은 그런 데에 있는 거죠. 그런 마음을 가진 주장자가 있음으로써 ‘하늘을 꿰어서 굴릴 수 있다.’ 하는 것은 어느 귀신 하나도 범접치 못한다 이 소립니다. 그저 부처든 중생이든 귀신이든 뭐든 닥치면 닥치는 대로 먹어 버리니까 말입니다. 불바퀴에다가 그저 닥치는 대로 넣으니까 타 버리더라고도 하죠. 그거와 같습니다. 아무리 넣어도 넣어도 두드러지지 않고, 아무리 꺼내도 꺼내도 줄지 않는 이 마음의 법이 있지 않습니까? 당당하게 사세요, 아주 당당하게! 걸망 지고 이 세상에 나와서 사람으로 태어나서 그렇게 어릿떠릿하고 그렇게 바람 부는 대로 쓸리면서 내 주장대로 살지 못하고 그러다 보면, 그 차안의 세계에서 만날 그렇게 모습을 바꿔 가면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있습니까?
▲질문자1(남): 또 있습니다.
▲큰스님: 네. 하하하…. 오늘 재밌네요.
▲질문자1(남): 오늘 윤회 얘기가 나온 김에 아주, 의문이 나는 점을 뿌리 뽑아야 되겠습니다. 계속 윤회에 대한 질문입니다.
▲큰스님: 그런 것 같아요. 하하하….
▲질문자1(남): 윤회의 주체가 우리 몸이 아니라 몸 안에 있는 주인공이라면, 이 주인공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불가에서는 아뢰야식(阿賴耶識)이 윤회의 주체라고 하는데 어떤 것인지 좀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큰스님: 뭐, 지금 질문하시는 분 그냥 그대로죠, 뭐. 그대로! 그대로 바로 우리가…, 뭐라고 물었죠? 하하하….
▲질문자1(남): 불가에서는 아뢰야식이 윤회의 주체라고 하는데요, 그게 맞는지 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큰스님: 지금 말씀하시는 그 자체가 바로 그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주인공이라는 그 자체도 한마음이 있기 때문에…. 왜 그러면 ‘한마음’이라고 했겠습니까? 네? 돌아가지 않는다면, 움죽거리지 않는다면 왜 그것을 한마음이라고 해 놨겠습니까? 하나로 돌아가느니 한마음이니, 왜 그랬겠습니까? 일체가 하나로 돌아가는 이치를 우리가 주인공이라고 하는 건데, ‘주인공!’ 하면 바로 고정됨이 없이, 『반야심경』에도 ‘공했다, 공했다’ 했지 않습니까? 찰나찰나 나투는 까닭에 공했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죽는 것도 아니고 사는 것도 아니고, 그대로 영원한 겁니다. 끝없이 이끌어 가는 영원! 자기가 그냥 영원한 겁니다. 하여튼 부처가 되든 중생이 되든, 차안에서 넘지 못하든 넘든 간에 영원한 겁니다. 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넘어서지 못하고 얽매여서 수없이 그렇게 끝없이 윤회에 말려서 허덕거리니까 그게 걱정이지, 그저 어느 모습으로 나왔든지 간에 영원한 겁니다.
그래서 영원히, 세세생생에 그 차안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 모습 저 모습으로 바뀌어 다니면서 그렇게 살지 말고 그 안에서 벗어나라. 그런 거 아예 생각조차 하지 마라. 그냥 그대로 우리가 어떤 일을 잘못했든 잘했든 그냥 긍정적으로 ‘잘한 것도 너고 못한 것도 너니까’ 하고 그냥 놓고 가면서, 우리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새 입력으로 넣는다면 앞서의 입력이 다 없어짐으로써 새 입력을 넣는 대로 또 나오니까 우리가 살 만하죠. 살 만한 겁니다, 진짜. 꽃이 피고 열매가 열려서 그 열매가 그 나무에서 무르익는다면 아주 만 가지 맛이 나면서 살 맛이 나는 겁니다.
