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 종합 > 기사보기
은혜를 갚는 마음 끝간 데 없이 계속돼야
근본에다 그냥 놓고 돌아가는 것이 그대로 法

(지난 호에 이어서)
▲사회자: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스님: 예. 괜찮습니다.

▲질문자1: 질문을 드리기 전에 스님께서 미리 아시고 해답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도 오늘 여러 법형제님들을 대신해서 스님께 질문드릴 수 있는 행운을 가진 데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대대로 불교를 종교로 믿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불교를 숭상하면서 자라 왔습니다. 전에 근무하던 직장이 현재는 청주에 소재하고 있는데, 직장을 그만두고도 10년 동안 법당에 다녔습니다. 3년 전부터 본원에 인연이 돼서 스님의 가르침을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에 천도재를 이곳에서 올렸고, 또 대학에 들어가는 아이가 있어서 백일기도 발원을 올려 전기 대학에 합격을 했습니다. 모두 스님의 해은(海恩)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천도재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여러 신도님들이 계십니다. 천도재를 올렸는데도 촛불재니, 또는 조상을 위한 백종(百種)이니 이러한 여러 행사가 있는데, 이 행사에 왜 계속 참여해야 하는지, 또는 참여해야 하는 그 의미는 무엇인지 그것이 의문이 됩니다. 스님의 가르침을 듣고자 합니다.
▲스님: 우리가 왜 밥을 먹고 또 밥을 먹습니까? 아침 먹었으면 됐지 점심 저녁까지 먹고, 그 이튿날은 또 왜 먹습니까? 보십시오. 아침 쇳송에 부모의 은혜를 갚고, 국왕의 은혜를 갚고, 만물의 은혜를 갚고 모든 생물의 은혜를 다 갚으라고 했습니다. 그랬듯이 낳아서 길러서 이렇게 성장시켜 놓은 부모입니다. 그러면은 그 부모가 낳아서 기르느라고, 이 도리를 잘 배우지도 못한 채 그냥 허덕지덕 허덕지덕 하다가 돌아가셨다 이겁니다. 이 도리를 알고 돌아가신 분들이 지금 별로 없습니다.
그러면 천도를 시킨다는 것은 조상들이 다시 짐승으로 태어나지 말고, 현재 어떠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무죄 석방이 되게끔 하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개같이 살았으면 개로 태어나야 하고 독사같이 살았으면 독사로 태어나야 할 텐데, 그것을 무마시켜서 바로 다시금 인도환생하라고 천도를 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 뒤에는 또 뭐가 따르느냐? 인간으로 태어나서 이 도리를 만나서 공부하면서 부처님과 한자리를 하시게 해 드리기 위한, 그 은혜를 갚고 묵은 빚을 갚는 그런 것이 즉, 재(齋)라고 봅니다.
그러면 예를 들어 어린애를 낳아 놓기만 하면 다 사회인이 됩니까? 길러서 가르치고, 가르쳐서 다 정상으로 만들어 놔야만이 그게 어른입니다, 이제. 그럴 때까지는 해야죠. 그러다 보면 또 끝이 나요. 그러곤 또 자식이 부모를 위해서 했던 것이 또 부모가 돼서 끝이 나고, 자식들이 또 그렇게 해야 하고, 이렇단 말입니다. 이것이 이름해서 효도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러면 예를 들어서 할머니, 할아버지, 증조부, 증조모는 천도를 시켰는데 왜 그러냐? 윗대 조상들을 우리 아버지가 그렇게 천도를 시켰다면 천도된 분들은 그만둬야 되지 않겠느냐 이렇게 하지만, 이 세상에 다시 나와서 깨우쳐서 부처님 한자리를 했다 할지라도, 천도가 되기 위해서 아둥바둥하는 시기가 있고, 위에 올라가 앉아서 ‘아! 저놈은 참 착하구나.’ 하고 내려다보는 시기가 있다 이겁니다. 그럼 뭐, 내 부모만 부모입니까? 정말 부처님 자리 한자리를 했다 할 때는 그렇게 공을 들이고 촛불재를 하고, 백종을 지내고, 사월초파일에도 등 달고 다 이렇게 조상들을 위하는 게 자기를 위하는 겁니다, 결국은.
