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1월에 제정된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등에 관한 법률>은 성폭력을 국가가 적극 개입해 예방하고 처벌해야 할 사회적 범죄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러한 법률 제정은 성폭력 피해여성의 증가와 이에 대한 여성들의 끊임없는 대책요구가 만들어 낸 산물이다. 그러나 이러한 법률제정은 여성들의 요구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법률은 국회에서 일정한 정책결정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여러 단계를 거처 마지막으로 국회에서 제정되는 것이다. 여성의 국회참여가 매우 낮은 우리나라 상황에서 여성관련 법률에 대한 제정 및 집행은 거의 남성의 손에 맡겨져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국회에서 여성관련 법률제정에 대한 남성국회의원들의 태도는 그들의 평등의식수준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현재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최연희 국회의원 여기자 강제 성추행 사건’은 그 가해자가 바로 국회의원이자 국가의 주요 법안을 의결하는 법사위원장이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제 1야당인 한나라당의 사무총장이었다는 사실에서 사람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물론 성폭력 가해자에 대해 지위의 경중을 가린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나 이번 사건은 지도자적 위치에 있는 가해자의 가부장적 성문화와 성에 대한 이중적인 편견 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취중(醉中)의 일로 여기면서 가해자에 대한 동정론이 일어나고 있다는데 있다. 열린우리당 의원은 ‘아름다운 꽃 만지고 싶은 것이 순리이며 또한 이번 사건은 당사자에게 소명 기회도 주지 않고 분위기에 휩쓸려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측면이 있다’ 라고 하여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 사회는 남성의 일탈적 성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남성들 간에는 일정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성추행, 성희롱은 그 상황에 따라서는 남성들 사이에서 대수롭지 않은 문제들이다. 특히 술자리에서의 노골적인 성적 행동도 지극히 관대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며 그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남성답지 못한 것으로 여긴다.
이번 사건에서 ‘술에 취해 음식점 주인으로 알고 실수했다’는 그의 변명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여성에 대한 덕녀/악녀라는 이분법적 구분이 여전히 그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일찍이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은 정숙한 여성을 덕녀로 놓고 그렇지 못한 여성들은 악녀로 여기면서 놀이의 상대로 삼았다. 남성중심의 잣대에 의한 여성들의 구분/ 분리는 이번 사건을 통해 더 이상 낡은 과거유물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즉 21세기 평등사회 구현이라는 모토가 무색하게 남성의식 속에 있는 여성에 대한 선택적 보호와 함께 일부여성들에 대한 지나친 비하의식은 너무나 일상적인 것이 되고 있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남성들의 성문화는 성폭력방지를 위한 법적, 제도적 개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폭력범죄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성폭력가해자에 대해서 뉴스의 초점을 두고 있지만 실제로 성폭력 피해 여성의 삶에 대해서는 지나쳐 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제는 성폭력에 대한 예방책과 함께 피해여성의 삶에 가해진 폭력성 그리고 그 휴유증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에 대해 어떠한 대책이 필요한 지에 진지한 성찰이 필요할 때이다. 또한 성폭력 관련 법안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정작 자신들은 성희롱예방교육 조차 제대로 받지 않고 있다는 모순된 상황 속에서 국회의원들의 여성인권과 여성평등, 지도자의 도덕성에 대한 철저한 교육이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해 지고 있다.
<법구경>에서 이르기를 ‘인간이여, 이를 알아라. 절제할 줄 모르는 것이 죄악이니 탐욕과 바르지 못함(不正)으로 말미암아 그대 자신으로 하여금 기나긴 고통을 받지 않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