그러니 이해가 되십니까? 네, 이해가 되신다면 나를 만날 때, 길에서 만나든 어디서 만나든 어떠한 문제가 있으면 ‘이러이러합니다.’ 그러고선 그냥 똥줄이 빠지게 가세요, 그냥! ‘이러이러합니다.’ 이런다면 그 마음과 이 마음이 그냥 동시에 붙어서 불이 들어올 수 있으나, 이 줄을 가지고 붙였다 떼었다 붙였다 떼었다 하면 그냥 망가지고 말아버려요, 오히려 그냥! 그런데 이거를 그냥 부여잡고는 집을 살려 달라느니 집이 송두리째 날아가느니 뭐, 이렇게 해야 되겠습니까? 소켓트라고 그럴까, 뭐라고 그럴까? 그게 귀찮아해요. 그러니까 오히려 그냥 딱 끼워 놓곤 그냥그냥 가시란 말입니다.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죠. 원주에서 서울로 오려고 차를 타고 오다가 막 내리는데, 손이 갈라지고 문둥 환자처럼 더더기가 붙고 한 어떤 사람이 “이런 병이 들어서, 내쫓긴 거나 마찬가지로 됐습니다. 문둥 환자 사는 데로 가라고 그러니 이거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하고 그냥 차를 막아서서 가질 못하게 해요. 그래서 얼른 가라고 그랬죠.
그런데 그렇게 차를 막는데 무슨 생각이 드느냐 하면요, 나도 내 생각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상황에 따라서 찰나에 자꾸 바뀌니까. 그건 내가 한다 안 한다 이런 게 없어요. ‘아, 그렇겠구나!’ 그러고 있는데, 한마디만 해 달래요. “알았다.”고 하니까 그때서야 가요. ‘그거 참 이상하다. 알았다고 한마디 들으려고 저렇게…. 저 사람네들이 나의 뭘 보고 그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나더군요. ‘저렇게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생각하고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알았다는 한마디를 들으려고 와서 그렇게 길을 막고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에이, 내 꼬락서니를 보고는 믿을 사람 하나도 없을 텐데 그래도 저렇게 믿고 그 말을 듣고 가네.’ 이러고선 그냥 돌아서서 왔어요.
며칠 서울에서 지내고 상원사엘 돌아갔다가 그 이듬해에 다시 또 서울을 오게 되었는데, 누가 두 팔을 벌리면서 날아오듯이 그냥 차로 달려들어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요. 누가 또 왜 이러나 싶어서 말이에요. 아, 그랬더니 그 사람이 말짱하게 나아서 그런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누가 낫게 해 준 게 아니라요, 그 사람이 자기를 자기가 낫게 한 거란 말입니다. 내가 예전에도 얘기했지만, 어떤 사람이 고개가 안 돌아가는데 절을 아주 그냥 공손하게 삼 배를 하더군요. 그래서 그걸 보고 ‘아휴! 저렇게 젊은 남자가 나의 뭘 보고 삼 배를 저렇게 할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게 사실이겠죠. 그렇죠, 사실이에요.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버스 타고 돌아가다가 그게 나았대요. 허허허….
그러니까 그게 내가 해 드리는 게 아니라 본인들이 하는 겁니다, 본인들이. 본인들도 자기 마음을 자기가 어쩔 수가 없어서 그렇지, 진짜로 하심(下心)하고, 진짜로 돌을 보고도 정성을 들이고, 저 형상 부처님을 보고도 막 살려 달라고 애를 쓰는 판인데, 어떻게 산 사람을 보고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안 그래요? 하하하…. 그러니까 잘 생각하셔서 산 사람을 귀중하게 안다면 저 형상적인 부처님이 진짜 이 세상을 한 손으로 꿰들었다는 그 도리를 알게 됩니다. 또 하세요.
▲질문자1(남): 네, 몇 가지 있습니다마는 뭐 비슷한 질문이라 한 가지만 더 말씀 올리겠습니다.
▲큰스님: 아니에요, 다 하세요. 다 하셔도 좋아요. 질문하고 토론하는 데에서 우리가 배울 점도 있고 그러니깐요.
(다음 호에 계속)

※위 법문은 1994년 3월 6일 법형제법회에서 설법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나 한마음선원)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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