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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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설 음식/원철 스님(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쇠만두·구름과 달로 만든 음식 등 ‘깊은 뜻’ 담긴 게송으로 수행 독려

엊그제 설을 지냈다. 예나 지금이나 선종 집안은 때때옷이 따로 없기 때문에 회색 그대로다. 물론 세탁과 함께 빳빳하게 풀을 먹여 새 옷처럼 만들어 입었다.
그런데 선어록에 나오는 설 음식은 어땠을까? 물론 그것도 각 산중의 가풍 따라 달랐다.
담주 북선지현 선사는 설날에 대중들에게 이런 설 상차림을 해주었다.
“여러분과 함께 설을 쇠면서 기장쌀밥을 짓고 나물국을 끓여서 온 대중이 화롯가에 둘러앉아 마른 가지로 불을 피워놓고 노래를 부르리라.
그 이유는 남의 집 문앞을 기웃거리거나 남의 담 밑에 기대거나 하여 의심받는 소리를 듣지 않게 함이라.”
혹 집 나온 초심자들이 속가 생각을 할까봐, 그리고 또 정월초하룻날 나무하러 간다더니 진짜 납자랍시고 “묵은 해니 새 해니 분별하지 말게…” 어쩌구 하며 학명선사의 게송을 읊조리며 첫날부터 탁발하러 나설까봐 쌀밥에 벽난로까지 피워놓고 놀이까지 더하여 두 극단적인 대중들을 함께 아우르려는 자비심이 빛나 보인다.
하긴 정월 초하룻날부터 걸식하거나 운수객으로 떠돌아 다닌다면 아무리 신심있는 단월이라 할지라도 잘 봐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개암붕 선사는 설날에 만두를 빚었다. 그런데 그 만두가 쇠만두이다. 쇠고기 만두가 아니라 철(鐵)로 만든 만두이다. 피(皮)와 속이 모두 쇠로 된 대단한 기술의 경지를 보여준다.
“무쇠콩으로 속을 만들고 무쇠로 만두피를 만든 무쇠 만두를 가져다가 여러분과 설을 쉬려고 한다.”
본래 만두는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이 노수라는 강가의 수신을 달래기 위하여 사람머리 대신 밀가루 반죽 속에 소와 양고기를 다져넣고 사람머리처럼 만들어 제물로 사용한데서 기원한다.
그런데 개암붕 선사는 그 보다도 더 탁월한 만두를 빚었다. 쇠만두이다. 전생에 대장장이였나. 아니면 그 과보로 현재 포스코에서 설도 못 쉬고 쇳물이 벌겋게 나오는 고로(高爐)를 지키고 있을까. 거기에서 심심하면 남은 쇳물로 만두모양을 빚으면서 무료함을 달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껍데기는 가능한데 속까지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런데 그 만두는 씹어서 입안에서 터뜨릴 수 있다면 백 가지 맛이 구족되어 향기가 입안에 가득하겠지만, 만약 깨물지 못한다면 치아만 상하게 될 터이니 조심하거라.”
시니컬한 표현은 선사들의 또 다른 기질이기도 하다. 냉소적인 듯 하면서도 그 속에는 또 ‘깊은 뜻’이 포함된다. 여기에서 안목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단순한 히스테리성 비틀기냐?
아니면 선지(禪旨)가 있는 법문인가 하는 것이 판가름 난다.
누군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선종 집안 설 음식의 최고 요리사는 이 선사가 아닐까 한다. 선종적 근본주의 원리주의에 가장 충실한 설 음식이라고 하겠다.
“고개 위의 구름을 가늘게 썰고 못 속의 달을 얇게 저며, 반듯하게 모나게 각을 세워 가득히 담아 격식을 따지지 않고 차려 내겠다. 모두의 주린 배를 채우게 하여 영원히 굶주림을 면하게 하리라.”
이는 바닥없는 솥에다가 불 없는 장작을 피워서 차린 것 없이 차린 공양이었을 것이다.
원칙론은 지당하신 말씀이긴 한데 보통사람에겐 감동이 없다는 게 그 한계라고 하겠다. 물론 느낌이 각별하여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 좋지만.
2006-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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