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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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2부 27강 : 야부도천의 <금강경> 2장 송/한국학중앙연구원
절벽에서 손을 놓는 자가 대장부

오늘 <금강경> 야부송 2장을 읽는다. 본문을 따라 세 곡조를 지었다.

1. 수보리가 “희유하십니다”하고 찬탄한 대목을 두고, 야부는 이렇게 읊고 있다.
如來不措一言, 須菩提便興讚歡. 具眼勝流, 試著眼看. 隔嗇見角, 便知是牛. 隔山見煙, 便知是火. 獨坐巍巍, 天上天下. 南北東西, 鑽龜打瓦. .
“여래는 한 마디도 않았는데, 수보리가 나서서 탄성을 지르고 있다. 안목 갖춘 뛰어난 무리는 똑똑히 볼지어다. 담 너머 뿔이 보이면 소인 줄을 알고, 산 너머 연기가 일면 불이 난줄 알아야지! 홀로 산 정상에 앉았노라니, 천상천하로다. 남북동서란 거북을 뚫고 기와를 두드리는 일인 즉, 쯧.”
해설은 생략합니다. 그래도 한 마디씩만 보태자면
- ‘희유’라는 말에, “아하, 그거”라고 알 수 있어야 한다는 소리겠지.

2. 수보리가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이 어떻게 마음을 제어 항복시켜야겠습니까”라고 물은데 대해 야부는 이렇게 읊었다.
這一問從甚處出來. 伴喜我不喜, 君悲我不悲. 思飛塞北, 燕憶舊巢歸. 秋月春花無限意, 箇中只許自家.
“이 질문은 대체 어디서 나왔누. 너는 기뻐도 나는 기쁘지 않고, 너는 슬퍼도 나는 슬프지 않다. 기러기는 변방의 북쪽으로 날아갈 생각을 하고, 제비는 제 옛집을 그리워한다. 가을달 봄의 꽃에 이는 무한한 정, 그건 다만 아는 사람만이 알 뿐이다.”
- 세상사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맷집. 본래 자리를 향해 고개 돌린 삶. 그들은 눈빛만으로도 서로를 알아본다.

3. 부처가 “내 이제 설해 줄 테니 들어라” 하고, 수보리는 이에 대해 “그렇습니다. 듣고 싶습니다” 한 대목을 두고 야부는 이렇게 읊었다.
往往事因 囑生. 七手八脚, 神頭鬼面. 棒打不開, 刀割不斷. 閻浮 幾千廻, 頭頭不離空王殿.
“왕왕 일은 부탁을 거절 못해서도 생긴다. 손은 일곱, 다리는 여덟 개에, 귀신 머리와 도깨비 얼굴이라. 몽둥이로 때려도 깨지지 않고, 칼로 쳐도 잘리지 않는다. 인간세 뛰어넘기 몇천 번인가, 그래 봐도 결국은 공(空)의 궁전 안인 것을…”
- 부탁을 했으니, 무슨 말이든 해야겠지…그러나, 그 소식을 붙잡을 수 있을지는 장담 못하네.

