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2월이 되면 ‘발렌타인 데이(St. Valentine’s Day)’ 선물을 권하는 광고가 곳곳에 넘쳐난다. 우리나라에서 이 날을 요란스럽게 맞이하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서양 것이면 좋은 것’이라는 시대 풍조에다, 일년에 몇 차례 ‘무슨 무슨 데이 특수(特需)’를 노리는 사업가들의 판촉 활동 때문에 청소년들에게는 짧은 기간에 ‘가장 중요한 명절’이 되어 버렸다.
대개 ‘얄팍한 상혼(商魂)’을 거론하며 이런 풍조의 책임을 상인들에게 떠넘기지만, ‘이익이 생기는 일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본주의의 기본 속성을 이해한다면 상인들만 비판할 수도 없다.
되돌아보면, 내 자신도 청소년 관련 일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발렌타인 데이와 화이트 데이 때문에 요란스러운 광경을 보면 “저런 미친 짓”이라며 욕을 하기만 했다. 그러나 청소년 사업에 종사하게 되면서 ‘청소년의 시각에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한 때의 문화 현상’으로 편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동안 청소년 관련 단체나 언론 등에서 “초콜릿 대신 책을 선물하자”, “칠석(음력 7월 7일)을 청소년 축제의 날로 하자” 등등의 제안을 내놓고 도심에서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지만, TV 뉴스에 비치는 정도의 일회성 홍보 효과에 머물고 실제 효과를 거두며 지속된 적은 없다.
‘발렌타인 데이’나 ‘화이트 데이’ 같은 날에 대한 어른들의 시각은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에서 비슷한 것 같다.
2월 1일 태국통신(Thai News Agency TNA) 보도에 따르면, 태국 종교성의 프리챠 칸티야(Preecha Kanthiya) 국장이 “마카 부차 데이(Makha Bucha Day)에 전국의 사찰에서 학생들이 불교 수행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해, 청소년들 사이에서 주류문화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발렌타인 데이로부터 그들의 관심을 돌리게 하라”고 전국의 학교에 요청하였다고 한다.
이런 방침에 따라 종교성에서는 “2월 13일에서 15일 사이에 학생들이 스님의 법문을 듣게 하는 등의 종교 활동에 참여하도록 지역 내 학교와 협력하라”고 전국의 문화 담당 공무원들에 요청했다.
마카 부차 데이는 세존께서 제자들에게 ‘근본 가르침(Ovadha Patimakkha)’을 설하신 날을 기념하는 태국 불교의 명절로, 태국 역법으로 음력 3월 보름날에 열리는데, 올해는 이 날이 발렌타인 데이 하루 전인 2월 13일이다.
태국 종교성은 이 정책을 통해 발렌타인 데이에 대한 젊은 세대의 열광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물론 태국 정부의 이런 정책이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쉽게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런 시도를 한국 불교계에서도 벤치마킹(benchmarking)해볼 만 하지 않을까? 태국의 정책이 성공을 거둔다고 해도 그들의 현실이 우리와 크게 다르니 동일한 방식을 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방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통문화를 청소년들에게 심어주고, 이를 통해 인성을 계발하려는 노력 그 자체에 있다.
생각해보자. 우리는 그동안 “서양 문물에 무분별하게 물들었다”며 젊은이들을 탓하거나 아예 눈길도 주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진지한 반성이 필요하다.
“요즘 아이들은 안 된다”며 미리 포기하지 말자. 심각한 고민을 한다면 ‘우리의 답’이 나온다. 그들을 포기하거나 방치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마당을 펼쳐주고 마음껏 젊음을 발산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벤치마킹은 기업 경영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불법(佛法)의 가르침으로 청소년들의 마음을 풍성하게 하여, 그들이 도덕적 · 영적(靈的)으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프리챠 칸티야 국장의 이 말은 우리에게도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