그렇게 해서 높은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높은 자리에 가면 하나로 돌아가니까, 전부 일체제불과 더불어 일체 중생이 하나로 돌아가기 때문에 네 자식 내 자식 따질 수가 없고, 네 부모 내 부모 따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 자리에 있다면…, 지금 높은 판사로 됐다면, 내 자식들만 자식이라고 나쁜 짓을 해도 그냥 무죄로 해 주고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듯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기가 있고, 아래서 허덕거리고 올라가려고 애를 쓰는 시기가 있다, 그럴 때는 우리가 지금 천도재를 하는 것이 ‘우리 부모가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지 말고 인도환생하여 태어나게 해 주소서.’ 하는 겁니다. 또 부모가 인도환생이 된 후에도 이런 법을 알아서 정말 한자리 하도록 원하는 그 자식들의 은혜를 갚는 마음이 아주 끝간 데 없이 계속돼야 됩니다. 그러니 그런 것을 우리가 생각해 보면, 밥 한 번 먹고는 어떻게 밥을 또 안 먹습니까? 지속적으로 살아야 하고, 지속적으로 배워야 하고, 지속적으로 그 뜻을 알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질문자1: 잘 알겠습니다. 저희들이 불법을 공부하는 데 한 가지 야심이 있다면 그것은 견성성불인 걸로 생각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스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따르는 저희들의 욕구도 모두 그와 같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스님을 따라서 배우는 저희들의 공부 목적이 결국 스님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기도 합니다. 스님께서 인연을 살펴보시기에, 저희들 가운데 장차 스님의 경지에 이를 제자가 나올 수 있을 것인지 감히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대중 웃음)
▲스님: 네, 그 말씀 잘 하셨어요. 우린 죽으나 사나 같은 도둑놈이듯이, 허허허…, 다 한자리로 항상 도반이 될 겁니다. 또 우리 여기 앉아 계신 분들이 빠르고 더딜 뿐이지, 다 됩니다. 그 뜻을 아십시오. 정말입니다. 이건 거짓이 아닙니다. 이제 됐습니까? 하하하….
▲질문자1: 감사합니다. 또 한 가지, 참회에 대해서 한 말씀 여쭙겠습니다. 원효 선사의 경전 해설 『대승육정참회론』에 이르기를 “모든 죄는 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죄업은 안에도 밖에도 없으며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이 말씀의 심오한 뜻은 알 수 없지만 저희들이 얼핏 느끼기에는 그러면 ‘죄업이란 없다’ 그런 말로 이해가 됩니다. 만약에 죄업이 실재하지 않는다면 참회라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스님의 가르침을 듣고자 합니다.
▲스님: 그것은 한 경지에 이르렀을 때에 모든 게 붙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그냥 여여하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여러분 중에서 대답할 분 안 계십니까? “모든 죄업이 붙을 것도 없고, 안에도 없고 밖에도 없고 중간에도 없다.” 이런 말씀을 하신 까닭이 무엇이냐는 얘깁니다. 죄업이 통틀어서 하나도 붙을 자리가 없다 하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래야 얼른 한자리 하시죠?

▲신도1: (대중 가운데서) 찰나로 돌아가니까 없죠.
▲스님: 예? 하하하…. ‘찰나로 돌아가기 때문에 없다.’ 이런 소리를 ‘둘 아니게 공(空)해서 돌아가니까 그렇다.’고 그냥 이렇게 말씀하시면 다 첨보돼서 돌아가죠. 그러니까 이 마음이란 건 체가 없기 때문에 그대로 붙을 자리가 없죠. 내가 항상 얘기하죠.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뉴욕에서 어떤 사람이 병을 20년을 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얘길 듣고 여기 왔어요. 여기 와서 앉아서 “병이 그렇게 있는데….” 그러기에 내가 그냥 퍼뜩 그런 말을 해 버렸어요. “병 붙을 자리가 어디 있길래, 병 내놔 봐! 고쳐 줄게.” 이랬거든요. 그랬더니만 입을 딱 벌리고 생각을 하더니 그냥 나갔어요. 나가서 가는 도중에 그냥 나아 버렸어요. 그 사람도 그러한 병 때문에 10년, 20년 그냥 공부를 해 온 거죠. 좌선도 하고 뭐 별짓 다 했답니다. 그래도 그렇게 배워 왔기 때문에 말뜻을 퍼뜩 알아들은 겁니다.
아까 내가 얘기했죠? 자세히 가르쳐 드리느라고 또 말하는 겁니다. 병 증세를 병원에서 아무리 뭐라고 말을 해도 그것은 이름이다, 삼재가 들었다고 하는 것도 이름이다, 가지 못한다 간다, 이사 가는 방향을 봐야 한다 하는 것도 이 모두가 관습이다. 그러니까 안에도 없고 바깥에도 없다고 하는 것은,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니고 중간도 아니니까 그대로 자재해서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죠. 즉 말하자면, 인간은 나쁜 것도 알고 좋은 것도 아니까 그걸 가려서 생각하고 거기에다 그냥 놓고 돌아가는 것이 그대로 법이죠. 내 마음 내키는 대로 그냥 판단을 해서 놨을 때 그대로 법이에요. 그러니까 없지요. 하하하…. 붙을 자리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까 없는 까닭은 무엇인가? 바로 찰나찰나 나투어서, 바뀌어서 돌아가는 까닭이다. 어떤 거 할 때 내가 했다고 하며, 어떤 거 붙었을 때 내가 나한테 붙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이겁니다. 누구나가 다 이렇게 자세히 가르쳐 드리지는 못합니다. 허허허…. (대중 웃음) 삼세를 모르고는 이렇게 못합니다.