야부의 스승 도겸

인터넷 ‘붓다뉴스’에는 그동안 횡설수설한 내 <금강경 강의>가 열려 있다. 거기 ‘혜경’이란 아이디를 쓰시는 분의 질문이 오래 올라 와 있다. 저번 야부의 <금강경 송> 1장을 몇 차례 소개해 준 적이 있는데, 야부라는 인물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아는 것이 있으면 알려달라는 것이었는데 사실 나도 아는 바가 거의 없었고, 자료를 뒤질 시간도 없어 훌쩍 몇 달이 지났다. 이 글을 통해 격화소양, 언 발에 오줌 몇 방울은 되었기를 바란다.
뒤져 보아도 그에 관한 신통한 정보는 거의 없다. <인천보감(人天寶鑑)>과 <오등회원(五燈會元)>에 적힌 단편을 정리해 드리기로 한다.
그는 12세기 선승 도겸(道謙)의 제자이다. 도겸이 누구인가. 그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가령 스즈키의 명작 <선 입문(Introduction to ZenBuddhism)>에도 실려 있다.
도겸은 <벽암록>의 저자인 원오극근 밑에서 배웠지만 깨달음을 얻지 못했고, 낙담한 그는 친구인 종원과 마지못한 길을 떠난다. 도중에 그는 울면서 매달린다. “내 일생 참선을 했지만 근본 소식을 얻지 못했다. 나를 좀 도와다오.”
친구 종원이 안타깝게 말한다. “너를 위해 무엇이든 해 주고 싶다. 그러나 나도 못해주는 다섯 가지가 있다.” 그게 무어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옷 입는 것, 밥 먹는 것, 똥 누는 것, 오줌 누는 것, 그리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일! 다섯 가지이다.” 이 말에 충격을 받은 그는 춤을 덩실덩실 추었다고 한다. 그는 나중 불교에 ‘대해’ 말하는 모든 것을 거짓이라 했고, 선의 기행과 파격 또한 지옥 갈 속임수라고 질타했다.
“그럼 어떻게?”라는 질문에 짐짓 이렇게 딴전을 피웠다. “흰 구름 다한 곳이 푸른 산인데, 저 길손, 또 다시 청산 밖에 있노라.”

야부, 오랑캐에서 진리의 귀족으로

위의 두 자료도 소략하기 이를 데 없다. 그에 의하면 야부는 군인이었다. 궁수로 근무했다 한다. 이 점이 예사롭지 않다. 출신은 곤산의 적씨(狄氏)였고, 이름이 적삼(狄三)이었다. 모를 일이다. 여기 삼(三)은 대가족 집안의 세 번째 아들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경덕(景德)의 도겸선사를 찾아가 법(法)을 묻자, 예의 그 조주 무자 화두를 들려주었다.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 알겠느냐?”
새벽부터 밤까지 직무도 보지 않고 화두를 안고 낑낑대는 것을 보다못한 상관이 화가 뻗쳐 곤장을 쳤는데, 볼기짝을 맞는 순간에 적삼은 홀연히 깨쳤다. 이에 도겸이 그의 이름을 고쳐주었다.
“이제까지 너는 적삼(狄三)이었지만, 지금부터는 도천(道川)이다. 지금부터 등뼈를 곧추세워 정진한다면 그 도(道)가 시냇물(川)처럼 불어날 것이지만, 조금이라도 게으르고 방심(放心)하면 한심한 인간으로 다시 떨어질 것이다.” 내가 짐작컨대 적(狄)은 성이기도 하지만 ‘오랑캐’라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인문화 되지 않은 종족에 대한 경멸이 거기 담겨 있다. 그 오랑캐의 자식이 깨달음을 통해 진리(道)의 자식이 된 것이다.
그가 남긴 작품은 이 <금강경> 송이 유일하다. <오등회원>에는 이 책이 건염(建炎) 초 1127년에 누군가의 요청에 의해 지어진 것이라고 적혀 있다. 그의 나머지 삶은 베일에 싸여있다. 그가 남긴 두어 수 시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群陰剝盡一陽生,草木園林盡發萌唯有衲僧無底 ,依前盛飯又盛羹.
“여러 음(陰)들이 떨어져 나가고 양(陽)의 기운 하나가 생겼네. 초목과 원림에 우르르 싹이 돋네. (그 북새통에) 다만 납승에게 밑바닥 없는 그릇이 하나 있어, 여전히 밥을 담고 국도 담아 먹는다네.”

백범 김구의 노래

<백범일지>에 야부의 노래가 실려 있다. “得樹攀枝未足奇, 懸崖撒手丈夫兒, 水寒夜冷魚難覓, 留得空舡載月歸”는 유명한 구절이다. 나중 구절은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이 시조로 풀어 더욱 유명해졌다. “추강(秋江)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치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無心)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라.”
백범의 스승 고석로가 인용한 것은 그러나 처음 두 구였다. “得樹攀枝未足奇, 懸崖撒手丈夫兒.”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진정한 장부는 아득한 절벽에서 손을 놓는다.”
인디아나 존스는 절벽 앞으로 발을 내디뎌 성배를 얻을 수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이렇게 말했다. “무릇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200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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