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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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리와 물 없는 목욕/최훈동(한별정신병원장)
관악산 다람쥐를 연상케 하는 발바리들이 여성들을 두려움으로 몰아넣고 있다. 불특정 여성에게 행해지고 시간대도 여성들이 경계하기 힘든 새벽과 대낮에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누가 피해자가 될지 모르는 끔찍한 상황이다. 연쇄 성폭행범들은 한 번 저지른 범행의 재미에 탐닉하지만 성폭행을 당하는 피해 여성의 공포와 분노, 모멸감과 수치감은 급성 스트레스장애로부터 우울증, 심하면 정신분열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본성이 파괴되어버리는 엄청난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사회의 일각에서 보여주는 쾌락과 폭력에 대한 안이한 태도는 끔찍한 범죄자를 발바리라는 애칭으로 표현하는 등 도덕적 불감증을 나타내고 있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성폭행범은 대체로 강간이 아니라고 자신의 행동을 강변하고 성폭행을 반복할수록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게 된다. 도박의 짜릿한 재미에 맛들이면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도박에 중독되는 것처럼 연쇄 성폭행범들은 섹스에 중독된다. 모든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며 성적 환상에 거의 모든 시간을 채운다. 피해 여성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성폭행을 반복적으로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죄책감도 덜 느낀다.
성폭행범은 남성적 우월감에 빠져 범행을 반복하면서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경향이 강하다. 성폭력의 본질은 성적 욕망의 추구에 덧붙여 분노의 표출이다.
이들이 말하는 성폭행의 이유는 일반인이 듣기에도 유치하기 이를 데 없어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복잡한 범인의 정신적 내면이 읽혀진다.
“택시 기사로 일할 때 한 여성 승객이 무시하는 말을 하는데 모멸감을 느껴 원룸까지 쫓아가 성폭행으로 보복하였다”는 대전 발바리의 진술에서 어릴 적 느낀 여성에 대한 증오의 감정과 여성을 지배하고자 하는 마음과 결핍된 애정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를 엿볼 수 있다.
연쇄 성폭행범을 반사회적 인격장애나 성도착증을 가진 정신질환자가 저지르는 것으로 몰기 쉬우나 이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할 위험이 크다. 우리의 내면에 널려 있는 끈질긴 감각적 쾌락, 분노를 폭발시킴으로써 얻게 되는 쾌감은 강렬한 유혹이어서 적절한 자제가 매우 어렵다. 이는 단지 양심이 결핍된 차원의 문제라기보다 끝없이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현대 사회의 병폐이다.
방송 매체와 인터넷 등을 통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성문화에 노출되면서 십대 청소년부터 어느 누구나 성범죄에 발을 디딜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에서 보다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하겠다. 모든 범죄자들을 성격장애로 진단해버리고 말면 자신의 문제를 성찰할 기회를 잃게 된다. 격리시켜야만 하는 남의 일이 되고 만다. 성격과 욕망의 문제는 우리 누구나 가지고 있는 모두의 문제임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은 쉽게 얻기 어렵다. 허지만 여러 사람에게 알려지면 창피해 하는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다. 그것을 치료와 예방에 활용해야 한다.
‘홀로 텅 빈 집에 살면서도 스스로를 삼가는 삶은 훌륭하다.’ <상윳따니까야>의 가르침이다. <숫타니파타>는 부끄러움을 제어장치로 삼고 진리의 수레를 끌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은 자동차의 브레이크 장치와 같다. 항상 성찰하는 가운데 부끄러워하고 겸허하여야 유혹이 넘실거리는 욕망의 충동의 바다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셨다.
<맛지마니까야>에서는 ‘물 없는 목욕’을 강조하신다. 마음을 목욕하지 않으면 욕망과 분노로 오염되어 악취를 풍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념(正念)으로 늘 자신을 살피는 것이 물 없는 목욕이라 하셨다. 거듭되는 연쇄성폭행범의 소식을 접하면서 매사 삼가는 불자의 삶을 기대해 본다.
2006-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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