▲질문자1: 또 한 가지 있습니다. 선원에 나오기 전인데, 불교를 숭상하다 보니까 여러 스님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스님 한 분께서 불법의 참뜻을 일컬어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자주 말씀하시는 걸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짐작으로는 말을 여읜 경지를 나타내기 위한 방편쯤으로 생각이 되는데, 지금도 가끔씩 그 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다시 헤아려 보곤 합니다. 판치생모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 스님의 가르침을 듣고자 합니다.
▲스님: 간단합니다. 널판 같은 이빨에 털이 난 것은 무슨 까닭이냐고 물었을 겁니다. 판때기, 즉 말하자면 ‘이 널판지같이 생긴 이빨에 털 난 까닭이 무엇인가?’ 하고 옛날에 그저 낚싯밥으로 던진 얘깁니다, 얼른 쉽게 말해서. 그럼 빨리 알아들으시죠? 널 같은 이빨에 털 난 것은 무슨 까닭이냐? 그러면 지금, 이빨에 털 난 것을 말하는 건데, 어디 있는 것이 귀신 방귀씨냐고 물은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어떠한 고난이 있고 어떠한 괴로움이 있다 해서 그 괴로운 마음을 내놔서 보일 수 있으시겠습니까? 달마 대사가 혜가 스님에게 “네 편안치 않은 마음을 내놔라. 그러면 내가 고쳐 줄 테니까.” 이랬듯이, 뉴욕 사람이 왔을 때 “아, 병을 내놔 봐라. 내 고쳐 줄게.” 했듯이. 그러면 깨달은 사람은 그 말대답을 할 것이고, 깨닫지 못한 사람은 그 말대답을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깨달았나 못 깨달았나 보기 위한 방편이지요. 얼른 쉽게 말해서 박이 익었나 안 익었나 하고 바늘로 콕콕 찔러 보는 거나 똑같습니다.
만약에 내가 그렇게 물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을 하시렵니까? 일러 주고 대답을 바라는 사람이 어딨나 하겠지만요. 하하하…. 어떻게 간단하게, 묘하게 대답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신도2: (대중 가운데서) 이렇게 대답하렵니다. (손뼉 치는 소리)
▲스님: 허허허…. 이거 봐! 이거는 참고적으로 들어야 돼. 털이 난 거를 알았다 하고 봤다 할지라도 이거를 기르려면, 허! 몇 해 걸려. 하하하…. 그런데 이거를 기르려면 말이다, 그 판치생모에서 그 털 난 것을 더 먹여도 안 되고 덜 먹여도 안 되고, 그 털을 털한테다가 먹일 때 아주 조심조심해서 그대로, 나온 자리에다가 그대로, 지금 놓으라고 하듯, 더 배불리 먹여도 아니 되고, 덜 먹여도 아니 되고 잘 먹여서 둘 아니게 나투는 그 도리를 알기까지 잘 키워야 돼. 알았지? 하하하….

▲질문자1: 여러 가지 가르침 주신 거 감사합니다. 끝으로 오늘 스님께 질문을 드릴 수 있는 영광된 기회를 빌어서, 이미 오늘 법문 중에 해답이 다 나왔지만 저의 신상문제를 감히 말씀드릴까 합니다. 선원에 나오기 전에 제가 몸이 좀 불편해서, 그 당시 스님 친견을 하고 가르침을 받고 또 병원 치료도 받고 해서 거의 완치가 됐었는데, 한 2년이 지나고 나서 그 증세가 다시 나타납니다. 그래서 제가 바른 공부를 못해 가지고 그런 걸로 생각을 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올바른 가르침을 받을 수가 있을지, 미련하다 보니까 해답을 다 주셨는데도 해답을 좀 더 얻고 싶습니다. 스님, 가르침 주십시오.
▲스님: 집을 지을 때 기초를 하죠? 그럴 때에 자갈하고 모래하고 양회를 쳐 넣고는 그냥 들이다지죠? 첫번부터 기초가 잘돼야 어느 집이든지 쉽게 헐어지지 않습니다. 너그럽고 지혜있게 생각을 해야 됩니다. 아까도 얘기했듯이 만약에 병 붙을 자리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또 그 안의 모든 것이 한마음으로 돼서 둘이 아닌 도리를 이 속에서 모두 알고 있다 할지라도, 지금 현재의 사람이 그 도리를 완전히 모를 때, 집을 지을 때 기초하듯 다지고 또 다집니다. 이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다시 병이 일어나면 어떠한 마음을 가질까 하고 테스트를 하는 도리를 모르십니까? 병이 아니라고 하고 체험을 하는 그런 도리가 있는가 하면요, ‘병에 걸릴 수가 없다. 병은 재료고 나를 가르치기 위해 바로 테스트하는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졌을 때에 ‘이건 이리 찔러 보고 저리 찔러 봐도 뭐 그냥 하나도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데….’ 하고 물러서는 겁니다.
