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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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파타야(破墮也) 선사/원철 스님(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주장자와 할로 번뇌망상 사정없이 날려버린 파조타 선사 ‘두들겨 패다’란 이름 얻어

할로써 죽이고 방으로써 살린다고 했다. 무엇을 죽이는가? 물론 번뇌망상이다. 무엇을 살리는가? 반야지혜이다. 죽일 건 죽이고 살릴 건 살려야 한다.
물론 죽이는 게 살리는 것이 되고 살리는 것이 죽이는 것이 된다. 그래서 임제선사는 할로써 죽일 것을 죽였고 덕산선사는 몽둥이로 살릴 것을 살렸다.
선가에는 할과 방이 별명 정도가 아니라 ‘두들겨 패는 것’이 진짜 이름이 되어버린 경우도 있다. 파조타(破 墮)선사가 그 주인공이다. ‘조왕신을 패서 쓰러뜨리다’라는 의미인데 가운데 ‘조( )’자를 빼면 파타(破墮)가 된다. 어디 조왕신 뿐이겠는가? 일체의 모든 상(相)을 다 부수어버린다. 방과 할을 동시에 자유자재로 구사한 경우라 하겠다.
파조타 선사가 숭악(崇嶽)에 있을 때다. 산중턱에 재각(齋閣)이 있었는데 영험이 많다고 주변은 물론 멀리까지 소문이 퍼졌다. 당연히 공양물을 올리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재물을 올리기 위하여 소 돼지 등 산 목숨을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에 선사는 가축들이 도살당하면서 내는 울음소리를 듣다못해 어느 날 시자 몇 명을 데리고 주장자를 들고 그 안으로 들어가 조왕단에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그대는 본래 진흙과 기왓장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것일 뿐인데 영험은 무슨 영험이며, 또 그 영험이라는 것이 어디로부터 왔는가?”
그리고는 말이 끝나자마자 다짜고짜 주장자로 두들겨 패면서 할을 했다.
“파야(破也)! 타야(墮也)!(깨졌다! 무너졌다!)”
조왕단이 바로 무너지면서 푸른 옷에 높은 관을 쓴 사람이 나타나서 말했다.
“내가 이 재각의 조왕신인데 이제 선사의 무상법문을 듣고 해탈을 얻었습니다.”
말하고 나서 조왕신은 두 번 절을 하고는 사라졌다. 이 광경을 문 밖에서 보고 있던? 시자들이 말했다.
“저희들은 오랫동안 좌우에서 모셔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는데 조왕신에게 무슨 법을 설하셨길래 해탈을 얻었습니까?”
“무슨 별다른 법이 있겠느냐? 다만 그에게 ‘진흙과 기왓장이 합쳐져 만들어진 것일 뿐인데 그 영험이 어디에서 나왔겠는가?’ 라고 했을 뿐이다.”
이는 연기법을 조왕신의 근기에 맞게 설명한 것이다. 그런데 시자들은 영험담으로만 듣고서 히히덕거릴 뿐이었다. 보다 못한 선사가 대갈일성을 하였다.
“이놈들아! 너희들은 법문을 듣고도 왜 절을 하지 않는거야.”
고함소리에 놀라 엉거주춤 일어나 할 수 없이 절을 하는데 선사가 주장자로 사정없이 머리통을 내리치면서 할을 했다.
“파야(破也)! 타야(墮也)!(깨졌다! 무너졌다!)”
이 한마디에 모두가 그 자리에서 깨침을 얻었다. 머리에 혹 몇 개 돋은 게 대수랴. 파조타선사가 파타야 선사로 이름이 바뀌는 순간이다. 조왕신뿐만 아니라 제자들의 안목까지 열어준 까닭이다.
‘파야 타야’를 줄이면 ‘파타야’가 된다. 동남아 불교성지 순례를 가면 십중팔구 들리는 관광지가 파타야(Pattaya)이다. 관광(觀光)은 풍광뿐만 지혜의 빛도 함께 볼 수 있어야 한다. 우연의 일치이고 아전인수격 해석이겠지만 파타야는 번뇌망상을 부수어 날려버리는 곳이라는 의미로 봐도 좋을 것 같다.
파타야에서 놀이에만 빠지지 않고 파조타 선사를 떠올릴 수 있으면 조계종 종도로서의 기본자격은 갖추었다고 하겠다. 그리고 가보지 못한 사람들은 진짜 파조타 선사가 생각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가봐야 할 인연있는 이름자리라고 하겠다. 하긴 처처(處處)가 법당이라고 했으니까.
2006-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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