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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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청출어람(靑出於藍)/원철 스님(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제자들의 공부 수준 떠보려던 마조선사
한마디 대답도 못 듣고 “藏頭白 海頭黑”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이 있다. 스승보다 뛰어난 제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또 스승과 제자는 가르치고 배우는 수직적인 사이인 동시에 가르치는 것이 곧 배우는 것이므로 수평적인 관계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고 했다. 가르침과 배움을 통하여 서로 커간다고나 할까. 스승과 제자는 때로는 긴장의 관계가 되기도 한다.
나의 경우도 젊은 학인들과 선어록을 볼 때 미심쩍은 부분이나 확인을 하지 못한 부분은 늘 질문이 들어와 당황하곤 했다. 그 때 모르는 건 같이 모르고 아는 건 같이 안다는 사실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마조 선사의 ‘너무 잘난 제자’ 서당지장(735~814)과 백장회해(749~814)는 스승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면서 한 공간에서 같이 지냈을까?
제자들의 공부가 일취월장하면서 마조 역시 후학이 버거울 때도 있었을 것이다. 두 제자 역시 스승이 마뜩찮았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관계를 보여주는 일화가 ‘마조백비(馬祖百非)’ 공안이다.
어떤 납자가 마조선사를 찾아와 물었다.
“사구(四句)와 백비(百非)를 떠나서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을 곧장 보여 주세요.”
이는 언어를 빌리지 않고 진리의 당체를 바로 보여달라는 정형화된 선문답이다.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똥막대기’ ‘뜰앞에 잣나무’ 등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대답을 해주려다가 말고 그 순간 마조는 ‘번쩍’ 하고 떠오르는 게 있었다.
이놈들이 ‘남들의 칭찬만큼’ 공부를 하긴 하고 있는지 내 눈으로 확인을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래서 그 납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오늘 심기가 불편하니 지장에게 가서 물어라.” 원문에는 이 말 밖에 없지만 내심으로는 이렇게 더 주문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녀석이 한 대답을 그대로 나에게 와서 전해다오.”
그 납자는 시키는 대로 지장에게 갔다. 건너편 지장은 방장실에 들어갔던 납자가 자기 방 쪽으로 오는 것을 발견했다. 무슨 일인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랬더니 그 납자는 마조선사께서 ‘조사서래의’를 지장에게 가서 물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단박에 이 노장이 나를 떠보려고 하는 짓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질문을 던질 일이지 남에게 왜 시키누. 괜히 배알이 틀어졌다. 아무리 스승이지만 이런 식은 곤란하지. 내가 속마음을 보여 줄줄 알고. 그래서 핑계를 댔다.
“나는 오늘 두통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다. 저쪽에 있는 백장에게 가서 물어라.”
그러면서 손으로 머리를 쥐어짜는 흉내를 냈다. 백장이 가만히 보니 웬 납자가 스승의 방에서 나와 지장의 방을 거쳐 자기에게로 오는 것이 아닌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래서 그 납자에게 전말을 물었다. 어쭈 이봐라. 내 살림살이까지 확인해보려는 것이란 말이지.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내놓을 줄 알고. 어림없는 소리 말아라.
“나는 모른다.”
영문도 모르고 대답도 듣지 못하고서 경내를 ‘다리만 아프게’ 한 바퀴 빙 돈 그 납자가 마조에게로 갔다. 그리고 그 과정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보고했다. 마조는 ‘이것들을 그냥’ 하는 표정을 짓고는 총평했다.
“장두백(藏頭白)이요, 해두흑(海頭黑)이로다(지장 머리는 희고 백장 머리는 검다).”
홍건적이라고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른 산적 도둑놈들을 알고 있다. 그런데 지역에 따라 흰 띠나 검은 띠를 둘렀던 산적도 있었던 모양이다. 이 말은 “내 법을 훔쳐간 이놈들이 속내도 드러내지 않고 스승한테까지 시치미를 떼고 있어. 이 도둑놈들아, 밥값 내놔라.” 뭐 이런 뜻이 아닐까?
너무 의리선(義理禪)적으로 헤아린 것인가.
2006-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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