채찍질이라는 것은, 나를 내가 발견했을 땐 내 스승을 내가 얻는 것입니다. 즉 말하자면 내 스승을 내가 만나는 것입니다. 나를 이끌어 가는 스승을 발견해서 스승한테 채찍을 맞는 겁니다. 맞으면서 공부하는 겁니다, 지금. 그럴 때는 그런 경고도 나올 뿐만 아니라 못된 짓을 하라고 하기도 합니다. 하하하…. 그냥 누(累)가 되게, 저기 나가서 그저 아무 말이나 막 하라고 그렇게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그냥 무조건 믿기만 하고 그냥 함부로 해 버리나, 그렇지 않으면 믿는 반면에 ‘누가 되니까 그렇게 할 수 없잖아.’ 하고 다시금 돌려 놓는가, 이걸 보기 위해서, 지혜로움을 가르치기 위해서, 나툼을 가르치기 위해서 모든 거를 다시금 재출발을 합니다. 재다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집 기초하는 것과 같다 이겁니다. 기초를 어줍잖게 해 놓으면 벽에 금이 가고 전부 잘못돼 가지고 나중에는 기와 인것도 그냥 잘못돼 가지고 씰그러지고 일그러지니까 전체 비가 새고 그럽니다. 그와 똑같은 얘기죠.
그러니까 솔직하게 얘기해서, 내가 병이 안 나는 게 아닙니다. 몸을 가졌는데 어찌 아프지 않으리까? 그런데 때에 따라서는 아프다 하면 콧방귀 뀝니다. 하하하…. ‘네가 모든 사람들한테 그렇게 말하면서 네 몸이 아플 땐 어떻게 하겠는가?’ 할 때, ‘허, 참! 맘대로 해라, 네 몸 네가 끌고 다니는데 누가 뭐라 하겠니? 네 몸을 네가 끌고 다니는 거니까 심부름을 시킬만 하면 그냥 끌고 가고, 이제 이런 거는 심부름도 못하겠구나 할 때는 옷을 벗기든지 맘대로 해라. 입히는 것도 벗기는 것도 너 알아서 해야지.’ 그러고는 또 한 번 생각합니다. ‘내가 가겠다고, 옷을 벗겠다고 생각했을 때에 벗겨야지, 너 그렇잖으면 혼나!’ 하하하…. (대중 웃음)
혼낸다는 거는 이렇게 상대를 두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없으니까 그 얘기를 할 수 있는 겁니다. 내가 없으니까 나를 없애고 그 말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나를 두고서 나라고 하면서 그렇게 하면 경계가 되고, 상대가 되고 이러니까 안 되죠, 그건. 그래서 마음이라는 것이 원자라면 원자에서 입자가, 분자가 많이 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자라서 완성이 된다면 그것이 또 원자가 되고요. 마음이 체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부피가 늘어나도 늘어남이 없고, 또 많이 넣어도 두드러짐이 없다. 그러면서도 그냥 자유자재하게 내가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여건을 쥐고 있다는 결론이죠. 여러분이 마음이 밝으면 태양계도 여러분이지 딴 게 아닙니다.
▲질문자1: 여러 가르침 감사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스님: 그래서 지금도 그 병이 되왔다고 생각하십니까? (대중 웃음) 도졌다고 생각하십니까?
▲질문자1: 지금 스님 가르침을 받고 그런 생각이 없어야 되겠는데도, (대중 웃음) 그게 지금 안됩니다.
▲스님: 그 왜 그렇게 질깃질깃하게 그걸 떠나질 못합니까?
▲질문자1: 이제 이 자리를 떠나면서 다 떨쳐 버리겠습니다.
▲스님: 허허, 떨쳐 버리는 게 아니라요, 용광로에다 그거를 그냥 넣으면 그것이 그냥 재생돼 버려요. 그러면 이 세상에 다시 출현이 될 때에 아주 건강한 모습으로 나오는 거죠. 즉 말하자면 아까도 과거고 조금 아까도 과거니까 말입니다. 이 자리에서 떠나도 지금 있었던 자리가 과거 자리가 되죠. 그러니까 과거 자리, 현재 자리가 따로 없이 그냥 자재할 수 있는 그런 마음, 넉넉한 마음을 가지세요.
▲질문자1: 감사합니다.
▲사회자: 오늘 법문은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위 법문은 1993년 2월 7일 법형제법회에서 설법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나 한마음선원)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06-02-15
 
 
   
   
2024. 11.22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