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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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세상의 독기를 마신 부처님/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우리가 쏟아낸 탐욕과 이기심에 절은 세상의 독
덜컥 마셔버린 한 수행자의 외침이 들려옵니다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계실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성 안의 다른 종교인들이 대책회의를 벌였습니다. 부처님을 믿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자 자기들에게 돌아오는 보시물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극약처방을 내렸습니다.
“우리를 독실하게 믿는 시리굴 장자더러 부처를 집으로 초대하게 합시다. 집안에 큰 불구덩이를 만들어 부처와 그 제자들이 발을 집안으로 내딛는 순간 타죽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음식 속에는 독을 넣어서 불구덩이를 피하더라도 그것을 먹는 순간 숨통이 끊어지게 만듭시다.”
시리굴 장자는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한 뒤에 부처님을 자기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부처님은 묵묵히 그 청을 받아들였습니다.
약속한 날이 되자 부처님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장자의 집으로 향하셨습니다. 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이미 소문이 파다하였습니다. 그들은 부처님을 필사적으로 말렸습니다. 하지만 한번 약속한 일은 절대로 취소하지 않는 것이 부처님의 법이기에 부처님은 오히려 그들을 달래주며 장자의 집으로 들어섰습니다. 다만 출발하기에 앞서 이렇게 제자들에게 당부하셨습니다.
“너희들은 나보다 앞서 가지 말고, 나보다 먼저 음식을 먹지 말라.”
장자의 집 앞에 도착하신 부처님. 막 발을 들어 문턱 위에 올려놓는 순간 불구덩이는 저절로 맑은 물이 가득 찬 못으로 변하였고 아름다운 연꽃들이 피어올랐습니다. 부처님은 가볍게 허공으로 날아올랐고 허공을 밟은 자취마다 연꽃이 피어났습니다. 부처님은 뒤를 돌아보고 제자들을 향해 연꽃을 밟고 들어오도록 일렀습니다.
시리굴 장자는 눈앞에서 벌어진 기적에 입을 다물지 못하였습니다.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음모에 넘어갔는지를 깨달은 장자는 이내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사죄하였습니다.
“제발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과거의 잘못을 고치고 미래를 닦겠습니다. 죄인 줄 알면서 부처님을 해치려 하였습니다.”
부처님의 용서를 받긴 했지만 시리굴 장자는 다음 일이 더 걱정이었습니다. 자리에 앉은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올려야 할 음식에 전부 독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부처님께 사실대로 고백하고 이렇게 청하였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다시 음식을 만들어서 올리겠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여래와 제자들은 결코 남의 해침을 받지 않는다. 그대는 이미 마련해놓은 음식을 차려내 오너라.”
장자가 떨리는 손으로 독이 든 음식을 내오자 부처님은 조용히 게송을 읊으셨습니다.
“성스러운 부처와 법과 승가는 세상의 독기를 죽인다. 세상의 독이란 탐욕과 성냄. 그러나 여래에게는 영원히 독기가 없으니 성스러운 삼보는 독기를 죽인다.”
이렇게 게송을 읊고 나서 그 음식을 드셨습니다. 하지만 독이 든 음식은 부처님과 그 제자들의 몸에 들어가 아무런 해를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본 시리굴 장자는 부처님께 나아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차라리 부처님께 독을 베풀어 큰 과보를 얻을지언정 그릇된 견해에 빠진 자들에게 단 이슬을 주어 그 죄를 받지는 않겠습니다.”(증일아함경 41권 마왕품)
세상에는 탐욕과 성냄이라는 독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급적 빨리 그 독에 면역이 되어야 세상을 버틸 수 있습니다. 순수하고 온화한 정신으로는 세상을 끝까지 살아가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세상을 버리지는 못합니다. 결국 모든 이들이 적당히 욕심과 성냄에 물들고 타협을 하고 살아갑니다. 나도 당신도….
독이 든 음식을 기꺼이 삼킨 부처님은 오히려 독기를 품었던 이를 교화할 수 있었고, 혼돈의 뱀이 내쏜 독이 세상에 퍼지기 전에 죄다 삼켜버린 청경관세음보살은 얼굴과 목이 파랗게 변한 것으로 그만이었는데, 이제 한 사람의 수행자가 극단적인 탐욕과 이기심에 절은 세상의 독기를 더럭 마셔버리고 말았습니다. 살찌우는 음식도 거부하고 생명을 되돌릴 치료조차도 거부한 스님은 바싹 마른 낙엽 같은 몸으로 백기를 만들어 세상을 향해 힘없이 흔들고 있습니다.
권력을 지닌 자의 단식은 대중의 관심과 아군을 끌어 모으지만 저 ‘촌스럽고 힘없고 볼품없는’ 한 수행자의 단식은 냉소와 손가락질을 살 뿐이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희망을 노래하려니 그런 내가 무서워집니다. 스님이 삼켜버린 세상의 독 속에는 내 것도 들어있을 것이기에 말입니다.
200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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