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 버리고 ‘참마음’ 얻으면 편안하고 지혜로운 삶 누려
마음의 본뜻을 안 사람은 저잣거리의 이야기조차 훌륭한 법담이 될 뿐만 아니라, 나무 위에서 지저귀는 제비 소리까지도 실상(實相)의 이치에 통달한 소리로 듣는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늘 바른 법을 말하고, 땔나무 하는 아이나 소치는 늙은이가 다 깊은 도리를 논하며, 소 울음 닭 우는 소리 하나까지도 다 빠짐없이 부처님의 법을 전한다는 이치를 알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 <선가귀감> 7장에서는 말한다.
吾有一言 絶慮忘緣
내가 한 마디 일러줄 말이 있으니
헛된 생각과 인연을 끊을지어다.
兀然無事坐 春來草自靑
우뚝 앉아 있는 모습 더 할 일이 없으므로
봄이 옴에 어린 풀잎 파릇파릇 돋는구나.
이는 남악나찬(南嶽懶瓚) 선사가 헛된 생각과 인연들을 끊고 한가롭게 사는 도인들을 표현한 글이다. 여기서 ‘헛된 생각과 인연을 끊으라는 것’은 ‘참마음을 얻으라는 것’이니 이른바 한가롭게 사는 도인이 되라는 말이다. ‘헛된 생각’이란 중생들이 허상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대상경계의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헛된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 경계에 집착하여 쓸데없이 많은 생각들을 일으켜서 시비하고 분별하는 것들이 중생들의 삶이다. 이 생각들이 또 쓸데없는 인연을 만들어 중생들은 괴로운 업만 키워 나가게 된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세속의 헛된 생각과 쓸데없는 인연을 끊어야 한다. 헛된 생각과 쓸데없는 인연이 끊어지면 그 자리에서 바로 부처님의 세상이 드러난다. 부처님의 향기로운 삶을 사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고 더 이상 해야 할 일이 없는 한가로운 도인이 된다.
여기서 더 이상 해야 할 일이 없다고 하여, ‘할 일이 없다고 하는 것’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지낸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면 크게 잘못된 일이다. 이 도인은 부처님의 삶을 살고 있으므로 그 삶 자체가 아름답다. 또한 그 사람의 마음은 고요하고 편안하다. 고요하고 편안한 삶은 지혜로운 삶이므로 그 삶 자체에서 모든 사람의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이것이 부처님의 큰 자비이다.
억지로 만든 자비가 아니고 그 사람의 아름다운 삶에서 저절로 넘쳐흐르는 큰 자비이다. 중생들은 그런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뻐하고 행복해 한다. 오고 가며 앉고 눕는 그 사람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이 아름다워 그것 자체로서 모든 중생들의 삶을 바꾸어 준다. 이것이 부처님이 하시는 중생제도이다. 하는 일 없이 모든 중생의 삶을 바꾸어줄 수 있다. (無爲而作) 이런 삶을 절학무위(絶學無爲)라고 하여 <증도가> 첫머리에도 이런 도인의 한가로운 삶을 이야기한다.
絶學無爲閑道人 不除妄想不求眞
더 배울 것이 없고 더 할 일이 없이 한가롭게 사는 사람은
망상이라 해도 애써 없애지를 않고
참됨이라 해도 애써 구하지를 않는다.
이 표현은 깨달음을 얻은 수행자의 자리에서 하는 말이다. ‘더 배울 것이 없다는 것은’ 부처님의 아름다운 삶인 지계(持戒), 그 아름다운 삶을 나타낼 수 있는 고요한 마음인 선정(禪定), 고요한 마음과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내는 지혜(智慧)에 대한 수행을 다 마쳐서 다시 이것에 대해 더 배워야 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더 배울 것이 있다면 이것은 ‘배움이 끊어진 자리(絶學)’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 배울 것이 없는 이 자리를 우리는 깨달음이라고 한다. ‘더 할 일이 없다는 것(無爲)’은 참마음 자리를 깨쳐 더 이상 이것에 대해 공부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더 배울 것이 없고 더 공부할 일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한가로운 도인이 된다. 선종에서 ‘조사’라고 이야기하고 ‘선지식’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무엇을 망상이라 해도 애써 없애지를 않고, 무엇을 참됨이라 해도 애써 구하지를 않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선가귀감>에서는 “우뚝 앉아 있는 모습 더 할 일이 없으므로 봄이 옴에 어린 풀잎 파릇파릇 돋는구나”라고 말하고 있다.
서산 스님은 말한다.
‘모든 생각과 인연을 끊으라는 것’은 ‘참마음을 얻으라는 것’이니 이른바 한가롭게 사는 도인을 말한다. 아! 그 사람됨이 본디 인연이 없고 본래 할 일이 없으므로 배고프면 밥을 먹고 피곤하면 잠을 자는구나. 푸른 산 푸른 물결 속을 마음대로 오고가며, 어촌이든 술을 파는 주막이든 걸림 없이 드나드는구나. 흘러가는 세월을 조금도 알지 못하지만 봄이 옴에 예전처럼 어린 풀잎들이 새록새록 파랗구나. 또 서산 스님은 이 장에서는 따로 ‘한 생각에 마음의 빛을 돌이킨 사람’ 에 대하여 찬탄한다면서 게송으로 말한다.
將謂無人 賴有一個.
아무도 없는가 했는데
한 사람이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