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으면 화장을 하라. 그리고 나의 몸이 많은 나라에 머물기를 바란다’. 그의 유언에 따라 유해는 49재를 마치고 한국을 포함 세계 여러 나라에 분산 안치될 예정이다. 마치 붓다의 진신 사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한국은 우리 시대 가장 뛰어난 예술가 중 한명을 만들어냈다. 백남준은 한국이 세계에 준 선물이다. 그는 세상을 보는 새로운 방법을 알려주었다’ -존 핸하르트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의 평가는 적확하고 타당하다.
백남준은 비디오아트라는 새로운 예술 영역을 창조했다. 새로운 예술을 창조한 것은 새로운 국가를 건국하는 것에 비할 바 아니다. 새로운 종교를 창출하는 것만큼 인류사의 획기적인 사건이다. 역사상 수많은 천재들이 명멸했지만 예술의 장르는 겨우 손꼽을 정도다. 백남준의 위대성은 앞으로 계속 연구되고 확장될 것이다.
백남준 예술에 동원되는 도구는 첨단 기기들이다. 그러나 그가 구현하고자하는 정신세계는 고전적이고 불교적이다. 현대라는 의자에 걸터앉아 과거와 미래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이 백남준의 예술이다. 첨단 미래를 읽되 교만하지 않고 인간관계와 우정을 존중하되 혁신과 도전을 사랑했다.
돌발성·유머·신선한 발상과 통찰력이 그의 정신이다. 그리고 문명에 대한 비판과 걱정도 멈추지 않았다. 세계 곳곳에 뿌려지는 그의 유해와 그의 정신이 인류 행복에 기여할 것이다. 그의 몸을 낳은 한국, 그의 정신을 만든 불교가 인류를 위해 아름답게 회향되길 서원한다.
그의 명복을 빌면서 한편으로 우울한 생각 또한 떨칠 수 없다. 그가 만약 한국내에서만 활동한 예술가였다면 그의 성과가 여법하게 평가될 수 있었을까. 황우석 사태라는 시대적 고통이 그의 죽음과 오버랩 된다.
인재를 키우고 인재의 역량을 아끼고 후원하는 자비가 은은하게 펼쳐지길 기원한다. 위대한 예술가·성인·학자는 그가 발 디디고 있는 토양이 비옥해야 출현할 수 있다. 백남준의 유언을 승화시키고 그의 천재성을 나누어 담는 지혜에 인색하지 말자. 작은 웅덩이 속 행복에 안주하지 말고 미지(未知)를 향해 맨발로 뛰어나가는 용기에 박수를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