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현상 마음이 만들어낸 것
한마음 알면 참 성품도 알게 돼
<선가귀감>에서는 처음부터 선(禪)이 근본이 되고 교(敎)가 방편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선은 근본이어서 상근기가 취할 만하고, 교는 방편이어서 중하근기들이 취할 만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선은 근본이고 교는 곁가지라는 뜻일까? 그래서 교는 무시하고 선만 떠받들어야 한다는 것일까?
아니다. 선은 부처님의 마음을 뜻하고 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뜻한다고 했으니, 선과 교를 완전히 분리해서는 안 된다. 부처님의 마음을 바탕으로 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이 전해지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으므로 그것을 길잡이 삼아 부처님의 마음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마음은 ‘허공에 떠있는 달’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은 하늘에 떠 있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 함은 그런 뜻을 비유하는 말이다. <선가귀감> 8장에서는 이런 내용을 말한다.
敎門惟傳一心法 禪門惟傳見性法
교(敎) 쪽에서 공부하는 길은 오직 한마음에 관한 법을 전할 뿐이고
선(禪) 쪽에서 공부하는 길은 오직 참 성품을 보는 법을 전할 뿐이다.
여기서는 먼저 ‘한마음’과 ‘참 성품’의 개념을 알아야겠다. 한마음이란 무엇인가? <화엄경>에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하여 “모든 현상은 오로지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한다. 이 말처럼 ‘한마음’이란 ‘모든 현상의 근원에 있는 마음’을 뜻한다.
눈으로 드러나는 현상에는 많은 차별이 있을지라도 그 근원에 있는 바탕인 한마음은 조금도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참 성품’이란 한마음의 바탕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빛’을 말한다. 서산 스님은 이것을 거울에 비유해 설명하기를 “마음은 거울의 바탕과 같고 성품은 거울의 빛과 같다. 참 성품은 본디 맑고 깨끗한 것이므로 이 성품만 툭 트인다면 그 자리에서 곧바로 본디 마음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의 요지는 ‘근본 뜻을 아는 한 생각’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서산 스님은 게송으로 말한다.
重重山與水 淸白舊家風
겹겹으로 둘러싸인 산과 물이여
깨끗하고 맑고 맑은 옛집의 풍류.
서산 스님은 다시 “마음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으니 ‘본바탕의 근원에 있는 마음(本源心)’과 ‘나타난 형상에 끄달리는 무명의 마음(無明取相心)’이 있다. 성품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으니 ‘본디 법으로서 있는 성품(本法性)’과 ‘성(性)과 상(相)으로써 상대적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성품(性相相對性)’이 있다.”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본바탕의 근원에 있는 마음’과 ‘본디 법으로서 있는 성품’은 곧 부처님의 자리이다. 이 내용을 합쳐 다른 말로 바꾼다면 ‘공적영지(空寂靈知)’이다. ‘공적(空寂)’이란 모든 시비와 분별이 끊어진 ‘고요한 마음자리’이고, ‘영지(靈知)’란 그러한 자리에서 드러나는 ‘태양처럼 빛나는 지혜’이다. 고요한 마음자리가 있어야 빛나는 지혜가 드러나고, 빛나는 지혜가 드러날 때 고요한 마음자리가 있게 된다. 고요한 마음자리가 빛나는 지혜요, 빛나는 지혜가 고요한 마음자리이다.
이것을 서산 스님께서는 “마음은 거울의 바탕과 같고, 성품은 거울의 빛과 같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따라서 ‘본바탕의 근원에 있는 마음’을 알게 되면 ‘본디 법으로서 있게 되는 성품’을 저절로 알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한마음’을 제대로 알면 바로 그 자리에서 ‘참 성품’도 알 수 있다. 교(敎)를 제대로 알기만 하면 선(禪)도 제대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나타난 형상에 끄달리는 무명의 마음’과 ‘성(性)과 상(相)의 상대적 개념으로써 이해할 수 있는 성품’은 곧 중생의 자리이다. 부처님의 자리에서 근본마음만 알면 공적영지(空寂靈知)로서 교(敎)도 선(禪)과 다를 바가 없게 되지만, 중생의 자리에서는 근본성품을 알지 못하면 선(禪)도 교(敎)의 자취가 되고 만다.
이런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선과 교가 서로 옳다고 다투기만 한다면 선을 공부하는 사람이나 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어리석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눈앞에 보이는 이름이나 형상에 집착하고 알음알이만 내어 혹 얕은 것도 깊다 주장하고 혹 깊은 것도 얕다고 우기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모두 공부하는데 큰 병통이 됨으로 여기에서 그 시비를 가려낸다. <선가귀감> 4장에서는 말한다.
온갖 이름을 억지로 갖다 붙여서 혹 마음이라 하고
혹 부처님이라 하며 혹 중생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름에 얽매여 알음알이를 내서는 안 된다.
그 밑바탕에서는 모든 것이 옳지만
한 생각 움직이면 근본 뜻에 어긋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